ⓒ시사IN 신선영교보문고 광화문점. 오프라인 대형 서점은 고객에게 다양한 책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

2020년 1월, 새로운 해를 맞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구청에 가서 출판사를 등록하는 일이었다. ‘출판 스튜디오 껴안음’(이하 껴안음). 책 읽는 독자에서 글 쓰는 작가를 넘어 책 만드는 제작자로 이어진 것이다. 출판사를 시작하니 그동안 읽고 쓰는 사람의 시선에서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껴안음의 첫 책은 〈따뜻한 식사〉다. 아내와 남편이 함께 쓴 음식에 대한 글이다. 여러 레시피와 제철 식재료, 농부 60여 명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원고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출판 제작과 유통, 홍보에 대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출판시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완고한 시스템이다. 마치 견고한 방어막으로 싸인 거대한 성처럼 느껴졌다. 온라인에서 수많은 종류의 물건을 팔고 있다. 그중에서도 책은 사고파는 경로가 매우 제한적인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유통시장은 굉장히 복잡했다. 출판사가 있고 대형 서점이 있으며 전국의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도매처가 있다. 작은 소매처인 전국의 동네 책방도 있다. ‘도서정가제’가 법으로 만들어진 뒤 5년 정도 지났다. 그러나 이 제도가 책을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모두를 위한 법으로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불편한 의견이 많다.

온라인의 대형 서점은 책값에서 10% 할인을 기본으로 한다. 서점마다 작은 차이는 있지만 5% 적립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기도 한다. 온라인 대형 서점들이 지속적으로 힘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절대 권력구조인 셈이다. 이들의 거대한 힘을 기둥 삼아 우리나라의 출판업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네 책방도 다양한 시도로 살길을 찾지만 제도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네 책방에서도 10% 할인을 해주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형 서점과 동네 책방은 책을 받는 공급가에서부터 이미 불공평하다. 동네 책방 운영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에 따르면, 대형 출판사가 동네 책방에 책을 보내는 경우 공급률을 80~85%(1만원짜리 책이라면 8000~8500원에 동네 책방에 공급), 심지어 90%(9000원)까지 적용한다.

그런데 온라인 대형 서점의 고객은, 기본적인 10% 할인과 5% 적립을 감안하면, 책값의 85%에 책을 사게 된다. 대형 서점은 동네 책방보다 훨씬 유리한 공급률로 책을 받기 때문에 10% 할인과 배송료를 부담할 수 있다. 동네 책방은 책값을 할인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구조다.

대부분의 동네 책방이 소규모에 유지조차 어렵기 때문에 출판사로부터 소량의 책을 직접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도매처인 총판에서 책을 받아야 하는데, 동네 책방은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파는지에 따라 거래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출판시장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존재하며 이는 다른 제조 및 유통 부문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느껴졌다. 지금 출판시장에서 벌어지는 달리기 경주에서는 선수들의 출발 지점이 모두 다른 것이다.

ⓒ시사IN 이명익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동네 책방 ‘퇴근길 책 한잔’. 동네 책방에서는 주인의 취향과 생각이 반영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팔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책

동네 책방들은 공정하지 않은 경쟁에서 독자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돕는 역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신을 담아 책방을 운영했던 책방지기들이 2~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모습이 안타깝다. 많은 동네 책방들이 음료나 문구를 함께 팔아서 책방의 수익을 마련하는 실정이다. 미디어에 비친 동네 책방의 낭만과 실제 책방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형 서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객에게 다양한 책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은 대형 서점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 책방은 규모와 관계없이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동네 책방도 그렇다. 책방 주인의 취향과 생각이 반영된 보석 같은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책을 살펴보고 책방지기와 소통하며 그들이 권해주는 책을 만나는 기쁨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일상의 행복이다. 하지만 모든 독자가 동네 책방의 장점에 기쁨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책방을 둘러보고 책방에서 엄선한 책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온라인 서점 앱을 여는 경우도 있다. 10% 할인과 5% 적립의 위력은 이처럼 대단하다. 도서정가제는 죽어가는 동네 상권의 책방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는데 여전히 많이 불공평해 보인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따뜻한 식사〉를 만든 뒤 우리는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떤 방법으로 이 책을 독자들과 만나게 할까?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스마트 스토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대형 서점의 유통망에서 벗어난 직접 판매를 선택한 것이다. 모험과 용기가 필요한 시도였다. 왜 다른 출판사에서 이렇게 하지 않는지도 알게 되었다. 일단 검색 사이트에 책을 등록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네이버’에는 출판사 계정을 발급받아 직접 책을 등록할 수 있다. ‘다음’에는 그런 장치조차 없다. 대형 서점에서 판매되는 책만 등록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결국 ‘다음 카카오’에는 책을 등록하지 못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출판사를 등록하고 책을 만들었지만 존재하지 않는 책이 된 것이다. 〈따뜻한 식사〉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달았고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등록된 책이지만 ‘다음 카카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팔기 이전에 책의 존재 자체를 제한하는, 놀라우리만큼 닫혀 있는 시스템. 탄탄한 벽에 부딪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동네 책방에 직접 책을 건네기 시작했다. 10여 곳의 작은 책방에 책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거래처를 늘려가고 있다. 이메일을 통해 책을 소개하고 다섯 권, 열 권씩 보내는 일을 반복한다. 미리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받는 책방도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책방은 위탁형이다. 먼저 책을 보내고, 책방에서 정한 대금 지불 방식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 팔린 책만큼 돈을 받는다.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정을 주고받는다. 검색 사이트의 알고리즘과 시스템에 의해 닫히지 않은, 사람 냄새 나는 거래다. 대형 서점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출간된 지 2주가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 다소 놀랐다. 책을 찾는 분들이 많아서 구매팀에서 직접 전화를 했다고 한다. 통화를 끝내고 신규 거래와 계약에 대해 자세히 안내된 메일을 받았다. 제작자라면 당연히 책을 많은 분들에게 읽히게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주춤하게 되었다. 메일에는 ‘판매 책값을 판매자가 다시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법이 정한 한도인 10% 할인이겠지만 한 달 한 달 책방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군분투하는 동네 책방들이 떠올랐다.

많은 분들이 책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자주 물었다. 왜 인터넷 서점에서 팔지 않는지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다. 사실 인터넷에는 작은 책방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 서점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단 몇 곳만이 익숙할 뿐이다. ‘인터넷 서점=몇 곳의 대형 서점’으로 뜻이 굳어져버린 것이다.

‘네이버’에서 책을 검색하면 책 카테고리에서 책 소개를 볼 수 있다. ‘판매처는 없다’고 나온다. 정확하게는 ‘제휴 판매처가 없다’로 표시된다. 문제는 독자들이 ‘제휴 판매처가 없으니’ ‘이 책은 다른 작은 책방에서만 파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 우리도 책을 만들어 유통시켜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총판으로부터 절판된 책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독자도 있었다.

공정한 시장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궁리 끝에 자발적 도서정가제를 시도하게 된다. 힘없고 작은 출판사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마는 시도해본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 양을 치던 작은 아이 다윗에게 대국의 최고 장사 골리앗이 무너지는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 장면은 놀랍기도 하고 희망적이기도 하다. 도서정가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공론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책 사는 사람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책값이 조금이라도 싸야 책을 더 많이 읽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기도 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책값이 지금보다 저렴해지면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도 보게 될까? 커피 한 잔 가격이 6000~7000원까지 넘어가는 지금, 책값이 비싼 걸까?

사실 책 한 권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책을 만들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책으로 펴낼 수 있는 횟수는 많아야 1년에 한 권 남짓이다. 그 한 권을 만들기까지 숱한 시간을 사유하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대부분의 책값은 1만~2만원이며 3만원대를 넘지 못한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려면 수많은 사람의 손과 인내, 노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일하는 분들의 품삯이 바르게 책정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네 책방과 출판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쇄, 디자인, 교정·교열, 배송까지 출판업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도서정가제가 자리 잡혀야 한다.

출판업은 만년 불황이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찾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책이 새로 나오지만 독자 각자에게 필요한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동네 책방이 하는 일은 이런 면에서 매우 귀하다. 미리 살피고 읽은 책들을 손님들에게 권한다. 적은 종류의 책을 깊이 다루는 곳이 동네 책방이다. 동네 책방이 책을 고르고 손님들에게 판매할 때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출판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베스트셀러에 크게 눈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베스트셀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시스템을 알기 때문이다. 대중의 책 평가도 반영된 결과이지만 커다란 자본으로 이루어진 마케팅으로 가려진 점이 크다.

화려한 책 광고가 막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고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치는 시대에 잘못된 선택으로 책을 고르면 안타깝고 아쉽다. 창작자들을 독려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문화 콘텐츠 강국이 되기 위해서라도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작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동네 책방의 존재는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동네 책방은 그 지역에서만 가능한 문화를 공유시키는 거점이자 지역 출판물을 알리고 이어가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편의점이나 치킨집, 카페에 비하면 책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대다. 개성 있고 다정한 온기를 품은 동네 책방이 많아질수록 책을 읽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해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든다’는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책을 접하고 읽기 좋은 사회구조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책을 쉽고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사회에서는 그만큼 좋은 문화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낭만과 문화가 있는 동네 책방이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공정한 시장 보호 장치는 꼭 필요하다.

어린 시절 동네에 있던, 종이 냄새 짙은 책방이 그리워진다. 노란 바탕 가운데 ‘책’이라는 글자를 크게 새긴 간판도. 주인아저씨는 어려워 보이는 책도 꼭 읽어야 한다며 척척 권해주시곤 했다. 어느 날부터 간판의 ‘책’ 글자에서 ‘ㄱ’자가 보이지 않았다. 간판이 낡아 떨어졌음을 책방 아저씨도 알았겠지만 망설였을 것 같다. 언제 닫을지 모르는 책방의 간판에 돈을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만큼 고민도 깊었겠지. 출판인이 되어보니 알 것 같다.

기자명 심채윤·강하라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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