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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보수가 어쨌거나 큰 그림을 그린다면 진보는 거기에 댓글을 달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1.5%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연대와 낸 공동성명에서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총연맹인지 묻고 싶다. 총 27명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원인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 4명은 경영계의 삭감안에 항의하며 퇴장했다. 최소 2월 하순부터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기 어려운 코로나19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나, 민주노총은 생계유지를 위한 기준선으로 시급 ‘1만770원’이라는 숫자를 제시했을 뿐 이를 관철하기 위한 어떤 전략도, 지렛대도 보여주지 않았다. 취약 노동자의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주휴수당 같은 오래된 과제를 함께 논의하는 길도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는 어떤가. 민주노총은 재난 기간에 모든 해고를 금지하도록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가 최종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민주노총은 노사정 합의 추인을 두고 내부 반발을 겪고 있다. 그런데 민간기업에 해고 금지를 명령하라는 요구가 실질적으로 작동 가능한, ‘내셔널센터’다운 요구인지 곱씹을 필요가 있다. 합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획기적인 내용도 없는데 합의하면 향후 정부를 상대로 각종 현안에 각을 세우기 어려워진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물론 정치적 판단은 늘 필요하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연말까지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만든다’는 다소 맥 빠지는 내용이더라도, 재난 시기에 조직노동이 취약노동과 함께한다고 천명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을까 아쉬움이 든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에 취약노동의 협상권을 강화하는 내용은 없다. 향후 임금이 아닌 ‘소득’ 기반 사회보험을 만들어가기 위한 국세청 등 기관별 기능 재조정도, 보험료 인상이나 증세도 없다. 정부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안과 관련 법안을 최근 국회에 냈지만,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를 ‘근로자’에 한정하는 핵심 조항은 건드리지 않았다. 조직노동은 조직노동대로, 경영계 요구가 일부 들어간 ‘개악’이라며 반대한다. 어렵고, 오래 걸리며, 누군가에겐 손해를 의미하는 진짜 변화는 아무도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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