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전에 읽는 책 부류가 있다. 너무 어려우면 탈락이고, 지나치게 재밌어도 실격이다. 다음 장이 궁금해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책은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수 있다. 적당히 흡입력이 있으면서도 원하는 타이밍에 끊을 수 있는 책. 그런 면에서 SF 단편소설은 침대 머리맡에 두기 적합하다. 짧은 이야기 한 편을 읽고 나면 포만감이 들고, 복잡하고 육중한 현실에서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 온 듯 머릿속이 조금 가벼워진다.

배명훈 작가의 단편소설집 〈예술과 중력가속도〉를 그런 방식으로 읽었다. 그가 지어내는 이야기에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SF 소설답게 시공간이 확장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세계사적인 디테일을 마주치게 된다. 비키니섬 핵실험 때 근처 바다에서 태어난 조개들에는 ‘뭐야?’ ‘아야’ ‘나도’ 같은 말이 화석처럼 새겨져 있고(조개를 읽어요), 상호확증파괴 전략에 의해 닥친 핵전쟁 디스토피아 속에서 고래들은 오래된 노래를 부른다(예언자의 겨울).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핵잠수함에는 한국 아이돌인 JYJ 열성 팬들이 타고 있는데 이들의 국적은 독일, 스페인, 한국이다(티켓팅&타겟팅).

기발하고 치밀한 설정에 비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은 다소 약하다. 그러나 단편의 미덕은 조금 부족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 빈틈으로 역시 예상치 못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위트가 흐른다. 자신이 고고학자라고 주장하는 메흐멧씨는 어딘가 수상한 조사를 받는데 수사관들을 “누님들”이라 부르며 넉살을 부리고(유물위성), 자살을 결심하고 소설을 투고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실행을 미루게 된 주인공은 이러다가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다”라고 앞뒤가 맞지 않는 엄살을 떤다(스마트 D). 표제작인 ‘예술과 중력가속도’에는 도입부에 주의 사항 하나가 쓰여 있다. “식사 시간을 피해서 읽을 것.” 정말로 꼭 지켜야 하는 주의 사항이다. 그 이유는 스포일러가 되기에 말할 수 없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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