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 확보가 합리적인 전염병 대처법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슬라보이 지제크는 더 나아가, 이러한 공황(panic)은 사람들이 “실제로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적었다. 이 책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진지하고 합당한 대응이 무엇인지 논한다. 저자의 답은 공산주의다.

코로나19가 의료·경제·심리적 위기라는 세 겹의 상황을 불러왔다는 게 지제크의 진단이다. 여기 대응하는 국가 시스템의 두 가지 전형으로 그는 중국식 상명하달 통제와 ‘집단면역’ 접근법을 꼽는다. 전자는 더 많은 희생자를 불러올 수 있고, 후자는 야만적 도박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삼은 게 공산주의다.

지제크는 일종의 휴머니즘에 기댄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실행되는 공산주의”를 주장했다. 팬데믹에서 생존하는 것은 단순히 격리되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전기·수도·식량·의약품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아야 한다. 공공서비스 확충과 재분배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이윤 가능성이라는 논리를 과감히 건너뛰고 (…) 시장의 논리와 상관없이 직접 배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자원 동원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지제크는 특히 착취당하는 “새로운 노동계급”을 주목한다. 혹자는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모토를 내세우나, 전염병이 창궐하자 “계급 차별이 폭발했다”. 간호사와 집사, 더 넓게는 외국인 육체노동자까지 포괄해 그는 ‘돌봄노동자’라고 불렀다. 그들의 노동이 (더러는 존재 자체가) 선진국 사람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기본욕구를 채우면서 각자 사회에 기여하는 “온건한 세상”이, 노철학자가 말하는 이상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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