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열반에 든 탄허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善知識:바르고 덕행을 갖추어 대중을 교화할 수 있는 불교 승려)이자 학승이었다. 〈화엄론〉 등 수많은 불전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서우담 교림출판사 대표(83)는 탄허 스님의 제자다.
탄허 스님을 글로만 뵐 때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서우담 대표를 통해 거리감이 사라졌다. 서 대표의 감탄할 만한 기억력은 탄허 스님의 박학다식한 말씀을 생생히 재현한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 건국빌딩 202호 교림출판사. 탄허 스님은 1980년 화엄학연구소와 교림출판사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돌아가실 때까지 정·관·학계의 많은 이들이 당대 지식인으로 꼽혔던 탄허 스님을 만나러 이 좁은 사무실을 다녀갔다. 소파며 책장에는 그의 자취가 여전하다. 당대 권력자들과의 일화가 화제에 오른 중에 ‘젊은 노무현’이 등장해 깜짝 놀랐다. 대통령 되기 전의 노무현 역시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고 한다.
탄허 스님은 자신의 입적 일을 정확하게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1978년 위암 진단을 받자 의사들에게 “사람은 복이 다해야 죽는다. 나는 5년 후인 1983년 4월24일에 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1983년 정월 증세가 악화되자 서 대표에게 ‘준비하라’고 이르더니 4월23일 오대산 월정사로 가 하룻밤을 자고, 말한 대로 이튿날 입적했다. “말씀대로 가실 줄은 알았지만 피눈물이 났다.” 서 대표의 음성에는 회한이 가득 묻어났다.
서 대표는 나이 23세이던 1960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의 제자로 출가했다. 그에게 스님은 그의 16대 할아버지 서화담이 다시 왔다며 우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탄허 스님과 함께 세운 교림출판사는 1974년의 〈신화엄경합론〉 47권 번역 출판을 필두로 20종 80권에 이르는 스님의 역저만을 출간해왔다. 부처님에게 제자 아난이 있었던 것처럼 탄허 스님에게는 우담이 있었다. 그 덕분에 ‘이차돈 순교 이래 최대 불사(佛事)’라는 탄허 스님의 번역 경전들이 대중에게 전해졌다.
지난해 〈덧말 불화엄경〉을 펴낸 과정은 드라마다. 4년 전 승려 두 사람이 찾아와 “선방 생활 30년에 경전 한 권 못 읽었다”라며 한탄을 하더란다. 3년 동안 〈화엄경〉에 한글 음을 달아 보내줬다. 출판할 엄두는 못 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금생에 내 이름 석 자 들을 생각 마라”며 출판 비용을 쾌척했다. “산 사람은 뜨신 밥으로 제도하고 귀신이나 마구니는 성현의 경전으로 제도한다”는데, 효험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 여성이 경전을 다 읽었더니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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