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사랑하는 딸이 독거 상태로 외롭게 늙을까 봐 걱정이 많은 엄마는 마치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오듯 부지런히 소개팅을 주선했다. 그런 엄마의 노력이 너무 싫었지만,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실하게 자란 ‘K-장녀’인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조건을 걸고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을 한 날이면 결과와 상관없이 이제 당분간 엄마에게 덜 미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졌다. 어쩌다가 소심한 저항을 한 날도 있었다. 엄마가 다니는 문화센터 옆자리에 앉은 어느 아주머니의 친척을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은 날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동물이야? 아무나하고 짝짓기하게?” 곧바로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 결혼을 안 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해야 할 이유도 발견하지 못한 내가 “혼자인 지금도 나는 잘 살고 있어”라고 아무리 나를 옹호해봤자 엄마에게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딸이 결혼해야 자신의 인생이 완성된다고 믿는 부모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는 소개팅이었다.

젊은 여성의 비연애·비섹스·비혼·비출산 흐름

주말 가족드라마는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비교적 잘 재현하는 콘텐츠라 흥미롭다. KBS2 TV에서 하는 주말 가족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는 네 자녀를 둔 중산층 가족이 나온다. 그런데 이 가족, 어쩐지 이상하다. 네 명 모두 이혼하고 부모 집에 모여 산다. 드라마는 비교적 명랑하게 그들의 일상을 그리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근심거리’로서 그들을 묘사한다. 의사인 둘째 딸을 제외하면 모두 부모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다. ‘이혼녀’ 혹은 ‘경단녀’라는 사회적 낙인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할 빌미를 제공한다. 네 자녀는 누구와도 ‘다시’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고 온전하게 독립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드라마는 처음부터 네 자녀는 물론이고, 심지어 ‘용주시장’ 상인들의 ‘러브라인’까지 촘촘히 깔아놓았다.

사실 드라마 속 러브라인이 그렇게 이상할 건 없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사랑이 중요하고, 경찰이 경찰서에서 연애하고, 의사가 병원에서 연애하는 게 K-드라마의 클리셰니까. 최근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병원에서 연애하는’ 의사들의 생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미덕이 많은 드라마였지만 주요 인물들의 러브라인은 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새로운 여성 서사의 등장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www〉도 결국 ‘이성애 연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쎈캐(센 캐릭터)’ 여성의 존재감을 보여준 드라마 〈하이에나〉 속 정금자 변호사도 러브라인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개연성 있는 러브라인도 필요하지만, 드라마가 점점 다양해지는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는 ‘불편하게’ 볼 필요가 있다.

6월2일 국토교통부의 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이 29.3%를 차지했다. 가구 중심이 4인 가구에서 1인 가구가 된 것이다. 최근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4B(비연애·비섹스· 비혼·비출산)’를 지향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대중에게 텔레비전 드라마 속 이성애 연애(정상 가족 중심 서사)는 이미 ‘표준’이 아니다.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부모 세대의 시간과 ‘결혼은 선택’이라고 여기는 나의 시간은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드라마를 포함한 대중문화는 더 다양한 서사를 담아낼 필요가 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대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건 일상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누구나 이성애 연애를 하는 건 아니라고. 결혼할 바에는 식물과 고양이랑 동거하거나,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청년들이 많다고. 적어도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기자명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