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외부 강연을 끝내고 휴대전화를 확인한 여기공협동조합 이현숙 이사장(26)은 깜짝 놀랐다. ‘집 고치는 여성들:주택수리과정 입문반’ 수강 신청이 폭주하고 있었다. 16명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등록한 사람만 100명에 가까웠다. 그는 서둘러 접수를 마감한다는 공지글을 올렸다. 빗발치는 문의와 요청에 추가로 두 반을 더 열었다. 역시 ‘전석 매진’이었다.

입문반 수업에서는 10주 동안 실생활 공구를 다루는 법, 전등·콘센트를 가는 법, 타일을 바꾸고 욕실 배관을 수리하는 법 등을 가르친다. 막 독립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기 시작한 20~30대 여성이 주로 듣지만 40~50대도 눈에 띈다. ‘모든 집안일을 떠맡겨놓고선 마지막에 전등 하나 갈았다고 생색내는 남편이 얄미워서’ 직접 공구를 다루는 법을 배우러 온 수강생도 있다.

‘여기공’은 공간 수리라는 필수적인 삶의 과정에서 늘 배제돼왔던 여성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다. 수강생이 집어 든 망치와 드릴은 단순한 공구가 아니다. 벽에 망치질을 하거나 드릴로 구멍을 뚫어야 하는 순간마다 항상 옆으로 밀려나 남성의 활약을 구경해야 했던 이들에게 ‘손에 잡히는 자신감’이다. 내 삶의 일부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이현숙 이사장도 20대 중반 하자작업장학교(서울시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처음으로 용접을 배운 뒤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외부 강연을 다니면서 시작했던 일이 점점 호응을 얻으며 2019년 11월 여기공협동조합으로 결실을 맺었다. ‘여성 기술 공간’의 준말이자 지금 이 순간 ‘여기’를 강조하는 이름이다. 100명 가까이 신청자가 몰렸던 입문반 수업은 처음으로 자체 기획한 장기 프로젝트다. 두 번째 입문반은 오는 9월 개강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강의를 열면서 여성 신체에 적합한 크기로 제작된 공구들이 갖춰진 작업장을 마련하고, 현직에서 활동하는 여성 기술자들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도 이어나갈 생각이다.

여기공에서 강조하는 건 스스로에게 필요한 수준만큼의 ‘적정기술’이다. 개인마다, 가정마다, 마을마다, 도시마다, 국가마다 필요한 적정기술의 수준은 각각 다르다. 다른 사람의 기술에 의존하거나 다른 노동자의 기술을 싼값에 후려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만큼, 가능한 만큼 자급자족의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적정기술의 관점으로 공간을 수리하면 시간이나 돈으로 따지는 ‘가성비’ 대신 공간에 대한 ‘애정’이 기준이 된다. 여기공 수업에서 가르치는 건 부족이나 과잉 없이 삶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법이기도 하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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