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조아라 공감N소통 성교육연구소 소장(사진)은 2009년부터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해왔다.

식사를 하다 ‘n번방 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가족 중 한 명이 말했다. “듣기 싫은데.” 직접 상관있는 일도 아니고 밥상에서 그런 얘길 나눈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이유였다. 조아라 공감N소통 성교육연구소 소장이 대꾸했다. “변한다.” 자꾸 얘기를 하면 변하고 그러니 얘기할 수밖에 없다. 과거 연예인 성관계 동영상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영상을 손에 넣을까 궁리했지, 가해자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조아라 소장은 성교육 강사다. 더딘 것 같아도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는 위치다. 반대로 여간해선 변하지 않는 ‘지체현상’을 누구보다 근거리에서 자주 목격하기도 한다.

n번방 사건에 모두 공분했다. 공교육 내 부실한 성교육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조아라 소장도 처음에 분노했다. 지금은 겁이 난다. 세상이 바뀔 것처럼 떠들썩했지만 피해자 지원 얘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회 문제가 아니라 개인 문제로 치환되는 느낌이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있지만 세금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순백의 피해자만 진짜 피해자라는 시선도 있다.” 성교육 전문가로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걸 짚어줄 수 있을까.

10대 시절 구성애 성교육 강사가 스타덤에 올랐다. 그를 보며 막연하게 비슷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성을 주제로 발표수업을 했다. 성교육 강사를 초빙한 자리였다. 발표를 본 그 강사가 성교육 강사를 제안했다. 그 뒤 성폭력 상담사가 되었고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옛 바람이 이뤄져 있었다. 2009년부터 아동과 청소년, 보호자, 교사, 각종 기관 및 단체를 대상으로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해왔다. 교정시설 등에서 가해자 재범 방지 교육도 한다. 최근 성교육의 경험을 담은 책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를 펴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이 줄어 요즘은 과실수 가꾸기가 주업이라는 그를 만났다.

학교 성교육은 1년에 15시간이 의무다. 조 소장은 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담당한다. 대부분 일회성이다. 학교는 ‘안전’을 추구한다. ‘성적 행동’을 장려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학생들이 성교육을 받고 집에 가서 얘기했을 때 부모님에게 그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 성교육을 할 것’이라는 주문이 떨어지기도 한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하고 오면 몸이야 편하지만, 강사로서의 존재 이유는 없다.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아직도 케케묵은 교육을 하느냐’와 ‘학교에서 그런 걸 왜 가르치느냐’.

ⓒ연합뉴스2008년 2월26일 전국에서 처음 문을 연 유아·아동·장애인 대상 성교육 체험관 ‘뭐야’에서 성교육을 받는 어린이들.

‘성교육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

이런 처지라 섹스 교육은 ‘빵점’에 가깝다. 콘돔 사용법이나 피임약 복용법을 다루는 수업은 드물다. 그마저도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대상이다. 여러 행운이 겹쳐야 한다. 보건 담당 교사가 ‘힘’이 있고 마침 성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최종 결정권자가 찬성해야 한다. 요즘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성관계를 시작하는 연령은 평균 13~14세다. 아이들의 실제 속도와 어른들이 바라는 속도가 다르다. 조 소장은 성교육이 필요한 건 아이들이 자유롭게 관계를 맺고 행복하게 섹스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이 되려면 멀었다. 섹스와 임신을 직결하는 성교육에 아이들은 ‘임신만 안 하면 그만’이라고 냉소한다.

최근 1~2년 사이 교실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군대에 다녀왔나?’ ‘여성가족부에서 나왔나?’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투 때문에 사람(가해 혐의자)이 죽지 않았나?’ 몇 년 전엔 강사를 향한 성희롱성 질문이 ‘유행’이었다. 요즘은 ‘꼴페미’인지 아닌지 ‘사상 검증’을 하겠다는 분위기다. 화는 나지만 성교육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없다면 그런 질문조차 안 할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불편한 마음이 있어서 해소하고 싶으니까 나를 붙들고 그럴 거다.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반 분위기가 달라진다.”

남학생들은 본인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당하는 것 같은 불쾌감을 이야기한다. 남자는 가해자, 여자는 피해자로만 두지 않기 위해 최근엔 목격자 중심 교육을 강조한다. ‘피해자를 돕는 목격자, 폭력을 막는 감시자’로서의 자리다. 수업하며 학생들이 직접 목격자 경험을 하게 한다. 예를 들면 수업이 끝나갈 즈음 한 학생을 칭찬하며 쓰다듬는다(수업하기 전 이 학생에게 먼저 동의를 구했다). 방금 전까지 목격자가 되겠다고 함께 외치던 아이들도 만지고 쓰다듬는 조 소장의 행동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잘해서 칭찬하는 걸로 생각한다. 목격자 노릇을 방기한다. 폭력과 애정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다. 훈련이 필요하다.

가정법원이나 교육청의 유관기관을 통해 가해 학생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해자의 부모는 진실과 대면하는 걸 어려워한다. 가정에서 본 내 아이는 그렇지 않으니 억울한 게 있지 않을까 해서다. “머리로는 (가해 사실을) 알지만 서로 좋았던 것도 같고 헷갈리는 거다. 부모가 성폭력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지 않으니 아이를 감싼다.” 누가 봐도 가해 학생이 잘못했는데 부모가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한다. 소송에서 질 것을 알면서도 버티기에 들어간다. 졸업 때까지 시간을 벌면 학교생활기록부에 흔적이 남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다. “피해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사과를 못 받았을 거다. 미안하다고 하는 게 재판에 불리하니까 그렇게 지시받을 게 분명하다. 왜 자녀에게 사죄의 교육을 시키지 않는지 안타깝다.”

공교육의 한계를 알고 있는 부모들은 성교육 과외를 시킨다. 그도 경험했다. 아이들 중 절반은 그 자리에 자신이 왜 있는지 모른다. 부모 스스로 자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기술과 용기가 부족해서 대리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성관계를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구체적인 주문도 있다. 정작 아이들은 그에 대해 질문한다. 부모가 자녀의 성교육에 관심은 있지만 정답을 알려줘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직접 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다. 주 양육자의 성교육이 어떤 전문가의 특강보다 힘이 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성인 성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범 방지 교육에 참여하기도 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법원으로부터 수강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20세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10명 안팎의 사람들과 집단상담 형태로 진행한다. 인지치료 중심이다. 성교육을 받으러 왔는데 왜 ‘내 인생의 명장면’을 묻느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참가자도 있다. 강사의 역할은 ‘죄를 한 번 더 판결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알려주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감정과 의사를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표현할 수 있게 돕는 데 있다’.

본인이 한 행동이 성폭력인 줄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남자 여자 바뀌었으면 내가 여기 잡혀왔겠느냐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온몸으로 억울해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게 성폭력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봤다.” 교육에 참가한 성폭력 가해자끼리 서로 친해지면 팁을 나누기도 한다. 신상정보가 공개되면 주소가 알려지니 고소당하자마자 집주소를 시골로 옮겨놨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레 주고받는다. 피해자를 떠올리면 씁쓸해진다. 수강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다시 볼 게 아니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들은 잘 얘기하지 않는다.

ⓒ시사IN 이명익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n번방 사건’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피해자를 위해서 가해자를 교육한다

가장 막막할 때는 ‘해맑은 가해자’를 대할 때다. 듣는 데 어디가 불편하거나 교육 내용이 잘못됐다고 말하거나 아예 졸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파악이 된다. 열심히는 듣는데 남 얘기 대하듯,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게 최선의 방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마음에 들어가는 건 힘든 일이구나 직감한다. 가해자를 교육하는 이유는 피해자를 위해서다. 성폭력은 재범 비율이 높다. 교육을 통해 한 건이라도 재범을 막는 게 목표다.

최선을 다해도 청중의 반응이 좋지 않은 건 괜찮다. 하다 보면 질문에 말려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하고 올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다시는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자괴감에 시달린다.

교사들은 ‘재미있는 강의’를 자주 당부한다. 어느 날의 강의는 분위기가 좋고 떠들썩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평가점수가 낮았다. 재미만 있었던 거다. 아이들도 의미 있는 시간과 재미만 추구하는 자리를 구분하는 안목이 있다.

유치원 성교육에는 분장을 하고 나간다. 쉽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에는 유아의 자위, ‘싫어한다’와 ‘원하지 않는다’의 단어 차이, 디지털 성폭력과 야동 등 성과 관련된 다양한 시각이 담겨 있다. 그의 경험에 기대, 속성으로 성교육을 받는 기분이다. 조아라 소장은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성교육에 관한 한 적극적이지만 부모가 원하는 방향대로 크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어디선가 습득해온다. 막을 수는 없고 다른 가능성에 대해 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누구나 성교육 강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성교육 강사라고 하면 어떤 기대감이 있다. 게다가 경북 출신이라 하면 나고 자라며 차별을 받았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한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포시랍게(넉넉하게)’ 자랐다. 사명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강사 일을 하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었다. 첫 손님이 여자면 하루 장사를 망친다는 말이 자연스럽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택시기사가 화를 내 빌면서 내린 적도 있다. 스스로도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서 배우기도 한다. 삶이 더 넓어지는 경험이다.

금세 ‘구성애 선생님’이 될 줄 알았는데 실상은 2년 전 강의 자료만 봐도 ‘이불킥’을 한다. 지금이라면 문제가 될 만한 말을 늘어놓는 자신을 발견해서다. 사회가 변하면서 그의 강의 내용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대중 강사로서는 마이너스되는 느낌이지만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기에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n번방 사건을 이야기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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