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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연히 엄마와 아들이 대화하는 영상을 봤다. 주제는 성이었는데 엄마의 자위, 섹스토이 등 대화의 주제가 거침없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막연히 요즘은 이런 이야기도 주고받을 정도로 달라졌구나 생각했다.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라는 걸. 영상 속 엄마는 성교육 강사였다.

‘n번방 사건’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자신을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초·중·고등학교의 성교육 내용을 현실적으로 개편해달라고 요구했다. 가정·기술 과목 시간 등에 이뤄지는 성교육은 이론 위주고 전교생 대상의 성교육 강연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반복이라고 했다. 그제야 공교육 안에서 어떤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매년 성교육 15시간이 의무다. 아무리 더뎌도 내 10대 시절과는 좀 다를 줄 알았다. 가령 피임법 정도는 다룰 거라 기대했다. 최근 만나 인터뷰한 성교육 강사의 말에 따르면 교실에서의 피임 교육은 상당한 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2015년 만들어질 당시 크게 논란이 됐던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아직도 개정되지 않았다. 여러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지적했듯 ‘남자의 성욕은 여자보다 강하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적 흥분이 빠르고 단조롭다’ ‘여성의 바른 옷차림은 치마다’ ‘이성 친구와는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같은 한숨이 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기대를 접고 성교육 서적을 몇 권 뒤져보았다. 생각보다 현실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부끄럽지만 몰랐던 내용도 꽤 많았다.

왜 유아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만 생각한 걸까. 막연히 우리 세대는 자식과 영화를 보다가 야한 장면이 나오면 헛기침을 하는 부모 세대와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헛기침이 사라진 공백을 채울 만한 지식이 많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만 그럴까? 자녀 성교육에 대한 보호자의 관심이 높지만 부모 역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낮다.

시민단체들은 공교육 안에서 인권과 성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질의 성교육이 단지 담당 교사의 선의나 여러 운이 겹칠 때에야 따라오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성교육의 부실은 디지털 성범죄의 토양이 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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