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제

감염병동에 들어가기 전 간호사들은 되도록 물을 마시지 않는다. 온몸을 ‘밀봉’하는 보호구를 착용해서 화장실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12년 차 간호사 최지영씨(34·가명)도 레벨 D 보호구를 입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의료진이 감염 방지를 위해 입는 레벨 D 보호구는 N95 마스크, 일회용 장갑, 전신 보호복, 덧신으로 구성된 보호 장비다. 처음 입었을 땐 숨 쉬는 게 힘들어 불안감이 엄습했다. 병동에 들어가기 전 5분 동안 심호흡을 해야 했다. 탈진 증세가 오기 전까지 감염병동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시간. 몸이 둔해져 조금만 걸어 다녀도 “비 맞은 것처럼”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근무를 마치고 나온 간호사들 이마에 고글 자국이 선명히 남는다.

최씨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의 간호사다. 암환자 병동에서 근무하던 그는 2월26일부터 감염병동에 차출되었다. “환자들은 막 밀려 들어오는데 간호 인력은 부족하지, 먼저 가 있던 간호사들은 울면서 버티지, 눈으로 직접 보면 (감염병동에) 안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최 간호사에게는 여덟 살, 세 살 아이가 있다. 감염병동 근무를 반대하는 시부모를 사흘간 설득했다. “간호사가 환자들이 기다리는 곳에 가야 하지 않겠어요. 코로나가 더 확산되면 우리 가족이 안 걸린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때 치료해줄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2월21일 대구와 경북 청도 지역은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보건복지부와 대구시는 대구동산병원, 대구의료원 등을 코로나19 환자들을 받는 거점병원으로 지정하고 타 지역 의료인들을 급히 모집하기 시작했다. 2월21일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84명이었지만 2주 뒤인 3월4일 4006명으로 불어났다. 이 급격한 상황을 온몸으로 체감한 이들이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에 있는 간호사들이었다. 최 간호사가 일하는 대구동산병원의 경우, 2주도 안 되는 기간에 일반병동 6개, 중환자실 1개를 비워 코로나19 확진환자 250여 명을 받았다. 부랴부랴 환자를 받다 보니 간호사들은 8분짜리 보호구 착탈의 동영상 하나를 시청한 뒤 감염병동에 투입되었다.

ⓒ연합뉴스3월2일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대구 지역에 투입될 신임 장교들이 코로나19 교육을 받고 있다.

‘포항의료원 집단 사직’의 진실

감염병 전담병원이 된 것을 두고 간호사들은 “(병동을) 오픈한다”라고 말한다. 감염병동은 외부인에게는 폐쇄된 곳이고 환자들에게는 격리된 곳이지만, 병원이 일터인 간호사들에게는 ‘열리는’ 곳이었다. “어떤 병동에는 환자가 60명씩 누워 있는데 간호사가 원래 3명씩 들어가다 지금은 2명씩 들어가고 있어요. 중환자실에서도 혼자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방역 현장에서는 의사보다 간호사 인력 충원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확진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살피는 일은 결국 현장 간호사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을 3교대 체제로 운영하는 간호사들은 매일 2시간마다 환자들에게 처방된 약을 투여하고 매 끼니 식사를 배달한다. 비상근무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간호사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간호사 인력난이 심화되자 보건복지부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 간호사를 대대적으로 모집했다. 모집 창구였던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3월2일까지 1300여 명에 이르는 간호사들이 지원했다. 지원서에는 다음과 같은 동기가 적혀 있었다. “하루빨리 배치돼 환자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나이트 전담도 가능하고 3교대도 가능합니다. 연락주세요” “현재 육아휴직 중이지만 가족의 도움으로 지원하게 됐습니다. 간호사가 되려고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등등. 이들 중 877명이 환자 치료 병동에, 420명이 ‘선별진료센터’에 배치되었다.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 방역은 현재 간호사들의 사명감에 크게 기대고 있는 셈이다.

3월1일 언론이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일부 간호사들이 코로나 병동 근무를 거부했다”라며 포항의료원에서 간호사 16명이 집단 사직했다고 보도했다. 포항의료원은 3월4일 기준 확진자 146명이 입원해 있는 경상북도 코로나19 전담병원이다. 간호사들은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이럴 때 집단 사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네요” “편안한 직업 찾아 다니세요. 자격증 반납하시고” 따위의 악성댓글이 달렸다. 사실과 다른 보도였다. 해당 간호사들은 임신, 건강상 이유 등으로 이미 사직이 예정돼 있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병원이 바빠지자 사직을 미루고 추가 근무를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야 알려졌다.

“당사자도 아닌데 제가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포항의료원의 우수현 간호사(33·가명)는 말했다. 사직한 간호사 두 명은 우씨의 후배였다. “병동은 (확진자들에게) 오픈되고 있는데, 간호사들은 기숙사도 못 구하고 장례식장에서 머물던 상황이었어요.” 일터가 갑자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바뀌었지만 간호사들의 처우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최소한의 자가격리 기간을 받을 수 있는지, 위험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논의할 틈도 없이 감염병동에 투입되었다. 그 과정에서, 임신을 했거나 집에 아이가 있는 간호사들은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우 간호사는 말했다.

우 간호사는 자비를 들여 병원 근처에 숙소를 따로 잡았다. 말기암 환자 병동에서 근무하다가 2월28일자로 늦게 투입된 탓에 기숙사 입소를 할 수 없었다. 보호구를 착용하지만 ‘만에 하나’ 가족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연세가 지긋한 부모가 집에 계신데 제가 지금 어떻게 들어가겠어요.” 감염병동에서 일하는 동안 우 간호사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따로 잡은 근처 숙소에 머물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운영지침에는 ‘파견 간호사’에 대한 보상이 명시돼 있다. 파견 기간 2주 동안 특별재난지역 활동수당, 숙소비 일부 지원, 파견 종료 후 자가격리 기간 부여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최 간호사나 우 간호사처럼 원래 일하던 병원이 전담병원으로 바뀐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최 간호사도 처음에는 한 달을 예상하고 자원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우려스럽다. 포항의료원에서 주 6일 연속으로 근무 중인 우 간호사도 착잡함을 토로했다. “다들 정신없는데 저 혼자만 어떻게 오프(휴일) 달라고 하겠어요. 어느 간호사든 다들 압박감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을 겁니다.”

ⓒ연합뉴스3월5일 신규 공중보건 의사들이 코로나19 현장 배치 대비 직무교육을 받으며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의료진이 감염되는 일도 대구·경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경북대병원, 대구동산병원 등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이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3월1일 대구 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 업무를 수행하던 간호사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보건소가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파견된 간호사였다.

3월4일까지 대구에서만 2만3499건의 검체 채취가 진행됐다. 일반 시민 66.3%, 신천지 교인 33.7%였다. 의료봉사를 지원한 계명대 동산병원 김동은 교수(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선별진료소마다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줄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증상이 있으면 검사비 16만원을 내고 1시간씩 기다려서 검사를 받는다. 대구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대구는 선별진료소 15개로도 검사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최근 4개소를 더 늘렸다. 파견된 공중보건의와 간호사가 팀을 이뤄 검체 채취 작업을 진행한다.

코로나19보다 몸살이 더 걱정인 이유

이명지 간호사(26·가명)도 대구 한 보건소 선별진료소에 배치되었다. 이 간호사는 “현재 의료진들의 안전이 담보되고 있는 상황인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코나 입에 면봉을 깊이 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기침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보호구는 착용할 때보다 탈의할 때 바이러스가 몸에 묻을 수 있어 더 신중해야 한다. 자가격리자 집에 방문해 검사를 하는 ‘이동 검진’을 할 땐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공기가 차단된 음압 텐트에서 보호구를 탈의하는 것이 원칙인데, 보호구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 주민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어서 착탈의 장소로 아파트 비상계단을 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동 검진에 참여하는 공중보건의 임재우씨(가명)는 “감염관리에 신경 쓰고 있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다. 나이가 젊으니까 걸리더라도 중한 폐렴까지는 가지 않을 텐데, 전파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여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방역 현장 의료인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매일 세 자릿수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병상을 확보하지 못해 자가격리 도중 사망하는 환자들도 생겨난다. 최일선에 선 간호사들은 “코로나19 감염보다 몸살 나는 게 더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상황에서 인력이 한두 명씩 빠지게 되면 나머지 간호사들에게 업무가 가중될 게 뻔하다. 포항의료원의 우 간호사는 “코로나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희 임무인데, 우리가 지치면 방역 공백이 생길까 봐 그게 너무 무섭다”라고 말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 나는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서 중 일부이다. ‘사명감’은 많은 간호사들이 감염병동 업무를 자원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죽겠다 싶으면 다들 손 놓는 거잖아요. 환자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까 다들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언제까지 사명감만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최 간호사의 말이다. 코로나19 방역 두 달째, 나이팅게일 선서 앞에 간호사들의 걱정은 깊어간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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