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홍콩 공공병원 노조원들이 2월3일 “중국과의 국경을 차단하라”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2박스 생큐!’ 최근 홍콩 누리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유행어다. SNS에 마스크 판매 정보가 올라오면 ‘2박스 부탁한다’라는 뜻으로 댓글을 남긴다. 마스크를 구입하기 어려운 홍콩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말이다.

17년 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홍콩 시민 약 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참한 역사를 기억하는 홍콩 시민들은 코로나19에도 신속히 대비했다. 마스크, 손소독제, 표백제 등 방역 용품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가격도 폭등했다. 지난 1월 말부터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드럭스토어 앞에서 밤새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한 드럭스토어에 마스크를 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순식간에 수천 명이 몰리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찾다가 오히려 감기에 걸린 이들도 있었다. 수입에 의존하는 마스크는 다 품절되었다.

휴지, 쌀, 기름 등 생필품 사재기도 이어졌다. 중국 공장 생산이 중단되며 공급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홍콩 정부가 “생필품 공급에 문제가 없다”라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시민 불안감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2월17일에는 슈퍼마켓에서 15만원어치 휴지를 훔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마스크 물량 확보는 캐리 람 행정장관 정부에게 닥친 가장 큰 난제로 꼽힌다. 시민뿐만 아니라 의료진을 위한 마스크와 보호복까지 모자라는 상황이다. 홍콩 보건 당국에 따르면 현재 재고로는 1개월 정도 버틸 수 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세계 각지에서 마스크 4800만 개를 주문하겠다고 밝혔지만, 각 국가의 타국 수출제한으로 인해 현재 약 300만 개만 입수했다. 홍콩과 가까운 마카오와 타이완 정부를 살펴보면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할 수 있도록 구매 수량 제한 정책을 도입했다. 타이완은 매주 마스크 2개만 구입이 가능하고, 마카오는 10일마다 10개씩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반대로 홍콩 정부는 경영 불간섭 방침만 강조하고 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심지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회피하기도 했다. 그는 2월4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의료진을 위해 마스크 재고를 비축할 필요가 있다.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서의 공무원들이 마스크를 쓰지 말 것을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다음 날 사과했다. 일각에서는 캐리 람 행정장관이 시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유했다면 정부가 오히려 난처한 상황을 맞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현 정부가 지난해 10월 송환법 개정안 반대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2개월 만에 위헌 판정을 내렸다.

중국 본토 입국자 14일간 의무 격리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대응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홍콩 국경이 중국과 연결되어 있는 만큼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도 컸다. 정부는 1월 말 후베이성을 방문한 모든 사람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조치가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홍콩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후베이성 방문 여부를 일일이 조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1월 중순부터 감염증 환자 유입을 예방하도록 ‘근원을 철저히 차단할 것’을 주장하며, 중국 국경 폐쇄를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비행기로 입국하는 중국 여객들에 한해 건강상태 질문서를 제출하라는 조치만 시행했다. 홍콩 정무사 사장(총리 격) 매슈 청은 고속열차를 탑승하는 여객들이 도착할 때 한곳에 모여 건강상태 질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오히려 감염 위험성이 더욱 높다고 말했다. 이 발언 다음 날인 1월22일, 홍콩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는 고속열차에 탑승해 입국한 우한 시민으로 밝혀졌다. 홍콩 정부의 방역 조치가 늦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EPA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첫 확진자 발생 후 ‘국경을 폐쇄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라 일부 국적자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방침을 강조하면서 국경 전면 봉쇄 요구를 거절했다. 홍콩 확진자 수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1월 말 중국 본토를 오가는 고속철도와 직통열차의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중국인 여행비자 발행도 잠시 중단됐다. 이러한 조치로 입국하는 중국인 수는 줄었지만 바이러스 보균자들이 여전히 로후, 록마차우 등 육로 출입국관리소로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커지자 2월3일 홍콩 의료인 2400여 명은 중국과의 통행 전면 중단을 요구하며 한 주간 파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전면 봉쇄 대신 선전완 지역을 제외한 로후, 록마차우, 홍콩·마카오 페리터미널 등 출입국관리소 4곳을 임시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의료진 파업을 비판하면서 이 결정은 의료진의 파업과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2월5일 정부는 중국 본토로부터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해 ‘14일간 의무 격리’ 조치를 발표했다. 격리시설로 지정된 공영주택 주변 거주자들의 반발이 심해 충분한 격리시설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의무 격리는 자가격리 혹은 호텔에 격리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정부는 의무 격리 조치를 위반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경 봉쇄에 대해 우왕좌왕하던 캐리 람 정부가 2월24일 밤, 사전 통보 없이 한국인이나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정부는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을 방문했던 홍콩인에 대해서도 14일 의무 격리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홍콩 시민들은 “한국인에 대해서는 신속히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중국인 입국금지는 ‘차별’을 이유로 하지 않는 것이 이중적이다”라며 비판한다. 이 발표 당시 기준으로 대구를 포함해 한국의 확진자 수는 800명을 넘지 않았으나 중국 본토의 확진자 수는 약 8만명에 달했다. 일관되지 않은 정부의 방역 대응을 두고 국민의 건강보다 베이징 눈치를 더 많이 본다는 분석도 나온다.

후베이성과 일본에 체류 중인 홍콩인들을 귀국시키는 방안도 뒤늦게 나왔다. 지난 1월 우한이 폐쇄되면서 홍콩 시민 2000여 명도 함께 갇혔다. 우한 폐쇄 이후 한 달이 지나자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를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부는 후베이성 내에 홍콩인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한꺼번에 데려오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우한이 폐쇄된 지 한 달이 지나서 전세기를 파견하겠다고 밝혔으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2월22일 〈빈과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캐리 람 정부가 베이징 정부에,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서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번 위기가 다가올 9월 입법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며, 이번에 잘 대응하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의료인 파업 등 반대 진영이 이번 사태로 정부를 공격하면서 캐리 람 자신이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행정장관실은 지금까지 이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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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관명린 (홍콩 라디오텔레비전(RTHK) 에디터)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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