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애로운 미국, 악의에 찬 중국?
  •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 호수 651
  • 승인 2020.03.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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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중국위협론은 1920년대 ‘황화론’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스스로 초래한 ‘서구의 실종 상태’에 대한 해법을 황화론에서 찾으려 한다면 문명충돌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AP Photo

‘Westlessness.’ 흔히 ‘외교안보 분야의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뮌헨안보회의(MSC)가 2월14일 제56차 콘퍼런스를 개최하며 내건 키워드다. 문자 그대로 옮기면 ‘서구의 부재성(不在性) 혹은 실종 상태’ 정도 될까.

주최 측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구축된 자유주의 세계질서와 다자주의 전통의 쇠락에 더해 미국의 국제 리더십 결여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정작 미국의 시각은 달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세계를 지배하려는 중국’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한편, “서구는 승리하고 있다. 우리는 집단적으로 승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함께 이뤄내고 있다”라고 선언하며 ‘서구 실종론’을 일축했다. 물론 그가 말한 승리는 중국에 대한 승리였을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네 가지 중국의 위협

이들이 말한 중국의 위협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군사적 위협이다. 중국은 2035년까지 인민해방군 현대화를 완료하고 2049년에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 아시아 전역을 지배해 주변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 위협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으로 세계 각국에 침투함으로써 이들의 대(對)중국 경제 의존을 정치·군사적으로 악용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세 번째는 과학기술 위협론이다. 화웨이의 5G 장비 수출을 통해 서방국가들에게 사이버 안보 불안을 야기하는 한편, 인공지능(AI) 분야에서의 수월성을 활용해 서방을 향한 위협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는 우려다. 마지막은 문명적 위협이다. 정치적 자유의 제한과 억압, 소수민족 탄압,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지원으로 요약되는 중국공산당의 행태가 커다란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시각의 저변에는 ‘자애로운(benevolent) 미국’과 ‘악의에 찬(malevolent) 중국’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상당 부분 과장이 섞여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중국의 군사력이 조만간 미국을 능가해 아시아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 현재 중국 군사비는 미국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군사비가 대폭 증액되면서 두 나라의 군사력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어느 나라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고 있는 반면, 미국은 100여 개 국가와 군사동맹 혹은 그에 준하는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는 다를까.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해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중국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5G나 AI 분야에서의 괄목할 만한 진보 역시 우려되는 바 크다. 그러나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내부적 위협과 모순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중국 경제가 순항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굳이 ‘중진국 함정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국 경제는 이미 성장잠재력 둔화와 극심한 부실채권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중국 경제는 올해 5% 성장률 달성도 어려워 보인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가치 기준에 비추어볼 때 ‘중국 특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인권 탄압과 소수민족 문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다만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것은 이제 겨우 40년, 본격적인 부상은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빠른 압축성장 모델도 서구가 200년에 걸쳐 이룬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따라잡기는 어려운 시간이다.

염려스러운 사실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중국위협론이 1920년대 서구에서 풍미하던 ‘황화론(黃禍論:황색인종 억압론)’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1920년대 황화론의 본질적인 한계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문명의 잣대로 치환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 귀결은 태평양전쟁이라는 파국이었다. 미국 스스로가 초래한 ‘Westlessness’에 대한 해법을 중국위협론, 더 나아가서는 황화론에서 찾으려 한다면 21세기 세계질서는 문명충돌이라는 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미국도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현명하고 신중하게 다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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