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경제계에 종사하는 지인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조선일보〉 11월30일자에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기고한 ‘퍼펙트 스톰’이라는 제목의 칼럼 링크였다.

칼럼 요지는 대략 이렇다. 올겨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편으로는 북핵 협상을 타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결렬을 이유로 주한 미군 축소 혹은 완전철수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 핵 정책에 공조를 취하면서 워싱턴 내 지지 세력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주한 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분석까지 담겨 있다. 결국 “한국엔 만신창이가 된 대미(對美) 동맹, 고장 난 한·일 관계만이 남을 것”이며, “러시아는 한국 영공을 계속 침범할 것이고, 중국은 사드 문제로 경제적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다. 이른바 ‘퍼펙트 스톰(최악의 상황)’ 시나리오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올겨울 정말로 한국의 안보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게 되나. 빅터 차의 주장대로 북·미가 극적으로 북핵 협상에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위기가 아니라 반전에 가까울 것이다. 교착에 빠진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고 이 지역의 안보 긴장도 한숨 돌리는 계기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면 북·일 관계 개선과 더불어 한·일 간 전략적 소통이 원활해지고 일본과 중국의 의견 조율도 훨씬 긴요해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칼럼 내용처럼 주한 미군이 큰 폭으로 축소되거나 철수한다면 러시아 정찰기가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할 이유도, 중국이 사드 문제를 두고 우리를 압박할 이유도 없다. 빅터 차가 제시한 시나리오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협상에 실패하면서 북한에 일방적 군사행동을 감행하는 와중에 주한 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할 때, 우리가 우려하는 진짜 ‘퍼펙트 스톰’이 올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주한 미군 감축이 이뤄진다 해도 이것이 대한민국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한 미군의 수가 얼마이든 동맹 필요성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의지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유권자들 또한 우리가 그 정도 충격을 상쇄할 생존 방안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음을 잘 안다. ‘동맹이 흔들린다’는 오래된 프레임으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가 이어질수록 그 부메랑도 커지리라는 점을 미국 측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주장의 긍정적 측면을 하나만 꼽자면 바로 이 대목일 수 있다. 동맹과 한국의 안보, 주한 미군 없는 한반도라는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근 독일 퀘르베르 재단과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2021년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탈퇴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한 공동 연구보고서를 펴내며 다음과 같은 정책 대안 6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많은 시사점 주는 ‘미국 없는 나토’

첫째, 미국의 나토 탈퇴가 야기할 국내 정치적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마련하라. 둘째, 나토 지휘체계 해체와 미국의 핵우산 공여 철회 등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비하라. 셋째, 유럽의 방위 능력 증강에 투자하라. 넷째, 동유럽 회원국들의 안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라. 다섯째, 억지력과 방위 태세 구축에는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므로 통합 대공·미사일방어, 사이버전과 우주전, 대잠수함전 능력, 장거리 정밀타격 자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해도 각 회원국은 미국과의 양자 안보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필요할 경우 미국과 연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듯 유럽 주요국이 고민하고 있는 ‘미국 없는 나토’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이 지금 모습대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만은 분명하다.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숙고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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