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폭력의 완성은 성매매였어요”
  • 김영화 기자
  • 호수 644
  • 승인 2020.01.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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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성매매한 삶을 담은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펴낸 저자 ‘봄날’은 벼랑 끝에서 벌어진 일 중 자신이 선택한 건 없었다고 말한다. 반성매매 활동가가 된 그는 ‘남성 문화의 변화’를 촉구한다.
ⓒ시사IN 신선영‘봄날’(사진)은 자신의 성매매와 탈성매매 과정을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에 기록했다.

카메라가 그림자를 향해 셔터 음을 냈다. ‘봄날(활동명)’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다 문득 레이철 모런을 떠올렸다. “저도 레이철 모런처럼 얼굴 내놓고 멋있게 활동하고 싶은데 한국 사회가 참 어려워요.” 아일랜드 출신의 반(反)성매매 활동가인 모런은 10대 때부터 7년간 자신이 겪은 성매매 경험을 바탕으로 〈페이드 포,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이란 책을 냈다. 반(反)성매매 활동가인 봄날도 지난해 11월 자신의 생애사를 담은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냈다.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보호와 처벌을 동시에 담고 있지만 구매자나 알선자보다 ‘성매매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된다.

봄날은 열여덟 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다. 업소를 빠져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어쩌다 업소를 선택했어요?’ ‘왜 좀 더 일찍 그만두지 않았어요?’ 하는 질문이 그를 내내 따라다녔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했고 이후로는 업소에서 불어난 빚을 갚아야 했다. 어떤 이는 ‘편하게 돈 버는 창녀’라고, 또 누군가는 성매매에 가담한 범죄자라고 그를 손가락질했다. 명확한 언어로 자신이 겪어온 일을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나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성매매 여성이라는 내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성매매를 했을까’ 하는 질문들이 자책이 되어 돌아왔다.

카메라 앞에 서는 대신 그는 머리핀과 노트 한 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업소에서 일하던 시절 착용했던 액세서리와 성매매에서 벗어난 뒤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었다. 그가 지나온 과거를 의미하는 두 개의 증거였다. 심리 상담을 시작한 2011년부터 3년간 써온 일기장에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날것으로 빼곡히 남아 있었다. “온데만데 자학투성이야. 부끄러워서 못 보여주겠어요.” 페이지를 넘기던 그는 연신 민망하다며 웃었다. 일기를 쓰며 봄날은 처음 자신의 과거와 마주했다. 글을 쓰면서 분노, 억울함, 무력함, 두려움으로 켜켜이 쌓인 감정의 덩어리가 그를 덮쳤다. 업주와 성 구매자에 대한 악몽을 꾸며 식은땀을 흘릴 때도 있었다. 가슴속 응어리를 일기장에 풀어놓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말할 용기가 생겼다.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과정이었다.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서 봄날은 폭력이 할퀴고 간 상처를 발견했다. 가난을 짊어진 여공, 아버지의 학대를 피하고 싶었던 딸,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던 어린 자신의 모습이었다. 집을 나온 10대 여성을 환대하며 ‘눈만 질끈 감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던 업주의 말이 동아줄처럼 느껴졌던 이유였다. “빈곤하고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폭력이 더 큰 폭력으로 이어졌고, 그 모든 폭력의 완성은 성매매였어요.” 이후 ‘성매매 여성’에게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기로 했다. 길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벼랑 끝에 와 있었다고, 벼랑 끝에서 벌어진 일들 중 자신이 선택한 건 없었다고 말이다. 그가 426쪽에 이르는 방대한 생애사를 쓰게 된 이유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와 싸워야 해요”

봄날은 성매매 당사자였지만 성 착취 현장의 목격자이기도 했다. 그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 착취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가 본인이 몸담았던 룸살롱, 유리방, 보도방, 티켓다방에서 목도한 것은 성 구매자들의 민낯이었다. “그들은 돈으로 내 몸을 샀다고 여기며 마음대로 대했고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거나 추악한 성행위를 거부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예사였다.” 구매자의 사회적 지위는 다양했다.

성 착취 구조의 다른 한쪽은 업주와 마담이 떠받치고 있었다. “업주는 절대 권력이었어요. 그들에게 밉보이면 어디로 팔려갈지도 모르니까 말을 들을 수밖에 없죠.” 악덕 업주들은 ‘2차’를 거부하면 ‘사창가로 팔아버린다’라거나 가족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성매매를 ‘성 착취’라고 본다. 여성을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업주들은 강제로 다이어트 약을 먹이고 성형을 강요했다. 생리를 할 때는 솜을 넣게 했고,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그에게 결근비로 하루 50만원을 청구했다. “몸뚱이가 밑천인데 네가 관리해야지. 누가 임신하래?”라는 말을 업주로부터 들었다. 20년간 지켜본 성매매 업소에서 ‘인권’이란 두 글자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업소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에는 선불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봄날은 말한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대가로 받는 돈이지만 여성들에겐 족쇄가 된다. 숙소비부터 화장품값, 미용실, 사우나, 홀복(유흥업소에서 입는 의상)과 액세서리 등은 업주에게 도로 갚아야 하는 빚이다. 업소를 그만두려면 빚을 갚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상 구매자들 중에는 여성들이 술을 버리거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를 들며 술값을 되돌려받는 이들도 있었다. 불어나는 빚을 갚기 위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해야 했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구매자들의 비위도 맞췄다. 악순환이 그렇게 이어졌다. “이 모든 폭력을 고발하고 싶었어요.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줄곧 저에게만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물어야 하지 않나요? 왜 업소를 차렸는지, 왜 성 구매를 하는지요.”

성매매 경험은 그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업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인한’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야 했다. 업소에선 모두 권력관계였다. 업주에게 인정받기 위해 성매매 여성끼리 서로를 이간질하고 감시했다. 자신을 착취하는 업주를 엄마, 아빠, 삼촌이라 불렀다. 성매매에서 벗어나더라도 여성 대부분 오랜 업소 생활로 인한 후유증을 호소한다. 봄날은 그 후유증으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활 지원만 받으면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묻지만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과거와 싸워야 해요.” 낙인찍힌 경험은 뼛속까지 각인된다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모멸감을 준 업주와 성 구매자에게 왜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때 기억이 떠올라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온전히 나 스스로를 직면하고 이해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성매매 경험 당사자 자조모임과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에 참여하면서 이 모든 게 개인사가 아닌 구조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성매매에 유입된 과정부터 탈성매매 이후 자립하기까지 여성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 언니가 집결지에서 탈출하던 날 이야기를 해줬어요. 업주와 마담이 단잠에 빠진 틈에 지갑도 못 챙기고 신발도 못 신은 채 빠져나왔다고요.”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탈출하지 못한 많은 여성들이 업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 사건으로 여성 5명이 숨졌고 2002년 군산 개복동에서 역시 화재로 여성 14명이 희생됐다. 두 현장 모두 출입문 밖에 잠금장치가 있었다. 인권 사각지대에 있던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2018년에도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던 여성 2명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천호동 화재 사건). 구매자에게 살해당하거나(2011년 창원 ‘노래방 도우미’ 피살 사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2014년 통영 티켓다방 종업원 투신 사건).

ⓒ시사IN 신선영‘봄날’이 업소에서 일하던 시절 착용했던 액세서리와 성매매에서 벗어난 뒤 쓰기 시작한 일기장.

성 착취 산업, 이주민 여성들로 유지돼

2016년 봄날은 과거에 일했던 업소들을 다시 찾았다. 이름 없이 떠난 여성들을 추모하고 그 속에 있던 과거의 자신을 기억하고 싶었다. “이곳에서 힘들게 삶을 이어나가며 착취당했던 여성들의 삶은 누가 기억해줄까?” 다시 찾은 그곳은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대로 남아 있는 업소도 있었다. 한때 일했던 티켓다방 주인은 요즘은 탈북 여성이나 중국동포 여성을 쓰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취약계층인 이주민 여성들로 한국의 성 착취 산업이 유지되는 중이다. 성매매 시장은 스마트폰 채팅앱, 인터넷 방송 등 온라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3년마다 시행하는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실태조사(2016년)에 따르면 업소들이 최소 10개 이상 밀집된 성매매 집결지 42곳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는 4402명이다. 그중 1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3%가 하루 8~12시간을 일한다고 답했고, 70%가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63%는 빚이 있었다. 남성 1050명을 대상으로 성매매 경험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2명 중 1명(50.7%)은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성 구매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인당 평균 성 구매 횟수는 8.46회였다.

반(反)성매매 활동가가 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매일 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담을 할수록 성매매 여성의 자활에 대해 사회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한국형 ‘노르딕(북유럽) 모델’을 도입해 알선업자와 성 구매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스웨덴, 프랑스 등에서 확산되는 노르딕 모델은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다). “미투 운동에서 고발된 성폭력 행위들이 업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요. 그런데도 언니들은 ‘범죄자’라는 딱지 때문에 폭력을 당해도 말하지 못해요.” 탈성매매 이후 사회적 관계가 고립되거나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업소로 돌아가는 사례들을 마주친다. 이것을 과연 자발적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저자는 묻는다. “여성을 거래하는 남성 문화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성매매 여성은 얼마든지 만들어지는 겁니다.”

책이 나오자 온라인에서는 날선 반응들이 이어졌다. ‘성매매 하는 여성들 명품 가방 들고 해외여행 다니더라’ ‘피땀 흘려 돈 벌지 않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라’ ‘불쌍하다 범죄자 주제에’…. 저자에게 익숙한 낙인이었다. 그는 “그 여성이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성매매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그가 삶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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