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도 모자라 독재 앞잡이 짓까지 한 의원들
  • 김형민(SBS CNBC PD)
  • 호수 643
  • 승인 2020.01.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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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이승만 장기독재의 길을 연 사사오입 개헌의 ‘일등공신’은 장경근·이재학 의원이다. 장경근은 수학자를 동원해 ‘사사오입론’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학은 개헌 돌격대장 노릇을 했다. 두 사람 다 친일파로 불릴 만한 인물이다.
ⓒ연합뉴스1956년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자유당 이승만·이기붕 후보의 선거 홍보물이 동대문에 걸려 있다.

1954년 5월20일 제3대 민의원(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그 시절 이승만의 자유당이 부리는 위세는 대단했다고 해. “자유당은 산하에 국민회, 한국청년회, 농민회, 노총, 부인회 등 단체를 두고 있으며 세포조직인 구인조(九人組)는 애국반(愛國班)적 형태를 가지고 있으므로 유권자인 국민은 거의 자유당원이라고 볼 수 있는, 말하자면 전국적인 조직체(〈경향신문〉 1954년 3월14일)”였으니까. 자유당이 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의석의 70퍼센트 이상을 점령할 목표로 모든 힘이 동원되리라 일반적으로 추측되고 있는” 상황이었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5·20 민의원 선거’를 두고 당시 사람들은 ‘곤봉 선거’라고 불렀어. 그만큼 경찰이나 정치 깡패들의 폭력이 흔했다는 뜻이야. 한때 이승만의 측근이었지만 등을 돌린 허정을 보자. 허정은 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선거운동 와중에 선거운동원이 경찰에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어. 더 기가 막힌 건 이 선거운동원이 뇌출혈로 사망한 거야. 견디다 못한 허정은 후보 사퇴를 선언하고 말았어. 경찰은 문제의 선거운동원이 조사를 받다 갑자기 신음을 하는 등 이상 증상을 보여 귀가시켰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나 검시 결과 머리에서 뇌출혈과 타박상이 발견됐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을 생략해도 되겠지.

경찰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산당보다 나쁜 야당 후보에게 투표한다면 당신들 마을을 공산당 소굴로 보겠다”라고 협박하는 일도 횡행했단다. 이런 공포 분위기 아래서 자유당은 전체 지역구 203석 가운데 114석(56%)을 얻게 돼. 나머지 의석도 야당보다는 무소속(67석)이 더 많았어. 공권력이 나서서 야당 후보를 위압하던 상황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던 ‘무소속’이란 정부·여당 처지에서 ‘껄끄럽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봐야겠지.

자유당은 의기양양했어. 무소속 67명 가운데 22명만 회유한다면 개헌 가능한 의석(136석)을 채울 수 있었거든. 2년 뒤인 1956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 장기 집권을 꾀하던 이승만 정권은 중임을 금지하는 헌법을 바꿔야 했고, 자유당으로서는 가능한 한 빨리 개헌을 감행해야 했어. 국회가 열리고 활동을 개시하자마자 자유당은 개헌안을 발의한다. 당시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이가 있으니, 자유당 원내총무 이재학이었어.

야당인 민주국민당이 독재의 발판이 될 개헌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 이재학 의원은 되레 야당 의원들을 단호하게 꾸짖었어. “그 입론(立論)에 있어 조리를 범(犯)하고 관찰에 있어 냉철을 결(缺)하고 판단에 있어 공정을 실(失)한바, 이는 소위 ‘반대를 위한 반대’다(〈동아일보〉 1954년 9월2일).” 반대를 위한 반대. 독재자들이 저항하는 이들을 향해 ‘그럼 어쩌라고’ 하는 투로 던져온 유구한 역사를 가진 표현이지. 자유당은 체면도 양심도 없이 개헌을 밀어붙였어. 개헌 반대 진영에서 나온 “입헌정치 간판 아래서 1인 군주(君主)주의 하자는 것이냐”라는 지극히 당연한 비판에, “국난 타개를 위해서는 국부 이승만 박사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라며 노골적으로 독재를 옹호할 정도였지.

1954년 11월27일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고 표결에 들어갔어. 결과는 자유당 의원들의 기대를 절묘하게 배신했단다. 찬성 135표. 개헌안이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203명 가운데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데 단 1표가 모자랐던 거야.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이었거든.

‘민의의 전당’을 ‘행정부의 시녀’로 만든 자들

경무대(대통령 관저)에 들어간 자유당 의원들은 걱정과 달리 희희낙락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마주하게 돼. 이때 그들이 들은 논리가 바로 그 유명한 ‘사사오입’이었어. 다음 날 소집된 자유당 의원총회에서 이재학이 펼친 주장을 들어보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인데 자연인을 정수 아닌 소수점 이하로 나눌 수 없으므로 사사오입의 수학 원리에 의하여 가장 근사치의 정수인 135명임이 의심할 바 없다(〈경향신문〉 1954년 11월30일).”

사사오입이란 ‘넷 이하는 버리고 다섯 이상은 끌어올려 계산하는’ 요즘 말로 하면 반올림이지. 그러니 135.3명 찬성은 136명이 아니라 135명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어. 개헌안이 부결돼 이미 선포까지 끝난 국회의 결정을 뒤집는 폭거였지. 그러고도 이재학은 후일 이렇게 강변하고 있어. “모두들 후에 악평한 것같이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잘못이 있었다면 일단 부결로 선포한 것을 다시 가결로 뒤엎어버렸다는 데에 있다(〈매일경제신문〉 1969년 6월26일).” ‘사사오입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소리였지.

ⓒ대통령기록관연구실장경근(위)은 사사오입 개헌 후 내무부 장관, 자유당 정책위 의장으로 승승장구했다.

도대체 이 사사오입이라는 기괴한 논리를 개발한 이는 누구인가.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유력한 후보는 장경근이라는 자유당 국회의원이야. 개헌안이 부결되자마자, 그가 친분이 있던 수학자를 데리고 경무대를 방문해 ‘사사오입론’의 묘수를 제공했다는 것이지. 장경근은 자유당 의원총회에서 사사오입 개헌안의 정당성을 역설하다가, 역시 자유당 소속이었으나 아이들 장난 같은 정치 놀음에 분개한 김두한 의원이 날린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기도 했어. 이때 창피를 좀 당하긴 했겠지만, 사사오입의 공을 인정받은 덕분인지 그는 이후 내무부 장관, 자유당 정책위 의장으로 승승장구한단다.

이재학과 장경근은 공직에 입문한 때가 일제강점기라는 공통점이 있어. 이재학은 총독부 관리로 출발해 군수를 지내다가 해방을 맞았고, 장경근은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시에도 합격해 판사가 됐지. 이른바 ‘친일파’로 불릴 만한 사람들이야. 아빠는 친일파보다도 국회의원으로서 이승만 장기독재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 더 강력한 손가락질을 퍼붓고 싶구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천재라 불릴 만한 재능을 전혀 엉뚱한 데 쏟아붓고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이름을 욕되게 했으니까. 이승만이건, 박정희건, 전두환이건, 우리 역사에 등장한 독재자 가운데 국회 문을 닫아버리고 홀로 독재를 한 적은 없었어. 이는 ‘민의의 전당’을 ‘행정부의 시녀’로 만드는 데 앞장선 국회의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겠지.

장경근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몰려 구속됐어.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이 관대하다는 여론에 의해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법 도입이 논의되자 병보석으로 출감해 일본으로 ‘튀어’버렸지. 후일 신문에 기고한 회고에서 이 ‘망명객’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 “나를 몰아내는 것은 소급입법(법령을 이미 종결된 사실 또는 법률관계에 적용하는 것)이다. 소급입법을 강요하는 민의는 진정한 다수는 아니다. 강하고 책임 있는 정부라면 나의 책임에서 도망칠 생각은 없다(〈중앙일보〉 1985년 9월6일).”

법을 배우고 행정을 익힌 자들이 자기 손으로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죄를 짓고도 법을 방패 삼아 정당성을 세우려는 작태가 우리 현대사에서는 수없이 등장해.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개헌을 막으려는 야당 의원들에게 적반하장 큰소리를 쳤던 이재학의 말을 비틀어 되돌려주고 싶구나. “그 논리에 조리가 없고, 역사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에 책임감이 없으며, 오로지 제 이익만 찾는 판단으로 일관한바” 이들은 이른바 ‘탐욕을 위한 탐욕’의 화신일 뿐이었지.

네가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날이 다가오는구나. 투표장에서 쭉정이와 고갱이를 발라내는 것도 유권자의 일이지. 이재학이나 장경근 같은 이들은 ‘전직 군수’ ‘고시 합격한 판사’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냈고 ‘한 인물 한다’는 평을 들었을 거야. 오늘날 네 앞에도 그런 인물들이 없을지 두 눈 부릅뜨고 살펴보기 바란다. 네 소중한 권리가 그런 인물들로부터 모욕받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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