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연준혁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 대표.

‘100년’과 ‘대중’. 연준혁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 대표가 자주 언급한 단어다. 3년 전 위즈덤하우스는 ‘100년 가는 출판사’에서 ‘100년 가는 콘텐츠 기업’으로 기업 미션을 바꾸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온라인 웹툰 플랫폼 ‘저스툰’을 론칭했다. 단행본 출판에 더해 웹툰과 웹소설 분야를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2019년은 예담출판사로 출판계에 발을 내디딘 지 20년 되는 해이기도 했다. ‘대중적인’ 책을 만들겠다는 게 그간의 기본 마음가짐이었다.

많은 출판인들이 ‘올해의 출판사’로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을 꼽았다. 시의적절한 기획과 발 빠른 섭외, 두 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다. 설문에 응한 한 편집자는 ‘가능성 있는 저자를 발견해 찾아가면 늘 위즈덤하우스가 다녀간 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뛰어난 기획력과 발 빠른 작가 섭외력을 보여주는 출판사’라고 말했다. 시장을 보는 눈과 빠른 기획력을 가진 편집자를 보유한 출판사로 평가하기도 했다. 올해의 책 목록에도 이름을 올린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도 자주 언급되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연준혁 대표는 “회사로서는 굉장히 큰 영광이다. 처음부터 독자와 교감할 수 있는 책에 방점을 찍고 활동해왔다. 대중적인 출판사로 인식되는 데다 출판계와 교류가 많은 편이 아닌데 지목해주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시장을 읽는 기획력과 발 빠른 섭외의 배경은 무엇일까. 연 대표는 편집자의 정성을 들었다. 저자를 알아보는 안목이 편집자의 중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규모가 있다 보니 편집자들의 관심이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어서 저자 발굴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하는 편인 것 같다. 어떤 책이 잘 나갈지 모르지만 좀 더 빠르게, 많이 안 하는 걸 시도하려고 한다. 편집자들에게도 그렇게 요구하는 편이다.” 직원 160여 명 중 50~60명이 편집자다. 20개 넘는 사내 동아리와 ‘덕질’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100년 가는 콘텐츠 기업이 되기 위해선 계속해서 성장해야 했다. 창업 후 10여 년간 자기계발서와 경영서를 많이 냈다. 자기계발서 〈배려〉가 150만 부, 〈경청〉이 70만~80만 부 팔렸다. 10권 완결의 〈미생〉이 300만 부를 넘기기도 했다. 최근엔 에세이 쪽으로 대중의 관심사가 옮아갔다. 지난해 출간된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약 50만 부 나갔다. 연 대표는 “자기계발서를 본다고 해서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거다. 위로와 공감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에세이 쪽으로 가고 있다. 앞으로 흐름이 어떻게 바뀌든 독자의 요구에 따라 우리가 만드는 책도 바뀌어갈 거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중 시장에서 ‘덕후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몇 년은 변화와 모색의 시기이기도 했다. 제2의 창업을 떠올릴 정도였다. 출판시장이 축소되고 단행본만으로 성장의 여력을 찾기 어려워졌다. 지향해왔던 대중 출판의 전략에 수정이 필요했다 “‘매스 시장(대중 시장)’에서 ‘덕후 시장’으로 바뀌는 것 같다. 지적인 교양 독자가 줄고 책 읽는 행위 자체가 마니아의 습관이 됐다. 많은 대중을 상대로 잘 팔리는 책을 만들고 독자와 교감하려는 출판사 처지에선 그 시장이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재작년부터 편집자 개개인의 ‘덕질’을 권장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연간 300여 종의 책을 낸다. 매년 몇십만 부짜리 베스트셀러가 있었지만 올해는 10만 부 넘은 책이 없었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가 약 10만 부로 올해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인간 본성의 법칙〉이 약 5만 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4만 부 정도다. 베스트셀러의 사이즈 자체가 줄었다. 커다란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처럼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는 베스트셀러가 나오기는 어렵다. 개인의 다양한 기호에 따라 기획해야 한다.”

베스트셀러인 〈미생〉과 저스툰 론칭은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의 운명을 바꾼 두 사건이었다. 〈미생〉을 통해 웹툰이 가진 확장성을 감지했다. 출판사의 강점인 기획력과 글 다루는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 진출할 영역을 찾았고, 웹툰과 웹소설이 그 답이었다. 온라인 플랫폼 저스툰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단행본이나 웹툰 콘텐츠를 기반으로 영화, 드라마, 모바일 미디어 영역까지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다.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이 출간한 책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할 경우, 일부라도 제작에 투자하려고 한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도 뮤지컬, 만화, 소설로 만들어졌다.

2010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연 대표는 첫 직장인 웅진미디어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일했다. 당시엔 뉴미디어 담당이었다. 단행본 기획자로 위즈덤하우스와 연을 맺었고 베스트셀러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경영진이 책을 기획하는 데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개인적 관심사는 역사다. 그가 위즈덤하우스에서 펴낸 11권짜리 〈춘추전국이야기〉 세트를 보여주었다. 중국으로 수출되어 곧 출간될 예정이다. ‘1만 개의 관심을 담은 1만 권의 책을 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한 편집자의 설문 응답처럼 경계 없이 다양한 책을 낸다.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여덟 개의 편집부가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책을 기획한다.

변화에 따른 진통도 있었다. 온라인 사업에 생각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했다. 저스툰 론칭 당시 교양 만화를 표방하던 ‘오리진’의 연재가 중단되고 윤태호 작가와도 결별했다. 출판사 최초의 책 전문 팟캐스트 ‘빨간책방’도 올해 마무리됐다. 미디어 환경에 맞게 유튜브로 변화를 꾀했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실적에 대한 압박은 빠른 성장의 그늘이기도 하다. 연준혁 대표에게 2020년은 목표가 없는 유일한 해가 될 것 같다. “성과는 결과물이지 목표가 아니다. 편집자들의 취향을 최대치로 발휘하며 즐겁게 일해보자는 생각이다.” 출판인이 꼽은 또 다른 올해의 출판사로는 〈90년생이 온다〉를 출간한 웨일북, SF 전문 브랜드 ‘허블’로 외연을 넓히고 있는 동아시아, 탄탄한 기획력으로 매년 꾸준히 추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어크로스, 올 한 해 주목받은 인문서와 소설을 다수 출간한 창비 등이 언급되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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