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18년 10월30일 장지연 국민연금 개혁특위 위원장이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기업은 국민연금과 별도로 직원 퇴직금으로 월급의 12분의 1, 즉 8.33%를 매달 적립하게 되어 있다. 1년 동안 적립하면 한 달 임금이 된다. 해당 직원 처지에서는 한 달 임금 분량이 매년 퇴직금으로 쌓이고 있는 셈이다. 최근 퇴직금으로 적립되는 월급의 8.33% 가운데 3%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전환하자는 제안이 나와서 잠시나마 여론을 들끓게 했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노동자 월 소득의 9%(보험료율)인데, 노사가 각각 4.5%씩 부담한다. 월급 100만원을 받는 노동자라면 본인이 4만5000원(4.5%), 회사 측이 4만5000원(4.5%)씩 모두 9만원(9%)을 연금 보험료로 납입한다. 이와 별도로 사측은 100만원의 8.33%인 8만3000원 정도를 해당 노동자의 퇴직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최근 나온 제안은 이 8만3000원 가운데 3만원(월급의 3%)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돌리자는 이야기다. 이 경우, 100만원 월급자의 연금보험료는 본인과 회사가 각각 4만5000원(합계 9만원), 사측이 퇴직금 적립금에서 뗀 3만원을 합해 12만원이 된다. 보험료율이 12%로 올라간다. 다만 매달 퇴직금으로 적립되는 돈은 월급의 5.33%로 줄어든다.

어떻게 보면 큰 변화가 없다. 회사 측에서는 어차피 부담해야 할 기존의 퇴직 적립금 가운데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전환하는 것일 뿐이다. 노동자는 퇴직금으로 받을 돈 가운데 3%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미리 내는 정도다. 일견 ‘조삼모사’인 이런 방안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연금 적립금의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서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오는 2057년에 고갈된다. 고갈 자체는 불가피하다. 국민연금으로 들어가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월 100만원 소득자라면 대충 40년간 매월 9만원(보험료율 9%)을 보험료로 내고 퇴직 후엔 20~30여 년 동안 매월 40만원의 연금급여(소득대체율 40%)를 받게 된다. 이른바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 체제다.

국민연금 적립금이 고갈되면, 해당 시점의 젊은 가입자들로부터 보험료를 걷어 퇴직자들에게 연금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고갈로부터 3년 뒤인 2060년의 가입자들은 소득의 무려 26.8%를 보험료로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급여를 받는 고령층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대로라면 미래 세대에 전가될 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지금 세대가 현 시점에서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적립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밖에 없다. 보통 현 시점부터 70년 동안 연금 적립금 고갈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국민연금으로 들어올 돈을 늘리는(보험료율 인상) 반면 나갈 돈(연금 급여)을 줄이면(소득대체율 인하) 된다. 지금 세대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국민연금 자문위원회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현행 40%로 유지하면서 적립금 고갈 시기를 2057년에서 2088년으로 31년 늦추려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6%선으로 올려야 한다.

ⓒ연합뉴스2018년 10월30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국민연금 개혁 사회안전망 쟁취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이해충돌 문제

가입자 처지에서는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라고 주장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한국노총,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대한은퇴자협회 등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 50%로 오히려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득대체율을 그 수준으로 높이면서 적립금 고갈 시기를 늦추려면 보험료율을 18~20% 선으로 인상해야 한다.

물론 적립금 고갈을 무시해버린다면, 보험료율을 유지하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현 세대는 풍족한 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금 세대 중 상당수가 생존하지 않을 수십 년 뒤까지 내다보면서 설계해야 하는 제도다. 이런 측면에서 현 세대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 간의 이해충돌이 벌어지는 장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정으로 인해 지난해 10월30일부터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이하 특위)’에서 논의가 진행되었다. 특위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노사정과 공익위원 등 연금 관련 이해당사자들로 구성되었다. 특위에서 도출된 합의가 국회로 넘어가 통과되면 새로운 연금제도가 법제화될 예정이었다. 특위는 지난 4월까지 6개월 동안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국노총 등 가입자들은 대체로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이며 보험료도 12%로 인상하는 방안을 지지했지만, 경영계는 현행 유지를 주장했다.

이처럼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꽉 막혀버린 상황에서 나온 방안이 바로 특위 공익위원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IT금융경영학)가 제안한 ‘퇴직금 전환제’다.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린다면 보험료율을 18%로 인상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계도 기업도 보험료를 많이 올릴 형편이 안 된다. 퇴직금 적립금 일부(3%포인트)를 떼어 국민연금 보험료로 돌리고, 노사가 20년에 걸쳐 0.15%씩 보험료를 인상(총 6%포인트)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면서 보험료율도 18%로 인상할 수 있다.”

퇴직금 중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돌리는 것은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아닐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화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지금처럼 특수한 국민연금의 인구·재정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 간 구조조정을 해서라도 미래 세대 부담을 덜고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화해야 한다.”

‘퇴직금 전환제’는 지난 4월30일로 특위 활동기간이 끝나면서 논의가 중단되었다가, 특위가 재개된 뒤 열린 8월2일 회의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언급하면서 다시 쟁점이 되었다. 8월9일 경총은 보험료 인상에 대한 대안으로 ‘퇴직금 전환제’가 논의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경영계의 공식 제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노동계 대표로 참여하는 한국노총은 내부 검토 끝에 수용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냈다.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차장은 “대법원 판례를 봐도, 근로기준법을 봐도 퇴직금은 후불임금 성격이다. 2005년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일시금으로 받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퇴직금과 연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퇴직연금’은, 사측이 퇴직금 재원을 금융회사에 적립하고, 노동자들은 퇴직 이후 그 돈을 국민연금처럼 주기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에 대해 김용하 교수는 “국민연금 시행 초기에 퇴직금 전환제가 실시된 적이 있다. 1998년 말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수급 개시 연령을 높이는 내용으로 법이 개정되면서 없어졌다. 퇴직금 전환제 당시에도 퇴직금이 임금 성격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보험료 인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노총이 반대하고, 경총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퇴직금 전환제 논의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그럼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김용하 교수는 “퇴직금 전환제를 꼭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려면 보험료율을 18%로 올려야 하고,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려 해도 보험료율을 16%로 올려야 한다. 그것도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2030년 전에 해야 한다. 1970년에는 100만명이 태어났지만 2018년에는 32만명이 태어났다. 보험료율을 나중에 올리면 보험료 낼 사람 자체가 얼마 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물상에서 노인들이 수거해온 재활용품을 운반하고 있다.

미래 세대, 보험료로 소득 30% 내야 할 수도

특위 논의의 결과는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고 보험료율은 12%로 올리는 안이 다수안, 현행 유지가 소수안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첫째,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려야 하는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용돈 연금’이라는 비아냥거림과 불신을 받는 국민연금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소득대체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둘째,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는 경우, 보험료율을 12%(18%가 아니라)까지만 인상해도 미래 세대가 소득의 30% 가까이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을까?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은 대체로 미래에 낙관적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이후 70년을 내다보고 설계해야 한다지만 그 세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인 1950년의 한국인이 2019년의 한국이 글로벌 최대 부국 중 하나로 발전하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30여 년 뒤인 ‘2057년에 적립금이 고갈된다’며 현재를 희생하고(보험료 인상, 소득대체율 인하) 연금제도 불신을 부추기기보다 차라리 앞으로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을 높여 적립금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보다는 기초연금을 올리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고 평등하다고 본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이 길수록, 생애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 일부 소득 재분배 기능이 있지만, 아무래도 노동시장 중심부에 있는 이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된다. 액수도 2021년 즈음부터 30만원으로 인상된다. 최근의 국민연금 평균 급여 40만원에 기초연금을 합산하면 매월 70만원 안팎의 노후자금을 쥐게 되는데, 넉넉하지 않지만 적은 돈도 아니다. 오 위원장은 “연금개혁 논의가 (노동시장 중심부에 유리한) 소득대체율 인상의 명분으로 전락하면서, 재정 불균형 및 빈곤 노인에게 절실한 기초연금 인상 논의 등이 사라졌다”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지금의 40%로 유지하되 보험료를 12%까지 인상하고 그 대신 기초연금을 50만원으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서 하위계층은 기초·국민연금, 중위계층은 기초·국민·퇴직연금, 상위계층은 국민·퇴직연금으로 노후소득을 보장받는 ‘다층 연금체계’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퇴직금 전환제 제안은 해프닝으로 지나간 모양새지만 기초·국민·퇴직연금의 적절한 조합, 그리고 국민연금 재정 불균형은 숙제로 남았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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