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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념보다 ‘사실 규명’이 먼저”

‘위기에서 길을 묻다’ - ④ 서중석에게 정해구가 ‘역사의 위기’를 묻다

정리·고동우 기자 intereds@sisain.co.kr 2009년 02월 09일 월요일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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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에 나선 서중석 교수(62·성균관대 사학과)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권위자로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역사비평>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1·2>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현대사 60년>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등이 있다. 진행과 대담에 나선 정해구 교수(54·성공회대 사회과학부)는 한국정치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10월항쟁 연구> <6월항쟁과 한국민주주의> 등의 책을 썼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한 강연과 대담, 청중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주제·이슈별로 요약했다. 정해구 교수가 대담 과정 등에서 밝힌 견해 역시 따로 정리했다(38쪽 상자 기사 참조).

   
ⓒ시사IN 한향란
서중석 교수(왼쪽)와 정해구 교수(오른쪽)는 건국절 논란 등 여러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역사를 보는 관점


나는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이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우리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진실이나 사실보다는 이데올로기가 중요해진 것 같다. 역사 공부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고민스럽다.

한국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특히 현대사는 사실 자체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어떤 이데올로기나 이론을 앞세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사실 규명이 먼저다. 그러나 우리 사회과학자들은 실증을 너무 등한시한다.

물론 완전한 중용이나 객관성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한테 강의할 때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어떤 관점에서,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를 해석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당했던 사람’의 처지에선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민중사관과는 좀 다르다. 이제껏 역사는 강한 사람 중심의 역사 아니었나. 나는 당한 자, 힘 없는 자 등 어쩌면 대다수 한국인의 처지에 서려고 하며 ‘변화’를 중시한다. 조봉암 선생은 이를 ‘피해 대중’으로 부르기도 했다.

다만, 앞서 강조했지만 이것보다 우선하는 것은 ‘사실’이다. 진실이 뭉개져 있는, 무지 상태로 있는 현대사를 가능한 한 내가 아는 사실을 중심으로 설명하려 해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가치관과 상관없이 말하려고 했다.

역사는 후퇴하고 있는가

사실 우리나라는 늘 위기였다. 그렇지만 그런 위기의식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시기도 있는데, 특히 요즘 역사학계는 그 어느 분야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나 싶다. 근현대사 교과서 개편 논란이 대표적이다.
사실 나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이명박 정부에 기대를 가졌다.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르지만, 실용주의 노선에 기대를 해볼 만하다고 봤다. 좌파 진영이 잘못한 점도 많고, 진보든 보수든 결점이 너무 많으니 서로 돌아가며 집권하는 것도 보완적으로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후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니다. 정부는 실용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6월항쟁 이후 20여 년간 이루어진 변화에는 진보·보수 따질 것 없이 대단히 소중하고, 잘 발전시켜나갈 부분이 많다. 민주화 과정이나 남북 관계가 그렇고, 역사 인식 부분도 그렇다.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가능해졌다. 관점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사실 중심의 연구 풍토는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역사 인식, 남북 관계 등 많은 분야에서 뭔가 비틀어지는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역류’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왜 이렇게 됐나 살펴보면, 진보든 보수든 자기 자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너무 삭막하기 때문인 듯하다. 자기를 교육하고, 교양을 닦게 하는 기반이 참 얇다. 특히 보수세력은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지난 10∼20년 동안 자기 반성은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 1950∼1960년대 때 그 모습 그대로다. 보수가 아니라 수구냉전 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모든 걸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희망이 없지 않나란 말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한국 사회는 변할 때는 또 확실하게 변하는 게 있다. 이승만 정권 때 많은 한국인이 ‘나만 살겠다’는 의식으로 조용히 살았지만 결국 학생들을 중심으로 4월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살렸다.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등 망국적 선거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지만 또 그것 때문에 한국 사회가 변화의 힘을 갖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요즘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지난해 ‘촛불’이 있지 않았는가.

   
ⓒ시사IN 한향란
이날 강좌에서 청중은, ‘역사는 후퇴하고 있는가’ ‘희망은 있는가’에 관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
역사 교과서 개편 논란


뉴라이트 역사관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3~2004년경이다. 그러나 안병직·이영훈 교수 등 핵심 인사들이 그런 주장을 펼친 지는 20여 년 정도 된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근대화·개발론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이웃나라에 해만 끼친 게 아니라 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논란은 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일본의 자유주의 사관을 주장하는 학자나 대다수 정치인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다. 엘리트를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나, 대일본제국,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자학 사관’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보는 점에는 분명 유사성이 있다. 이래서 ‘일본의 극우 사관과 공통점이 많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가장 심한 부분은 일제 통치에 동조하는 것이다. 보수 이데올로기의 중추 구실을 하는 조선·중앙·동아의 경우 과거에는 그렇게까지는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친일파를 미화하는 것이 나치 독일을 미화하는 것과 거의 같다는 점을 모르는 듯하다. 파시즘이 인류의 적이라면, 독일뿐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도 절대 용납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거기에 봉사하고 참여한 세력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이 3·15 부정선거를 이끌고 독재 정치를 한 것이다. 그런 세력이 현대사의 중심 세력이 된 것은 참으로 창피스러운 일이다.

역사 논쟁의 뿌리


가장 논란의 초점이 되는 부분은 해방 전후 시기다. 지난해에도 ‘건국절’ ‘광복절’을 놓고 크게 논쟁이 일었다. 그때 상당수 독립운동 관련 단체가 정부 행사에 불참하기도 했는데, 이는 해방 직후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에도 좌우가 서로 장소를 따로 잡아 집회를 열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기념해야 할 날인데 그런 식으로 보냈다. 참 슬프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해방 전후 시기가 논란이 될까. 그 역사적 연원을 살펴보면, 뉴라이트와 보수세력은 해방 직후 싸움의 연장선에서 자기가 전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명 의식이 있는 것 같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5·10 선거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했다. 김구·김규식 등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세력은 통일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승만과 한민당은 단독정부 수립에 나섰다. 이 대립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역사’로서 여전히 현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김구의 초상화를 넣은 10만원권 발행이 현 정권 아래에서 취소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단정 세력의 민족 문제에 대한 원죄의식도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뉴라이트는 ‘민족’을 싫어한다. ‘한국인’이라는 말을 쓰자고 한다. 하지만 이승만·박정희 시대에 쓴 ‘민족’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왜 싫어하겠는가. 해방 이후 김구 쪽에 쏠렸던 대중의 마음에 대해 속으로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아니겠는가. 그런 게 그들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1990년대 말 진행된 과거사 청산도 보수세력을 상당히 자극했다. 친일파 문제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에도 낭패감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위기감이 그들을 역사 투쟁에 나서게 하고 있다.

역사 논쟁의 귀결


보수세력이 역사 논쟁을 제기한 배경에는 박정희 신드롬과 경제성장주의라는 엄청난 두 가지 힘이 있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민주주의냐 경제성장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0%가 경제 성장을 택했다고 한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세대를 막론하고 엄청났다. 그런 상태에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치른 것이다. 어떤 후보는 여러 도덕적 문제가 있어도 살아남았고, 압도적 다수가 지지를 보냈다.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보수세력, 경제성장과 근대화 지상주의자에게 큰 힘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곧 암초가 나타났다. 하나는 촛불이다. 이것은 과거 식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처럼 무력으로 때려잡을 수 없었던 보수세력은 당황했다. 또 하나는 오바마의 등장이다. 백인의 나라,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에서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즈음 신자유주의는 큰 도전에 직면한 상태였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한 신자유주의가 192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낳으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중대한 수정이 요구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보수세력을 낙담케 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역사 논쟁 과정에서처럼 일시적으로는 극성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작은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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