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물자 밀수출 한·일 주장 뜯어보니…
  • 이상원 기자
  • 호수 619
  • 승인 2019.07.3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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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4년간 한국에서 전략물자 밀수출이 156차례 발생’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정부는 ‘밀수출 156건 적발’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수준이 일본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도 있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려 한다. 화이트리스트는 수출허가 심사에서 일부 수출 대상국을 우대하는 제도이다. 한국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보지만 일본 주장은 다르다.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산 전략물자가 한국에 들어가면 북한에 밀수출될 여지가 있기에 세계 안보를 위해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에 대해 하태경 의원(바른미래당)은 “오히려 일본이 북한에 전략물자를 밀수출했다”라고 주장한다. 양측 논지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7월7일 당수 토론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은 대북 제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하지만,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됐다.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음모론 수준의 의혹 제기였다. 이로부터 3일 뒤 나온 후지뉴스네트워크(FNN) 보도는 아베 총리 발언의 사실상 ‘물증’구실을 하게 된다. ‘지난 4년간 한국에서 무기로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의 밀수출이 156차례나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사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더 일찍 준비한 논리였다. 7월5일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자민당 안보조사회장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대량파괴에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가 한국에서 불법으로 유출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근거는 ‘5월의 <조선일보> 보도’였다.
ⓒ연합뉴스하태경 의원(사진)은 7월11일 “북한에 불화수소를 밀수출한 나라는 일본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기사는 5월17일 <조선일보>가 내놓은 ‘대량살상무기로 전용 가능한데… 한국, 전략물자 불법 수출 3년 새 3배’라는 제목의 기사다. 2015년 14건, 지난해 41건, 올해 3월까지 31건으로 국내 기업의 전략물자 불법 수출이 급증세라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의 자료 출처가 우리공화당 조원진 의원실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조원진 의원이 일본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러자 조원진 의원은 7월15일 “지난해 다른 의원들도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던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서 의원 3명이 이 사안에 대해 질의했다.

반면 하태경 의원은 7월11일 “북한에 불화수소를 밀수출한 나라는 일본이었다!”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 의원은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를 인용해 1996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발 대북 전략물자 밀수출이 30건 이상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다음 날에는 “친북 국가에 대량살상무기 물자를 밀수출한 나라도 일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기업이 이란·중국 등에 유도로(induction furnace:핵무기 개발에 사용 가능한 용해로)를 밀수출한 사례가 근거였다. 하 의원은 자신의 이번 ‘폭로’를, 외세의 부당한 침략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싸워야 한다는 측면에서 국공합작에 빗대기도 했다.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그는 일본의 수출통제가 한국보다 오히려 헐겁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공개한 일본 밀수출 사례 중에는 사후 적발이 많다. (전략물자가) 실제로 북한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밀수출 사례 156건 가운데 북한에 도달했다고 확인된 건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하 의원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등이 있는 한국과 달리 원래 일본의 (북한 관련) 제도가 굉장히 허술하다. 예전부터 일본에 북한 선박이나 공작원들이 마음대로 오갔다.”

하지만 하태경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보다 못한지’ 오히려 불확실해진다. 우선 대북 제재 시점이 문제다. 하 의원이 특히 강조하는 불화수소산(불화수소 수용액) 불법 수출 사례는 1996년의 일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1차 핵실험을 감행한 2006년에 시작됐다. 보도자료에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북한 밀수출 사례도 있지만, 절대 다수는 귤·화장품·벽지 등 생활용품이나 사치품이다. 이 역시 대북 제재 위반 사례이긴 하나 ‘안보 위협’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실 일본 주장에 대한 더 적절한 반박은 하 의원보다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내놓았다. 일종의 통계 곡해라는 것이다. 7월14일 산자부는 “한국 정부의 무허가 수출 적발 실적을 갖고서 우리 수출통제 제도를 신뢰할 수 없다고 폄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FNN이 제시한 156건 사례는 당국의 ‘단속 실적’이다. ‘성공한 밀수출’이 아니라 ‘밀수출을 하려다 적발된 건수’인 것이다. ‘4년간 밀수출 156건이 발생한 나라’라는 일본의 비판을 뒤집으면 한국은 ‘4년간 밀수출 156건을 적발한 나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7월11일 박태성 산자부 무역투자실장은 “일본의 주장은 미국의 수출통제 제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다. 산자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은 수출규제를 위반한 업체들에 대해 형사처분 94건, 행정조치 134건을 부과했다. 한국, 미국과 달리 일본 정부는 불법 수출 총건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일본은 북한 무기 생산에 일조한 국가일까

요약하면, 하태경 의원의 자료는 ‘일본에서 북한으로 밀수출된 일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이 자료를 근거로 일본을 ‘대북 제재를 어겨 북한 무기 생산에 일조하는 국가’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물론 ‘대북 제재가 시작된 이후 일본의 전략물자 관리가 한국보다 낫다’고 결론 내리는 것도 성급한 일이다. 일본 정부가 자료를 전수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국 수출통제의 수준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는 지난 5월 발간한 <2019 위험유포지수(PPI:The Peddling Peril Index)>에서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수준이 일본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수출통제 능력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PPI는 5대 항목(국제적 헌신, 입법, 전략물자 거래 감시·발견 능력, 집행의 적절성, 대량살상무기 관련 자금의 공급을 방지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세계 200개국의 전략물자 관리 능력에 점수를 매긴다. 지난 5월 발표된 이 지수에 따르면, 한국이 17위를 차지한 데 비해 일본은 36위에 그쳤다. 흥미롭게도 양국 사이의 점수 차이가 가장 큰 항목은 ‘입법’이었다. 한국은 200점 만점에 198점, 일본은 158점으로 40점 차이가 난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캐치올 시스템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렇게 해야 할 나라는 일본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ISIS가 PPI 지수를 처음 작성한 2017년에는 한국의 순위가 32위(일본은 29위)에 불과했다. 2년 동안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수준이 많이 개선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전략물자 밀수출을 매해 더 많이 적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긍정적 지표로 쓰였을 수 있다. <조선일보>와 일부 의원들, FNN의 시각과 반대다.

7월11일 대정부 질문에서 하태경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국제 여론전, 홍보가 너무 약하다. (…) 국제홍보단 같은 걸 발족해서 제대로 홍보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이 총리는 “좀 더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있다”라고 답했다. 한·일 양국이 수출통제 현황에 대해 제3자의 조사를 받자는 게 정부 공식 입장이다. 지난 7월12일, 김유근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은 “불필요한 논쟁을 중단하고 일본 정부 주장이 사실인지 명백히 밝히기 위해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 또는 적절한 국제기구에 대한 공정한 조사 의뢰를 제의한다”라고 요청했다. 같은 날 도쿄에서 열린 한·일 실무자 협의에서 정부는 7월24일까지 국장급 협의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7월24일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정령(시행령)의 입법 예고 기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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