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수소차 시대 맞은 현대차 노사 ‘1만명 충원’ 싸움
  • 전혜원 기자
  • 호수 615
  • 승인 2019.07.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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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까지 1만7500명이 정년퇴직하는 현대차 노조가 정규직 1만명 충원을 요구하자 사측이 난색을 표했다. 경쟁 격화와 친환경차 시대로 인해 생산직 인원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1만명 충원은 가능할까?
현대차 노조(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인력 1만명을 충원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은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이 사안은 올해 현대차 임금·단체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계기는 정년퇴직이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현대차의 베이비부머 세대 1만7500명이 줄줄이 정년퇴직한다. 그런데 노조는 왜 1만7500명이 아니라 1만명을 충원하라는 걸까?

상황 변화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국내에서 45만 대 생산할 계획이다. 전기·수소차는 내연기관과 달리 엔진·변속기가 필요 없다. 필요한 부품 수도 내연기관에 비해 대폭 줄어든다.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어 전기차 전용 라인을 설치하게 되면, 이전보다 자동화·모듈화(부품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생산해 장착하는 방식)가 진행될 여지도 더 많다. 회사 측의 구조조정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자동차 산업의 변동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2025년까지 노조 추산 5000명, 회사 추산 7000명의 일자리 감소가 예상된다. 노조의 주장은, 산업 환경의 변동에 따른 일자리 감소분을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다. 다만 일자리 7000개의 감소를 인정한다고 해도 1만7500명이나 정년퇴직하게 되니 약 1만명(1만7500명-7000명)은 새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사IN 조남진6월17일 오후 오전 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을 통해 퇴근하고 있다.
좋은 일자리 분배 놓고 세대 갈등


현대차 측은 난색을 표한다. 전기차로 줄어들 일자리는 주로 생산직이다. 2025년까지 정년퇴직할 1만7500명 중 1만4000명이 생산직이다. 그런데 일자리 감소가 지금의 추정(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의 산업 변동에 기반한)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버 등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자동차를 소유하기보다 빌려 이용하는 흐름이 확산되고(이른바 공유경제),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어 ‘차를 소유한 운전자(오너드라이버)’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면, 자동차를 살 사람이 줄어들어 자동차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 수 있다. 회사 측이 보기에 수천명에 대한 고용 필요성이 추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우버 같은 플랫폼 서비스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언제부터 거리를 달리게 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정년퇴직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장으로 급속히 줄어들 전망이다. 그런데도 대규모 신규 채용 없이 공장이 돌아갈까? 회사 측은 ‘문제없다’고 본다. 기존 현대차 정규직의 노동강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경우 편성효율(인력의 효율적 활용에 관한 지표. 높을수록 효율적)이 55% 수준으로 알려졌다. 해외 공장의 90%대보다 현격히 낮다. 여유 있는 직원을 정년퇴직자 때문에 비는 공정으로 전환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시사IN 조남진금속노조 하부영 현대자동차지부장(아래)이 ‘1만명 고용’ 요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조가 의심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회사가 정년퇴직에도 신규 충원 없이 공장을 돌리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동화·모듈화·외주화다. 사람이 필요 없는 공정으로 만들어버리거나 하청업체에 고용을 털어버리는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촉탁직’이라 불리는 계약직 채용이다. 촉탁직은 현대차 정규직과 임금 차이는 없지만, 최대 계약기간이 2년이다. 불법파견이 문제가 되면서 늘어난 고용 형태다.

현대차 처지에서는 당장 사람이 모자라더라도 촉탁직을 쓰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든다. 정규직은 한번 뽑으면 정년까지 해고하기 어렵고 호봉도 올려줘야 하는 반면, 촉탁직은 사람이 모자랄 때 고용했다가 2년을 채우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회사 처지에선 고용 유연성이 확보된다.

지난해 정년퇴직한 700여 명의 생산직 일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면 정년퇴직의 효과를 가늠할 수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이 중 약 400명은 정규직으로 충원했다. 100명의 일자리는 사라졌다. 정규직이 일하던 267개 공정은 촉탁직에게 맡겼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정년퇴직하는 일자리 중에 여전히 사람이 필요한 일자리는 촉탁직이나 하청이 아닌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 전기차로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최소한의 저지선(1만명)은 확보해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 제44조에는 이미 ‘정년퇴직자의 대체 필요인원은 정년퇴직 7일 전까지 정규직으로 충원한다’고 되어 있다. 그동안 이 조항은 지켜지지 않았다. 하부영 현대차지부장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정년퇴직 일자리가 발생하면 기존 정규직이 해당 자리로 재배치되었다. 정년퇴직 직전인 노동자가 가장 쉽고 편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하던 어렵고 힘든 일은 하청이나 촉탁직에게 맡겨왔다”라고 고백했다. 현대차 노사는 정규직이 산재나 휴직 등으로 일시적으로 자리를 비울 때만 촉탁직을 쓰기로 2012년 11월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회사 측은 “(인원 협상 권한이 있는) 현장 대의원들의 묵인하에” 상시·지속적 업무에까지 촉탁직을 써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촉탁직이 약 3500명까지 늘어났다.

노조 측은 지난 3월부터, 상시·지속적 업무에 촉탁직을 쓰는 데 합의해주는 노조 대의원을 징계하기로 했다. 또한 대법원 판결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사내하청 9500명 중 아직 정규직으로 특별채용되지 않은 2000명에 대해서는 별도로 정규직화를 회사에 요구할 예정이다. 촉탁직과 하청이 맡던 힘들고 어려운 공정을 점차 ‘정규직의 일’로 만들어가면 작업 평준화도 이뤄질 거라고 노조는 전망한다.

ⓒ현대자동차 홍보실 제공현대차는 2025년까지 친환경차를 국내에서 45만 대 생산할 계획이다. 위는 수소차 넥소 생산 라인.
그러나 노조의 기대와 별개로, 현대차는 생산직 신규 충원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은 “구조조정은 당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하는 사람도 힘들다. 다행히 현대차는 정년퇴직 인원이 있어 구조조정의 아픔은 겪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연감소 인원을 통한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현대차 처지에서 생산직 정규직 채용은 점점 더 ‘수지가 안 맞는 장사’가 되고 있다.

노조 역시 위기감을 공유하면서 그동안 암묵적으로 협력해온 현대차의 노사 관행을 스스로 비판하고 있다. 하부영 현대차지부장은 심지어 그동안 현대차 임금 시스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왔지만 노조 역시 조합원들의 이익이기 때문에 눈감아온 연공급 제도를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의 저숙련·고임금 조합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규직 고참이라고 해서 힘든 일 하는 젊은 사람보다 임금을 두 배 받는 게 말이 되나? 현장에서 세대 갈등이 일어나는 요인이다. 숙련이 높을수록 처우도 높아지는 임금체계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고숙련·고임금 시스템으로 갈 수 있다.”

다만 노조가 사측과 외부의 문제 제기들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듯하다. 예컨대, 별도 법인에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해법인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서는 ‘자동차 산업 하락기의 물량 나눠먹기 경쟁에 불과하다’며 반대한다. 현행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령 직전 연도까지 연장해달라는, 일견 1만명 충원과 모순되어 보이는 요구도 이번 임단협에서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 전체 생산액의 12.7%, 수출액의 10.6%를 차지한다. 직접고용 인원만 39만명에 달한다. 전기차 시대를 맞은 자동차 산업의 고민이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GM과 포드, 독일 폭스바겐 등도 대규모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판매 부진 속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분야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전기차 생산, 1만여 부품사에 치명타 될 수도


이 같은 흐름이 우리 시대 일자리의 미래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일 연구를 보면,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로 100% 전환되었을 경우 독일 전체 자동차 산업에서 고용이 25% 줄어든다. 반면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새로운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고용이 15%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에 자동차 산업 고용은 10%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닌 데다(독일의 경우 약 10만명) 기존 자동차 산업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정년퇴직자 자연감소만 이뤄진다고 해도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특히 전기차 전환은 내연기관 부품을 주로 제조해왔으며 연구·개발 투자에서도 취약한 국내 1만여 부품사들에게 치명타일 수 있다. 현대차 노조 같은 완성차 노조의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독일 금속노조는 정부에 직업교육과 숙련화 등 전환기에 필요한 노동시장 정책을 촉구한다. 사업장에서는 친환경차와 기술혁신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사전에 사업장평의회에서 논의하고 함께 해결하는 공동결정 제도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미래형 자동차 발전동향과 노조의 대응>, 2019).

현대차 노사도 이런 흐름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올해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특별 고용안정협의회’를 열어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지난 5월 울산시가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윤선희 현대차지부 4차산업연구위원회 팀장이 ‘노조는 생산성과 수익성 확보에 협력하고, 회사는 정보 공유 및 고용 유지로 화답하는’ 상생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노조가 일정한 고통이 있더라도 전기차 시대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흐름이다. 하부영 현대차지부장은 “전기차나 기술의 변화 속도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오고 있다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노사가 일치된 분석을 했다. 현장에서는 구조조정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들어오지만, 조합원들에게 있는 사실을 공유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책을 함께 세워나가려 한다. 단, 과도기에 급진적으로 일자리를 없애거나 비정규직·촉탁직을 오남용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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