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노동자유계약법’ 발언이 위험한 이유
  • 전혜원 기자
  • 호수 618
  • 승인 2019.07.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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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원내대표가 ‘노동자유계약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노동자’가 등장하는 등 노동구조의 변화 때문이라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오히려 노동법을 더 강화하는 추세다.
“근로기준법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새로운 산업 환경과 근로 형태에 맞는 ‘노동자유계약법’도 근로기준법과 동시에 필요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7월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한 말이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기준’의 시대에서 경제주체가 자율적으로 맺는 ‘계약’의 시대로 가야 한다”라고 나 원내대표는 주장했다.

인류가 ‘계약’의 시대를 살았던 적이 있긴 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 때다. 신분에 따른 예속이 사라져, 누가 타인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강제할 수 없었다. 그 자리를, 개인 대 개인으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맺는 약속, 즉 계약이 차지했다. 시민혁명으로 등장한 ‘민법’의 세계에서 계약이란 ‘자유로운 의사의 합치’였다. 고용 역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자본가 개인과 노동자 개인) 간의 계약으로 간주되었다.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을 고용주에게 팔기로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본 것이다.

문제가 생겼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이 매우 위태로웠다. 특히 아동노동 문제가 심각했다. 19세기 영국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아이들은 처음 6주 동안 새벽 3시에 가서 밤 10시에 돌아왔다. 19시간 동안 아침 15분, 점심 30분, 물 마실 시간 15분 쉬었다. 일반적으로 아침 6시에서 저녁 8시30분까지 하루 14시간30분 동안 일했다. 일하다 맞았고, 손가락을 잃기도 했다. 모두 자유계약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이다. 신분에 따른 예속이 계약에 따른 종속으로 바뀌었을 뿐, 노동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계약할 수가 없었다.

ⓒ연합뉴스7월4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19세기 전반 영국 의회는 공장에서 일하는 아동을 보호하는 일련의 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공장법(Factory Act)’이라 부른다. 1833년 공장법은 9세 미만 아동의 고용을 금지했다. 18세 이하 연소자는 야간에 일하거나 하루 12시간 넘게 일할 수 없도록 했다. 1847년 공장법은 18세 이하 연소자와 (당시 공장에서 많이 일하던) 성인 여성의 최장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했다. 1802년 제정되어 수차례 개정된 공장법은 ‘노동법(노동관계에 관한 법)’의 출발점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노동법이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을 지나치게 제한한 것은 아니었을까? “노동시간 규제는 노동자가 기계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에 근거를 둔다”라고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말했다. “민법의 관점은 노동과 인격을 분리하고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하지만, 이는 허구다. 노동자와 노동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은 인간의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에 결코 인간의 신체로부터 분리할 수 없으며, 신체는 인격의 핵심이므로 노동은 곧 인격이다. 상품화된 노동관계에 인격적 가치를 개입시키는 것이 바로 노동법이다.” 노동법의 대가인 알랭 쉬피오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는 <노동법 비판>에서 이렇게 쓴다. “노동법은 그 오래된 기원에서부터, 즉 아동의 노동시간을 제한했던 시점에서부터 경제 논리가 생물학적 제약을 존중하도록 환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연소자와 여성을 보호하는 데서 출발한 노동법은 이후 성인 남성에게까지 확장된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노동법은 인권법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깨달음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된다. ILO는 제1호 협약으로 ‘하루 8시간, 주 48시간’ 원칙을 천명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ILO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필라델피아 선언).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전쟁의 경험에서 나온 반성이다. ILO의 활동은 각국에서 태동한 노동법의 발전을 더욱 촉진했다.

ⓒLIBRARY CONGRESS191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석탄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던 소년들.
나 원내대표 주장, 헌법에 위배


노동법이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국가가 개입해 최장 노동시간을 비롯한 최저 노동기준을 설정한다. 우리로 치면 근로기준법이다. 둘째, 노동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고용주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게 한다(노동조합). 모두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다. 이것만으로 안 될 때, 임금의 하한선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도 한다. 최저임금이다. 덴마크처럼 산업별 노조 단체협약이 폭넓게 적용되는 나라는 법정 최저임금이 없다. 산업별 협약이 체결되면 그 기준이 해당 부문의 모든 노동자(기업별 노사 협약이 없는 노동자까지 포함)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등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 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나라에는 최저임금 제도가 있다. 독일도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자 2015년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한국 헌법은 이 모든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헌법 제32조 3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제33조 1항).” “국가는 (중략)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제32조 1항).” 한국은 노동조건을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에만 맡기지 않겠다고 헌법에 명문화한 나라다.

물론 1980년대 이후 노동법에 민법의 관점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 자유로운 계약에 터 잡은 민법의 눈에서 볼 때 노동법은 이상한 법률일 수 있다. “노동법은 계약의 요건으로 종속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도재형, <노동법의 회생>). 여기서 종속성은 ‘노동자가 자본가에 종속되어 지휘를 받으며 일한다’는 의미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종속되는 측면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고용을 양측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체결하는 계약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노동계약을 완전히 자유계약에 맡겨두는 나라는 없다.

노동시간 한도가 없고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조차도 그렇다. 연방 및 주별로 최저임금이 있고, 그 이상을 일하면 초과노동수당을 줘야 하는 노동시간 한도(주 40시간)가 정해져 있다. 일본은 노동에 ‘계약’의 관점을 적용하는 ‘노동계약법’을 2008년부터 시행 중이다. 그러나 민법으로 규제가 가능한 일부 영역에 국한된다. 국가가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노동기준법’은 여전히 시행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위헌적일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주장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경원 원내대표는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나 원내대표가 겨냥한 것은 주 52시간 상한제와 최저임금 인상이다. 그는 “‘일할권리보장법’으로 주 52시간 피해를 최소화하고, ‘쪼개기알바방지법’으로 주휴수당 부작용을 막겠다”라고 주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근로자 대표 또는 해당 직무 노동자가 동의하면 특정 주에는 52시간을 넘겨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일할권리보장법’).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동자가 서면으로 동의하면 주휴수당을 무급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쪼개기알바방지법’).

ⓒ시사IN 신선영5월1일 노동절을 맞아 배달 노동자로 구성된 ‘라이더유니온’이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주 52시간 상한제와 관련해서는, 정부·여당이 이미 탄력근로제(특정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 이내면, 한 주 동안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는 제도)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접근 역시 노동자의 동의하에 노동시간 한도의 탄력적 적용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지 자유계약에 맡긴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이 경우에도 노동자의 ‘동의’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해당 직무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 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해야 하며 그 외에도 여러 조건이 붙는다.

노동자가 동의하면 주휴수당을 무급화하는 법안은 어떨까. 주휴수당의 존재는 노동법 학계 내에서도 논쟁적이다. 주휴수당이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가 주 1일의 유급휴일에 받는 하루치 일당이다.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 기업 측이 가급적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쪼개기 알바’)를 고용하려는 유인을 가지게 된다. 더욱이 세계적으로도 주휴일은 보장하지만 유급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경우는 거의 없다.

영국·스위스 등 “우버 운전기사도 노동자”


그럼에도 주휴수당을 노동자 동의로 무급화하는 방안은 부적절하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대부분 노조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의 ‘동의’는 진정한 동의이기 어렵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동의를 받아 주휴수당을 무급화한다는 것은 힘없는 사람에게서만 빼앗겠다는 이야기다. 노동의 중심부와 주변부 간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을 개정해서 주휴수당을 무급화하고 대신 그만큼 기본급 인상을 강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런 주장의 배경으로 꺼내든 것은 ‘4차 산업혁명’이다. “신산업 등장과 시장 다변화”로 “휴식과 노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근로기준법과 같은) 단일 기준으로 모든 근로 형태를 관리·조정할 수 없는 경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플랫폼 노동’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플랫폼을 매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주로 건당 수수료를 받는 노동 형태를 말한다. 한국에서 배달이나 운송 서비스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보호에서 배제되어 있다.

플랫폼 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을 둘러싸고 논쟁이 이는 이유는 ‘종속성’ 때문이다. 노동법은 ‘종속성’을 전제로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플랫폼 노동은 전통적인 종속성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을 자유계약의 영역에 남겨둬야 할까?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외환위기 직후, 노동법은 필요 없으며 자유계약에 맡기면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런 논의는 (사회 양극화와 비정규 노동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사실상 지나간 이야기다. 최근 몇 년간 노동법 연구자들의 관심은 종속성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속의 모습이 달라질 뿐 종속되어 일한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닌데, 한국 노동법이나 사회보험법은 느리게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의 주장과 달리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해석하거나, 별도의 법안을 만들어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판결은 엇갈리지만 영국과 스위스 등에서 우버 운전기사가 하는 일이 노동에 속한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는 조건을 엄격히 정했다. 도 교수는 “‘플랫폼 노동’이라는 형태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산업에서 일하는 위험부담을 지면서도 적절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노동계약의 자유’는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과는 반대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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