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생산직 채용에 구직자가 몰리면서 현대차 채용 포털 접속이 한때 어려웠다. ⓒ블라인드 갈무리

현대차가 생산직을 뽑는다. 2013년 이후 10년 만이다. 올해 400명, 내년 300명을 뽑을 계획인데, 지난 3월2일 400명 채용 공고가 나간 뒤 지원자가 18만명에서 40만명까지 몰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원 조건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지만 전문대는 물론 4년제 대학 졸업자나 공기업 재직자까지 문을 두드리는 분위기다. 취업 카페에서는 서류 합격자의 ‘스펙(구직에 필요한 학력·경력·자격증 등)’이 공유되기도 했다.

대기업 생산직 채용이 뉴스가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13년 116명을 뽑기 이전의 현대차 생산직 채용도 가뭄에 콩 나듯 했다. 2012년 50명, 2007년 800명, 2004년 904명…. 배경에는 한국 사회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1998년 구조조정을 겪은 뒤인 2000년, 현대차 노사는 ‘완전고용 합의’를 맺는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활용을 인정하되 그 투입 비율을 16.9% 이내로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비율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이때의 합의로 “회사는 유연성과 효율성을, 노조는 고용안정과 노동강도 완화를 획득했다(박태주,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 이 동맹의 산물이 바로 ‘사내하청’이다. 하청업체가 원청인 현대차로부터 일부 공정을 수주받아, 외부가 아닌 현대차 사업장 안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현대차로서는 굳이 생산직을 뽑지 않아도 사내 하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었다. 이들은 정규직과 달리 사실상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고 임금도 낮았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법상 일을 시키면서도 직접 고용하지 않으면 ‘파견’이다.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은 파견이 불법이다. 하청업체 노동자 최병승씨가 2005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2012년 대법원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최병승씨가 현대차 정규직이라고 판단한다. 그 유명한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이다.

현대차는 최병승씨 개인에 국한한 판결로 의미를 축소했다. 판결에 따라 모든 하청업체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비정규직 노조의 원칙론과, 특별채용 방식으로 정규직화하자는 정규직 노조의 현실론이 맞섰다. 일련의 판결에서 적어도 자동차 생산공정 1차 하청은 명실상부한 불법파견으로 인정되었고, 2012년부터 지금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약 9500명이 정규직화하는 단계에 있다. 생산직 신규 채용이 씨가 마른 데는 이처럼 회사의 불법과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있었다.

2012년 11월27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명촌주차장 송전탑에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국장이 하청 노동자 전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42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12년 11월27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명촌주차장 송전탑에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국장이 하청 노동자 전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42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이번 채용은 지난해 현대차 노사 합의에 따른 것이다. 2013년 마지막 생산직 채용 2년 뒤인 2015년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본격화되었다. 연도별 현대차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퇴직자 수는 2015~2016년 약 600명에서 2017년 900여 명, 2018년 1300여 명, 2019년 1600여 명, 2020년 2100여 명, 2021년 2600여 명, 2022년 2700여 명을 기록했다. 최근 5년간 퇴직자만 해도 1만명이 넘는다. 올해 2300여 명을 포함해, 2029년까지 매년 2000~2700명이 퇴직할 예정이다.

이 중 상당수가 생산직임을 고려하면, 이미 몇 년 전부터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숫자다. 그러나 회사는 생산직의 경우 정년퇴직자 수만큼 고스란히 채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전기차 시대에는 엔진과 변속기가 사라지므로, 필요 인력도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정년퇴직으로 인한 자연감소를 내버려두는 한편, ‘촉탁직’이라 부르는 계약직을 대규모로 써왔다. 생산직을 포함한 현대차 전체 기간제 노동자는 10년 전인 2012년 1700여 명에서 지난해 7800여 명으로 늘었다.

결국 현대차는 정년퇴직으로 나간 인원을 촉탁직으로 채우는 한편, 일부 공정을 지속적으로 ‘자동화’하거나 ‘모듈화(부품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생산해 장착하는 방식. 필요 인원이 줄어든다)’, 계열사나 하청으로 ‘외주화’해왔다. 그러던 중 업황이 좋지 않은 반도체와 달리 자동차 산업이 호황에 들어섰다. 올해 국내에서 185만 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하영철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사무국장은 “산업의 변화 속도보다 정년퇴직 속도가 더 가파르다. 하도 사람을 안 뽑다 보니 생산직 평균연령이 49.2세, 평균 근속연수가 22.7년이나 된다. 신입이 와도 중간이 없어서 세대 격차가 심각하다. 빨리 사람을 뽑아서 세대 간 숙련을 전수해야 한다는 데에 노사가 의견을 같이했다”라고 설명했다.

문이 열린 것 자체는 좋은 소식이다. 다만 너무 늦게 찾아온 소식인 듯하다. 정이환 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기업들이 생산을 담당하는 다음 세대의 숙련을 제때 양성해야 했는데, 그동안은 하청을 쓰면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해왔다.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아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용자 역시 지금의 노동시장 질서를 노조와 함께 만든 ‘공범’이라는 점에서 비판할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성채 안 일자리에 진입할 유일한 기회”

한국 사회의 2000만 노동자 중에서 대기업에 다니고, 정규직이면서, 노조가 있는 기업에 속한 노동자는 7.2%에 불과하다. 이들 대기업·정규직·유노조 집단(D)에 비하면,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조 집단(E)의 시간당 임금은 43.9%에 그친다. 사회보험 가입률이나 퇴직금·상여금·시간외수당·유급휴가 수혜율 역시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대기업·정규직·유노조를 대표하는 사업장이 바로 현대차다. 2021년 이곳 임직원 평균 연봉은 9600만원이다(전체 노동자 평균 연봉은 4024만원). 현대차는 법정 정년 60세도 보장한다. 반면 한국의 55~64세 연령층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는 평균 49.3세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고등학교나 전문대 졸업자가 “성채 안 일자리에 진입할 거의 유일한 기회(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현대차 채용이 뉴스가 되는 것이다. 네이버 카페 ‘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독취사)’ 자체 조사에 따르면, 4월10일 현재 이 카페 회원이면서 현대차 생산직 공채에 서류 합격한 331명 중 고졸이 136명, 초대졸(전문대졸)이 152명, 4년제 대학 졸업이 43명이다. 신입(97명)보다 경력이 있는 지원자(234명)가 더 많다. 20대가 250명으로 가장 많지만 30대 67명, 40대 이상이 14명이다. 1969년생으로 이번 공채 서류에 합격한 박 아무개씨(54)는 “중소기업에 다니는데 4대 보험 말고는 복지랄 게 없다. 아이가 중1, 중3인데 학자금 지원이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40대 ㄱ씨도 이번에 서류 합격한 지원자 중 하나다. 그는 공고를 졸업한 뒤 직원 10~20명짜리 중소기업 여러 곳을 옮겨다녔다. 현재는 사장 포함 인원 세 명인 자동차 부품 관련 2차 하청업체에 10년째 재직 중이다. 임금은 월 400만원이 조금 넘는데, “퇴직금 포함”이고 상여금이나 성과급은 없다. “연월차를 써본 적도, 수당으로 받아본 적도 없다. 근무시간은 대표님 마음대로인데 기계 가동 30분 전에 출근해야 한다. 주중 빨간 날에 쉴지 안 쉴지도 하루이틀 전 정해져 개인 생활이 없고, 여름휴가도 일주일 전 확정되어 숙소 예약을 할 수가 없다. 현대차에 입사하면 당장 임금은 지금보다 낮아지겠지만 연차에 따라 오를 것이다. 무엇보다 복지가 좋아서 입사하고 싶다.” 그가 말한 ‘복지’란 “근무시간 준수”, 그리고 “주말이라도 마음 편히 쉬는 것”이다(현대차는 교대제이지만 철야 근무가 없는 주간 연속 2교대제다. 주말 특근은 자유다).

그는 공고 졸업 후 서울에 있는 한 전문대에 합격했지만 형편상 진학하지 못했다. 이후 돈을 벌어 서울에 있는 또 다른 전문대에 들어갔으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1년 만에 자퇴했다. “고졸이라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는 도전해본 적 없고, 대기업으로의 이직은 인맥이나 로또 같은 행운이 아니면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그에게 이번 채용은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는 이번 현대차 채용 지원에 대해 이렇게 말을 더한다. “‘고졸이라는 타이틀로 되겠어?’라는 생각에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것이지 기술이 없는 건 아니다. 대기업들이 인식을 바꿔 고졸자들에게도 취업의 기회를 넓혀줬으면 좋겠다. 또 소기업들도 대기업처럼 대우해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기본만이라도 지켜줬으면 좋겠다. 돈도 많이 벌고 싶지만 여름휴가도 가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ㄱ씨는 이번에 NCS(국가직무능력표준)니 GSAT(삼성직무적성검사)니 하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자동차구조학, 기계구조, 상식, 기초영어 위주로 공부한 ㄱ씨는 NCS나 GSAT와 비슷하게 나온 이번 현대차 생산직 인적성 검사에 거의 손도 못 댔다고 한다. 그런데 ㄱ씨가 하게 될 일은 자동차 생산직으로 필기시험과는 관련이 많지 않다. 현대차 촉탁직으로 2년 가까이 일했으나 이번에 서류에서 떨어졌다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 김 아무개씨(27)는 현대차의 특징을 ‘낮은 근무강도와 높은 급여’로 요약했다. “정규직이나 촉탁직이나 하는 일이 똑같다. 단순 반복적이다.”

고숙련·고임금·고품질로 나아갈 수 있을까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를 쓴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은 “외국 자동차 공장의 편성효율(인력의 효율적 활용에 관한 지표. 높을수록 효율적)이 95% 전후인 데 비해 현대차는 50%를 넘는 정도다. 노동강도가 강하지 않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이는 현대차에서 장기간 진행된 ‘자동화를 통한 숙련의 해체’와 관련이 있다. 그는 낮은 숙련과 고임금의 조합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끼리의 연대 차원에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쏘나타 안에는 계열사와 부품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와 땀도 들어 있다. 왜 완성차 노동자만 그 보상을 받아야 할까?”

2021년 3월18일 오전 8시간 근무를 마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몇 년 전부터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에서 60세에 정년퇴직한 노동자는 기존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으며 1년간 촉탁직으로 일할 수 있는데, 정규직으로 몇 년 더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현대차의 촉탁직에는 정년퇴직 뒤 1년간 일하는 ‘시니어 촉탁직’과, 2년까지 가능한 일반 계약직인 ‘주니어 촉탁직’ 두 종류가 있다). 하영철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2033년부터 65세)와 정년을 맞춰가야 한다. 정년을 60세보다 더 늘리면 61세부터는 임금을 조금 깎는 임금피크제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노동조합은 정년 연장과 신규 채용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현대차 노사에 조언을 해온 조형제 울산대 명예교수(사회학)는 “현대차는 적대적 노사관계로 인해 숙련 절약적, 노조 배제적인 생산방식을 추구해왔다. 그런 한편 실제로 필요한 고숙련 생산직은 (생산직 채용과 별개로) 최근 10년간 마이스터고에서 한 해 100명씩 충원해왔다. 그 약정이 올해로 끝나는데, 회사에 물어보니 별다른 대안은 없다고 한다. 노동조합도 사실상 정년 연장 외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까지는 비용을 절감해 중저가 차량을 팔았다면 앞으로는 고숙련과 고임금으로 고품질 차량을 만드는 ‘하이 로드(high road)’로 나아가야 하고, 전기차 시대에 재교육·재훈련·재배치도 필요한데, 아직은 노도 사도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2021년 3월1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사무실 입구에 정년 연장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시사IN 조남진
2021년 3월18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사무실 입구에 정년 연장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시사IN 조남진

앞서의 네이버 카페 ‘독취사’의 취합에 따르면, 서류 합격자 331명 중 남자는 317명, 여자는 14명이다. 지원자의 성비는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현대차 생산직 2만8000여 명 중 여성은 500여 명(약 2%)이다. 대다수가 사내하청으로 일하다 정규직이 된 경우다. 기존 현대차 생산직 공채에서 여성이 채용된 적은 없다. 같은 현대차여도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여성 비율이 36%다. 김은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여성문화실장은 “여성이라고 못할 생산공정은 없다. 같은 자격과 실력인데 여성이라고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외주화, 숙련과 임금의 괴리, 기술변화에 따른 고용 감소, 좋은 일자리에서 여성의 비율까지. 현대차 생산직 채용에 한국 노동시장의 거의 모든 문제가 담겨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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