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앞에 다시 놓인 비핵화 방정식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579
  • 승인 2018.10.2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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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계기로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가속이 붙은 것은 분명하다. 비핵화 협상도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북·미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하다.

10월7일 올해 들어 네 번째로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는 동안 그를 수행한 미국 관리들 역시 별실에서 북측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북측 관리들은 11월6일 치러질 미국 의회 중간선거에 큰 관심을 보이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평양을 방문하면 “멋진 일”이 될 거라며 은근히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행을 기대했다고 한다. 특히 북측 김성혜 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후덕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만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며 호감을 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평양에서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폼페이오 장관에게 전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북측 관리들의 뉘앙스를 보면 평양을 회담 장소로 원하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차기 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제외한 3~4곳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평양의 포함 여부도 주목된다.

ⓒ평양 조선중앙통신10월7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이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장소와 시기, 의제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정상회담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열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 “가까운 미래에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을 고대한다”라고 밝혔다. 미국 중간선거 전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정치적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정치 일정상 중간선거 이후로 회담 시기를 지목한 상태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라는 낭보에도 워싱턴 외교가의 반응은 대체로 신중한 편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너선 폴록 선임연구원은 “비핵화라는 미국의 정책 목표가 계속 무뎌지는 느낌이다. 비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으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의미 있는 압박이 증발된 셈이다”라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도 “폼페이오 장관이 진전을 이뤘다고 했지만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 양측은 공통된 비핵화 개념조차 정리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어떤 ‘상응 조치’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북한은 폼페이오 4차 방북을 계기로 지난 5월 폭파한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국제사찰단 방문 및 검증을 허용했다. 향후 사찰 및 검증이 이뤄진다면 북한으로서는 누가 봐도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시설에 대한 항구적 폐쇄를 선언한 바 있다. 미국 측 관리들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과 면담 때 미국의 상응 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때 진정하고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한 것도 미국의 상응 조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북한은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 조치가 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 대부분은 종전선언 외에 대북 제재의 해제 혹은 완화를 꼽는다. 이 가운데 종전선언 문제는 미국 정부 차원에서 이미 검토가 이뤄진 상태다. 실제 백악관 국가안보팀과 국무부 등 주무 부서에서는 종전선언과 관련된 구체적 문안까지 검토됐다는 후문이다. 그 문안에는, ‘전쟁이 종식됐음을 확인한다’는 차원의 정치적 상징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평화협정이나 평화조약처럼 법적 구속력은 없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8월 하순 방북 때 종전선언문을 북측에 제시할 방침이었지만 방북이 전격 취소되는 바람에 무산됐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검증, 누가 할 것인가

ⓒ평양 조선중앙통신5월25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했다고 보도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종전선언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관리들도 종전선언이 다음 정상회담에서 타결될 경우 그 대가로 북한에 어떤 비핵화 조치를 요구할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아인혼은 “한·미 양국이 종전선언 이후에도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을 유지할 준비가 확고하다면 종전선언으로 예상되는 부정적 효과는 없을 것이다. 다만 종전선언에 따른 대가로 북측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받아내야 한다”라고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미국이 현재 가장 시급히 원하는 건 핵무기,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총괄하는 북한의 전면적 ‘핵 목록’ 제출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관계 구축’ 차원에서 종전선언과 더불어 대북 경제제재의 해제 내지는 완화를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최근 공식 매체를 통해 ‘미국은 종전선언, 북한은 핵무기 신고’라는 이른바 ‘선언 대 신고’ 타협안을 일축한 바 있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정치학과 교수는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상응 조치에 대해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미국과 ‘새로운 관계 구축’을 원하고 있고, 그 첫 단계로 포괄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듯하다”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이 중대한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요구한 상응 조치가 종전선언 외에 대북 제재 해제까지 포함하고 있다면 미국도 고민이 크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면서 세운 ‘비핵화 전 제재 해제 불가’ 원칙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10월9일 “나도 제재를 풀고 싶지만 그러려면 우리는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라고 말해 영변 핵시설 폐쇄 이상의 ‘플러스알파’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트럼프의 ‘무언가’를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 리스트 신고와 핵무기 폐기 혹은 반출, 검증까지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문제들 역시 ‘단계적·동시 조치’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방침이라 진통이 예상된다.

나아가 미국은 북한이 허용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검증과 관련해서도 자국 핵무기 전문가들을 파견하길 바란다. 그 경우, 미국은 핵실험장에서 수거한 샘플로, 북한 핵무기와 관련된 여러 정보(예컨대 ‘플루토늄 핵인가, 우라늄 핵인가?’ ‘북측이 주장하는 수소탄 실험은 진실인가?’ 등)를 파악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 사찰단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기존 핵무기 보유국이 검증을 맡아야 한다고 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핵연료 및 핵시설 전문 조직으로 핵무기나 핵실험장을 사찰·검증한 경험이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계기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가속이 붙은 것은 분명하다. 비핵화 협상도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하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수행한 미국 관리가 비핵화 협상을 가리켜 ‘지리한 작업(a long haul)이 될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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