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의 4차 방북, 이것이 달라졌다
  • 남문희 기자
  • 호수 579
  • 승인 2018.10.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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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서 중요한 변화가 감지된다. ‘신고-검증-폐기’라는 전통적 해법에서 탈피해, 신고 리스트는 뒤로 미루고 핵시설에 대한 폐기와 검증을 먼저 진행하는 새로운 협상 전략으로의 전환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10월7일)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나뉜다. 방북 사절단의 일원인 고위 관계자는 “지난번보다는 좋았지만 갈 길이 멀다(a long haul)”라는 신중한 반응을 내놓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보다 전향적이다. 10월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뒤 청와대를 찾은 그는 “오늘 북한 방문은 상당히 좋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 아직 우리가 할 일이 상당히 많지만 오늘 또 한 걸음 내디뎠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며 방북 성과에 만족감을 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10월9일(현지 시각) 백악관 기자들과 만나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길이 보인다.”

ⓒ평양 조선중앙통신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10월7일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 두 번째)을 접견했다고 10월8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4차 방북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대신 김정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협상에 임했다. 김 위원장은 오전 회담 2시간과 90분의 오찬, 오후 회담까지 5시간 30분을 그와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오찬에 앞서 “오늘은 양국의 좋은 미래를 약속하는 매우 좋은 날”이라는 인상 깊은 평가를 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비핵화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과 궤를 같이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관점도 등장했다. 10월8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바야흐로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는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10월8일자 북한 <노동신문> 역시 “지금 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는 구체적인 움직임에 근거한 것이다. 즉 “2차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이 이루어질 전망”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외교가에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한 북·중·러 3국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순방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및 시진핑 중국 주석이 앞으로 어떤 순서로 회동을 할지 ‘가상 시나리오’가 회자된다. 그 기준점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다. 11월6일 미국 중간선거 전 2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10월9일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 때문에 시간이 없다”라며 중간선거 이후로 미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 2차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한테 대미 관계 조언을 구하려는 김정은 위원장과 국제무대에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푸틴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북·미 정상회담 날짜가 잡히는 것을 보며 방북 일자를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9월19일 문재인 대통령(맨 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맨 오른쪽)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라는 말까지 거론되는 것은 바로 지금 추진되는 북·러, 북·미, 북·중 정상회담이 비핵화 이후 북한의 안전보장 담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2016년 9월13일 김정은 위원장은 비공개로 열린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미국과 핵 협상 이후 미국·중국·러시아에 의한 3각 안전보장을 얻도록 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시사IN> 제522호 ‘핵실험에 담긴 김정은의 노림수’ 기사 참조). 당시 회의는 그해 9월9일 제5차 핵실험 이후 안팎의 동요를 막기 위해 김 위원장이 핵협상과 관련한 자신의 구상을 밝히는 자리였다. 김 위원장이 당시 제시한 시간표대로라면 2017년 말까지 ‘5대 핵 타격 수단(수소폭탄, 이동식 ICBM, SLBM, 핵어뢰, 핵배낭)’을 완성하고 2018년부터 미국과 핵 협상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지금 전개되는 상황과 얼추 부합한다. 북한과 미·중·러 3국의 정상회담이 거의 동시 진행되는 것은 대미 핵 협상 이후 ‘미·중·러에 의한 3각 안전보장책’ 마련을 위한 행보라 읽을 수 있다. 이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북한의 대미 핵 협상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며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나름 의미가 있었다는 얘기로도 귀결된다.

반면 미국 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폼페이오 4차 방북 평가는 박하기 이를 데 없다(22쪽 기사 참조). “어떤 사안과 관련해서도 구체적 내용이 많이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결과가 실망스럽다(브루스 벡톨 앤젤로 주립대학 교수)” “북한과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모호한 언급만 있었을 뿐, 북한의 확고한 움직임을 확인한 계기는 되지 못했다(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정부 관리들로부터 북한과 막후에서의 어떤 돌파구나 진전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보이는 것 외에 뒤에서 이뤄지는 진전은 없다(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10월9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의 묘사는 통렬하기까지 하다. 이 신문은 북한이 이번에 보여준 비핵화 행보는 한마디로 ‘걸음마(baby steps)’ 수준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북한은 (핵) 연구·개발과 우라늄 농축, 핵탄두 제조 및 저장 등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의 위치를 담은 목록을 여전히 제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미 보유한 정보와 대조하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진지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북한의 핵시설 목록이 필요하다”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장했다.

그렇다면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과 무엇을 합의하고 온 것인가? 10월7일 저녁 폼페이오 장관이 38분간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난 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발표한 브리핑에 얼추 그 내용이 들어 있다. 즉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 개최키로 김정은 위원장과 의견을 모았다(구체적 시기와 장소를 결정하기 위한 협의는 계속 진행)’ ‘북한이 취하게 될 비핵화 조치와 미국 정부의 참관 문제 등 협의(구체적으로 풍계리와 동창리에 대한 사찰단 파견)가 있었으며, 미국이 취할 상응 조치(종전선언)에 관해서도 논의’ ‘양측이 실무협상단을 구성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정상회담 일정 등을 빠른 시일 내 협의’ 등이다.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이 전한 대로 ‘막후에서의 어떤 돌파구나 진전’이 없었다면 윤 수석 발표 내용이 폼페이오 장관이 거둔 방북 성과의 전부인 셈이다. 10월10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핵심 쟁점에서 북·미 간 의견 대립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북·미 관계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서 <아사히 신문>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 당시 북·미 간에 한국전쟁 종전선언과 비핵화 대상 리스트를 둘러싸고 힘든 논의가 있었다. 양측이 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봤지만 정상회담에서 합의할 내용에 관해서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핵 리스트 신고에 대한 미국 측의 태도 변화

그런데 <아사히 신문>의 이 보도는 매우 중요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에서도 핵 신고 리스트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난 7월6~7일 3차 방북 때와 마찬가지로 진전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사히 신문>의 보도와 지난 10월9일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정상회담을 중간선거 이후로 연기한 결정을 연결해서 볼 수도 있다. 북한이 핵 리스트 제출에 합의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를 해서라도 중간선거 이전 북·미 정상회담에 응했을 텐데, 조정에 실패함으로써 뒤로 미뤘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만일 북한의 핵 리스트 제출 합의가 이뤄졌다면 미국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일제히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평가했을 것이므로 굳이 2차 정상회담을 중간선거 이후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장관, 그리고 주위에 포진한 미국의 실무 전략팀이 이번 협상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먼저 북·미 정상회담을 중간선거 이후로 미룬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워싱턴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결정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 전에 미국 실무 전략팀에 의해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실무 전략팀은 중간선거 이전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할 경우와 이후에 할 경우로 나눠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졌다고 한다. 중간선거 이전에 할 경우 북한의 요구 수준이 높아져 휘둘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국내 반대파들에게 명분만 주게 돼 정치적으로 데미지(상처)를 입게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간선거 이후에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 북한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릴 경우 중간선거 이전에라도 열 수 있다고 옵션을 열어뒀다. 결과적으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지 않아 원안대로 중간선거 뒤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미룬 것이다.

ⓒ연합뉴스9월24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이 바로 핵 리스트 신고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다. 이 문제는 지난 7월6~7일 폼페이오 장관 3차 방북에서 김영철 부위원장과 격돌했던 핵심 현안이다.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신고 및 비핵화 리스트에 대해 초보적인 수준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미국의 주장과 그럴 경우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북한의 주장이 격돌했다. 핵 리스트 신고 문제는 그 뒤에도 북한과 미국이 서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최대의 난제였다.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성과가 없다고 보는 미국의 전통적인 관료나 전문가, 언론의 판단 역시 이 문제에서 진전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최근 폼페이오 장관을 중심으로 한 국무부 협상팀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핵무기나 물질의 신고 리스트 제출부터 협상을 시작하는 전통적인 핵협상 방식에서 이탈한 것이다. 신고 리스트는 뒤로 미루고 핵시설에 대한 폐기와 검증을 먼저 진행하는 새로운 협상 전략으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그 시작은 9월19일 남북 정상회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오전 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핵·미사일의 신고 목록 제출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김 위원장을 설득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나름의 어려운 처지’를 얘기하며 완강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북한 핵 능력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서로 다른 정보와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북한이 신고한다고 해서 과연 미국이 믿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과거처럼 서로의 차이점을 검증하겠다고 하다가 충돌이 생겨서 비핵화 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협상이 파탄날 수 있다는 우려를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사실 1992년 IAEA 특별사찰을 둘러싼 논란이나 2008년 6자회담이 완전 중단된 것 역시 김 위원장 말대로 신고 이후 검증을 둘러싼 충돌 때문이었다. 그 핵심 이유는 바로 불신이다. 그동안 리비아나 우크라이나 사례처럼 ‘신고-검증-폐기’라는 전통적인 해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불신이 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처럼 불신이 누적돼 있는 경우 전통적인 해법은 성공하기 어렵다. 지난 9월18~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문 대통령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했다. 동시에 김 위원장은 신고와 검증이라는 지금까지의 방식에 대한 고충을 문 대통령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었다.

‘신고-검증-폐기’라는 전통적인 해법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 정부 안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있었다. 그는 지난 5월11일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워싱턴 방문 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북한에 적용할 비핵화 방식에 대해 토론했다. 볼턴 보좌관이 강조하는 리비아 사례도 있지만 카자흐스탄처럼 경제 지원 및 체제 보장의 대가로 핵 폐기에 응한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강 장관이 제기한 것이다. 지난 평양 남북 정상회담 후 새로운 비핵화 해법과 관련한 포문을 연 것도 강 장관이었다. 그는 9월21일 KBS와 인터뷰에서 “전통적 비핵화 과정과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사찰 등 검증 프로세스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그게 초반에 나와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며칠 후 폼페이오 장관이 강 장관과 비슷한 발언을 이어갔다. 폼페이오 장관은 9월23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특정한 시설과 무기 시스템에 대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눈여겨볼 것은 폼페이오 3차 방북 당시 쟁점이 됐던 핵 리스트 신고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교감 이후 9월24일 문 대통령 방미 기간에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해법을 두고 한·미 간 본격적인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해법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나쁘지 않다. 미국 내 관료, 언론,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신고-사찰-폐기’를 고집하다가는 북한과의 협상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그 책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져야 한다. 그보다는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엔진시험장 그리고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등 북한 핵의 주요 시설을 하나씩 폐기하고 검증하는 과정에 들어가면 그 자체가 성과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할 말’이 생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북·미 사이 신뢰가 쌓이면 그때 가서 핵 리스트를 받고 전면적인 폐기 과정에 들어갈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폼페이오 4차 방북, 3차 때와 달라진 점

ⓒ청와대 페이스북 갈무리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5월22일 백악관에서 한·미 관계자들이 환담하고 있다.
맨 왼쪽이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우리는 다른 해법을 원한다(We want to take a different approach).’ 10월4일자 <워싱턴포스트>는 강경화 장관 인터뷰를 크게 실었다. 이 인터뷰는 9월28일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에서 했다. 문 대통령 방미를 수행하는 강 장관이 미국 측과 충분한 교감하에 진행한 인터뷰라 할 수 있다. 미국 측으로서는 자신들이 나설 경우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내부의 반발을 우려해 한국 측의 제안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띤 것이다. 강 장관은 이 인터뷰에서 기존 ‘신고-검증-폐기’라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핵시설의 폐쇄와 검증, 상응 조치를 통한 새로운 비핵화 방식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4차 방북이 3차 때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물론 미국은 ‘핵 리스트 신고 후 종전선언’이라는 기존 입장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이 먼저 제시한 영변 핵시설의 폐기 조치에 대한 미국 측 요구대로 검증이 가능해지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에 합의할 수 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핵 신고 리스트에 집착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북한이 먼저 폐기하겠다고 제시한 것들을 검증하고 기정사실화해 나가겠다는 실용적인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특히 영변 핵시설의 경우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시설이 많다는 점에서 미국 측이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플러스알파’를 두고 치열한 실무협상을 벌일 것이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핵탄두나 미사일의 일부 폐기 등을 더 얹으려 하고, 북한은 종전선언에 이어 제재 완화를 더 얹으려 할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영변 핵시설 폐기 및 검증 그리고 종전선언이라는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이 본격화되면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진출할 것이다. 미국 사찰단을 비롯한 많은 인원이 북한을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영사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서라도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열어야 한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수교 전 단계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신뢰 구축 및 북한 체제 안정 면에서 보면 종전선언보다 상위의 단계다.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려면 미국의 독자 제재나 유엔 제재도 완화되어야 한다.

연락사무소 설치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워싱턴과 평양을 교차 방문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 방문은 1994년 제네바 합의문에서 연락사무소 얘기가 처음 제기된 이래 우여곡절을 겪은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2000년 당시 조명록-올브라이트가 합의한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는 “1994년 10월21일부 기본합의문에 재확인된 원칙들에 기초하여 불신을 해소하고 상호 신뢰를 이룩하며 주요 관심사들을 건설적으로 다루어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상호 관심사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질 경우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해 수포로 돌아갔다(<시사IN> 제549호 ‘평양 하늘에 성조기 휘날릴까’ 기사 참조).

연락사무소 설치 논의가 무르익으면 미국은 그 대가로 북한의 핵무기나 핵물질 미사일의 신고 목록 제출 및 폐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때가 바로 북한이 과연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여부가 드러나게 될 시점이다.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의 입구라면 미국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은 비핵화 과정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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