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이 ‘신의주 특구’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북·중 양국이 북한 정부수립기념일인 9·9절 직후 신의주를 단둥시와 연계해 국제경제지대(특구)로 개발하기로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공동 개발안은 지난 2012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중국 상무부 천더밍 부장이 합의한 것과는 다르다”라며 “양측 전문가들이 원점에서부터 새로 공동 기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북한과 중국은 신의주 일대 위화도와 황금평 개발에 합의했다(‘2012년 개발안’). 중국 측은 당시 나진항 4·5·6호 부두 개발 및 50년 사용권 획득을 강력히 희망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나진·선봉 일대를 국제경제지대로 개발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중국 측의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는 대가로 위화도 황금평 개발을 요구한 측면이 강했다.
이번에는 중국의 단둥 개발계획과 연계한다는 점에서 기존 2012년 개발안과 다르다. 신의주 개발 방안과 관련해 그동안 북한은 ‘독자 개발’을, 중국은 ‘공동 개발’ 내지 단둥과의 ‘연계 개발’을 주장해왔다. 이번에 북·중 양국이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중국 측 입김이 좀 더 강하게 관철됐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말하는 단둥 개발이란 지난 9월12일 랴오닝성 정부가 공개한 ‘랴오닝 일대일로 종합실험구 건설 총체 방안’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랴오닝성 정부 차원의 일대일로 계획에 신의주 특구 개발이 종속된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랴오닝성 측이 발표한 일대일로 계획은 한반도 남부 부산항을 통해 일대일로를 태평양까지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단둥-평양-서울-부산항을 잇는 철도·도로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랴오닝성을 중국·한국·북한·일본·러시아·몽골이 협력하는 동북아 경제회랑의 허브로 만들 계획인 셈이다.
물론 이 계획안에 ‘중앙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단둥 특구를 건설하도록 노력’한다든지, ‘황금평에 있는 북·중 경제구, 단둥의 북·중 호시무역구를 단둥 내 중점개발개방실험구와 함께 대북 경제협력의 중요한 지지대로 만들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다. 일대일로가 철도·도로·항만을 통한 물류망 확보와 경제권 통합을 지향하는 만큼 단둥 특구 개발이나 황금평, 호시무역구 얘기 등은 양념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이 그동안 추진해온 황금평·위화도 개발에도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금평이 각광을 받으면 랴오닝성이 애써 개발한 배후도시 단둥 신구의 부동산값이 떨어진다. 또 개발만 해놓고 못 쓰고 있는 단둥 신구의 시설도 많은데, 굳이 황금평에 중복 투자할 이유가 없다. 황금평은 도시 근교 농업지역으로, 특용작물 재배지 정도면 적당하다는 것이다.
북·중 양국의 신의주 특구 공동 개발 방향과 관련해 최근 흘러나온 얘기 역시 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또 다른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양측이 구상하는 신의주 특구 개발 방향은 이미 대충 나와 있다. 네 가지 방향이다. 첫 번째는 지난 2014년 10월 완공된 신압록강대교의 북한 측 진입도로와 세관 건설이다. 이를 위해 중국 측이 지난 8월 북한에 6억 위안(약 1000억원)의 건설 자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남신의주 개발이다. 세 번째가 신의주-평양 간 고속도로 신설 또는 개건이다. 네 번째가 기존 신의주 경제특구에 대한 중국의 투자이다.
현재 흘러나온 신의주 특구 개발 방향은 북한과 중국 요구가 합쳐진 것이다. 신의주 개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지난 2000년대 이후 분명했다. 신의주 특구를 중국이 조차지 형태로 위탁 개발하거나 신의주 개발은 무시하고 단둥에서 평양으로 직통도로만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당시 북·중 양국 수뇌부 사이에서 시작된 신의주 조차 개발에 대한 신경전이 해결되지 않자,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 방북을 계기로 시작된 신압록강대교는 신의주를 거치지 않고 평양으로 직접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즉 단둥에 세관, 출입국관리, 검역사무소를 설치해 방북을 위한 수속을 원스톱으로 끝내고, 신의주 남쪽 용천을 경유해 평양으로 직통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신의주를 자기들이 장악해 개발하는 게 불가능하면 아예 배제하고 단둥-평양 직통 라인을 구축해 평양을 직접 영향권 안에 두겠다는 심사였다. 북한 측이 이를 받아들일 리 없다. 북한은 신압록강대교 건설이 신의주 개발에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용천 북쪽의 남신의주 쪽으로 신압록강대교 방향을 틀었다.
중국 수뇌부가 신의주에 대한 조차 개발을 주장해온 것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신의주는 일제가 1904년 러일전쟁을 위해 경의선을 급조하면서 1905년에 새로운 의주라는 뜻에서 개발한 곳이다. 처음부터 대륙 침략의 관문으로 세운 군사도시다. 중국이 신의주 개발을 안보적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자기들 이외의 세력이 이곳을 개발하거나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깔고 신의주에 대한 북·중 공동 개발 방향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부딪히게 될 쟁점이 눈에 보인다. 즉, 앞서 열거한 네 가지 개발 방향 중 중국 측이 원하는 것은 단둥을 출발점으로 하는 일대일로 계획의 취지에 맞게 첫 번째의 북한 쪽 진입도로 건설과 세 번째 평양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다. 두 번째 남신의주 건설과 네 번째 신의주 경제특구에 대한 투자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북한이 희망한 사업이다.
신의주 개발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
이렇게 신의주 공동 개발은 북한의 요구가 일부 반영되었다. 중국으로서는 탐탁지 않지만 길을 빌리는 대가로 합의한 것이다. 대신 앞으로 누가 신의주 공동 개발을 주도하느냐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소지가 크다. 그 조짐이 보인다. 10월24일 국제관계 싱크탱크인 차하얼 학회가 베이징에서 발표한 ‘한반도 긴장 완화 속 동북지역 경제발전의 기회’라는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7월30일부터 8월15일까지 지린성 등의 전문가들과 연구팀을 구성해 작성했다는 이 보고서는 “지린성 및 랴오닝성과 접한 북한 지역에 홍콩을 모델로 한 100년 기한의 조차지와 자유무역구를 겸한 국제자유무역지대나 자유항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조차지의 최고 관리권은 북한이 현대화된 관리 경험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이 갖고, 북한은 간접적으로 관리에 참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하얼 학회는 2009년 10월 민간 기업이 투자해 설립했고 독립적인 싱크탱크를 지향한다고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중국 수뇌부가 견지해온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발표 시점도 미묘하다. 신의주 특구 공동 개발 방향을 둘러싸고 북·중 양국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 때에 발표됐다. 중국 정부 의중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향후 신의주 특구 개발 방향을 둘러싼 중국 측의 ‘간보기’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측이 이처럼 신의주 특구 개발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틀어쥐려 할 경우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까? 그 선례가 있다. 청진항 개발을 둘러싼 양측의 충돌이다. 신의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축 개발과 청진항을 중심으로 한 동부축 개발은 지난 3월25~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중 때부터 논의된 사안이다. 당시 ‘북·중 양국 사이에 과거 개발하려다 중단했던 국경 지역의 특구 개발 문제가 논의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동부축은 과거 같으면 나진·선봉 지대와 나진항 개발이 대상이 되겠지만, 2009년 11월 북한이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 개발계획에서 탈퇴한 이래 동부 지역 개발계획에 변화가 생겼다. 즉 나진·선봉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나진항의 용도 역시 러시아와의 물류 중계항으로 축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다롄의 복합 운송회사인 창리와 지난 2008년 체결한 나진항 1호 부두에 대한 10년 사용 계약도 재연장하지 않고 지난해 말로 종료했다. 대신 청진항을 중국 측 물류의 중계항과 중공업 및 중화학공업 중심지로 육성하고, 원산항을 북한 자체 물류와 관광 중심지로 키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훈춘-나진·선봉-나진항을 중점으로 추진해온 지린성의 장길도 계획 역시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창춘-옌지-투먼-청진으로 이어지는 일대일로 사업에 통폐합된 것이다.
북·중 양국이 지난 3월 논의를 구체화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5월7~8일 다롄 방문 때였다. 신의주 일대의 서부축과 청진항 일대의 동부축 개발에서 중국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당연히 청진항 개발이 포함된 동부축이었다. 나진항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동북 지역 물류의 중심인 청진항을 손에 넣으면 한반도 북동 지역을 영향권에 편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진항 개발에 100억 위안(약 15억 달러)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제시하며 의욕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바로 개발 방식을 둘러싼 견해차다. 중국은 BOT 방식으로 자신들이 개발한 뒤 50년 사용권을 갖겠다고 주장했다. BOT 방식은 도로·항만·교량 등의 인프라를 시공한 측이 일정 기간 이를 운영해 투자금을 회수한 뒤 발주 측에 넘겨주는 방식이다. 중국의 자금과 기술로 청진항을 개보수해서 50년 동안 사용한 뒤 북한에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 추진 과정에서 흔히 해온 방식이다.
북한이 펄쩍 뛰었다. 국토 어느 부분이라도 외국이 운영권을 갖는 건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발은 북한이 할 테니 중국에 비용과 기술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한다. 양측의 입장 차이로 청진항을 출구로 삼았던 지린성의 일대일로 계획이 차질을 빚자 무게중심이 부산항을 출구로 하는 랴오닝성의 일대일로 계획으로 옮겨간 것이다.
신의주 특구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이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어떻게 조정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서는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핵 문제 해법의 방향만 잡히면 신의주에 투자할 외국 자본은 많다. 최근 미국계 다국적 곡물회사 카길의 방북 얘기나 과거 신의주 행정장관을 맡았던 양빈의 움직임이 흘러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 비핵화 이후 한·미의 대북 진출을 염두에 두고 선점을 위해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일대일로 추진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서 드러낸 영토적 야심을 포기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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