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개방과 체제 유지, 어떻게 둘 다 잡았나
  • 호찌민·글 이상원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 호수 565
  • 승인 2018.07.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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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져 보이는 장식품이 거실에 가득했다. 비서 세 명은 두 시간 동안 서서 시중을 들었다. 배석한 부회장과 현지 기자, 통역도 내내 눈치를 살폈다. 11명이 모인 호찌민 시 중심가의 저택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이는 집주인 응우옌박푹 회장(74) 한 명이었다.

현재 푹 회장의 공식 소속 단체는 호찌민 과학기술경영컨설팅협회다. 협회는 베트남 전역의 큰 행사를 주관하며, 이 행사에는 정부 고위 관료들이 대거 참석한다. 공학박사인 푹 회장은 공산당 고위층과 직접 소통하면서 베트남 정부의 건설·기술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인물이다. 현지 기자는 “베트남에서 공직자나 교수들은 공개 발언을 하기 어렵다. 푹 회장은 정부가 용인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통역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 그가 ‘JP급’이라고 소개했다.

베트남은 왜 경제 개방을 했을까? 전쟁을 치른 미국과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일까? 자국을 벤치마킹하려는 북한을 어떻게 볼까? 전쟁을 겪은 정치 엘리트는 이를 여과 없이 들려주었다.

ⓒ시사IN 이명익응우옌박푹 회장은 “베트남 모델은 해외 자본 유입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호찌민 과학기술경영컨설팅협회는 정부 산하기관인가?

정부 기관은 아니지만 정부의 일을 도와주는 곳이다. 정부는 국토, 교통, 과학, 기술 등 정책을 세우며 협회에 자문을 한다. 베트남 남·북·중 전역에서 열리는 정부 행사를 함께 주관하기도 한다. 협회 내부 행사에는 정부 관료들이 늘 참석한다. 베트남에서는 10명만 모이는 행사라도 관공서에 미리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협회 행사에는 수백명이 모여도 정부 허가가 필요 없다(웃음).

사회주의 국가인데 경제 개방 초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있었다. 그래서 개방이 늦었다. 한국 얘기부터 시작하자. 1960년대 베트남이나 중국에서는 한국식 경제 발전을 아주 나쁘게 생각했다. 솔직히 한국은 미국 덕에 경제가 발전하지 않았나? 대통령제를 비롯한 미국 제도를 그대로 본뜨고 미국에서 막대한 자금을 얻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는, 한국을 비판하던 중국마저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방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다른 나라의 투자를 받았다. 이 시기 베트남 공산당은 “중국은 사회주의를 배신했다”라고 욕하면서, “우리가 진정한 사회주의”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1990년대에 아시아 최악의 경제 수준에 머물렀다. 베트남 정부는 뒤늦게 “이제는 바꿀 수밖에 없다”라고 선언했으나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는 몰랐다. 결국 (비판하던) 한국과 중국처럼 개방을 해서 해외 자본을 끌어왔다.

ⓒ시사IN 이명익삼성전자는 호찌민의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위)에 가전 복합단지를 조성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모델’처럼 경제를 개방하려 한다는 말이 있다.

이곳 신문에도 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북한은 예전 러시아처럼 매우 낙후된 국가이다. 1990년 이전 베트남도 그랬다. 이 상황을 바꾼 베트남 모델은 해외 자본 유입이 핵심이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발전시키고 싶으면 굳이 다른 나라에 가서 정상회담을 할 필요조차 없다. “해외에서 투자받고 싶다”라는 말 한마디면 경제는 발전한다. 김 위원장이 그런 (직설적)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아직 못 들었다. 개방 의지가 분명치 않은데 어느 나라가 북한에 투자를 할까? 말뿐이고 행동은 없는 북한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방이 경제 발전과 직결된다면 북한은 왜 망설인다고 보는가?

시장경제가 들어오고 경제가 발전하면 정부(정치권력)가 바뀔 수 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직 개방하지 않는 것이다. 베트남은 어떻게 유지했느냐고? 통치 방식이 제일 중요하다. (목 조르는 시늉을 하며) 꽉 잡는 것이다. 해외에서 투자는 받되 정치적으로는 인민을 찍어 누른다. 그래서 경제는 발전하고 정권은 유지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공산당이라는 통치 세력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경제가 발전하기 때문에 인민의 저항은 없다시피 했다. 전쟁 뒤 베트남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개방 뒤 과거에 비해 살림살이가 나아진 인민들은 정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베트남도 (이 과정은) 중국 개방에서 배웠다.

북한도 베트남의 길을 따르면 경제 발전과 정권 유지를 모두 챙길 수 있지 않나?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북한도 베트남처럼 정치는 그대로 두고 경제만 개방하면 된다. 그런데 북한과 베트남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베트남은 통일국가였다. 해외 투자를 받기 시작한 1990년대 베트남 공산당의 통치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반면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다. 북한은 한국과 인접하고, 한국은 미국과 좋은 관계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개방은 북한 처지에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당장 개방하면 북한 정치가 제 기능을 잃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 문재인 대통령이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을 보니 남북, 북·미 관계가 개선되려는 것 같다. 대외적으로 이런 환경이 더 지속된다면 북한도 (베트남식) 개방을 고려할 법하다.

베트남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전쟁을 치렀다. 전쟁을 직접 겪은 처지에서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전쟁 당시에는 미국을 증오했다(웃음). 미국 사람들은 모두 나쁜 놈이라고 배웠다. 전쟁 훨씬 이전부터 베트남 안에서 대미 감정은 좋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호찌민 주석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수차례 ‘베트남 독립을 지지해달라’고 편지를 썼으나 묵살당했다. 그전까지 미국에 우호적이던 호찌민이 생각을 바꾼 계기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응우옌반티에우)은 미국을 따랐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 수백만명이 죽어야 했다. 현재 미국은 베트남에 와서 투자하는 중국인들을 내쫓으라고 정부에 압박을 넣으려 한다. 미국 역시 베트남에 투자를 많이 하기는 했으나 애초에 좋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모두 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에 대한 감정은 어떤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을 따라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병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국과 가까웠던) 다른 몇몇 나라도 마찬가지로 파병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한국 역사를 존경한다. 작은 나라인데 2000년 동안 중국의 침략에 맞섰다. 베트남도 한국과 닮았다. 오랜 기간 중국과 전쟁을 치렀으나 끝내 정복되지 않았다. 베트남 덕에 타이 등 다른 나라들도 중국에 흡수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나 전후 복구는 베트남의 모델이다.

호찌민 주석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존경은 정치·사회에 영향을 주나? 북한의 김일성 주석도 호찌민 주석처럼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생전 호찌민은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 지금도 여전히 그의 시각이나 정신이 베트남 전역에서 공유되고 있다. 사회를 결집시키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호찌민의 친구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역시 북한 인민에게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게 (호찌민처럼 계속) 유지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동시대 인민들의 찬사가 아니라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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