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당사자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
  • 호찌민·글 이상원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 호수 565
  • 승인 2018.07.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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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베트남의 대표 이미지는 ‘전쟁’이다. 수천 년간 얽힐 일 없던 양국에게 베트남 전쟁은 가장 강력한 접점으로 남았다. 베트남 내에서도 전쟁은 첫손에 꼽힐 만한 현대사의 주요 사건이다. 호찌민 시에 있는 전쟁박물관에서 쩐쑤언타오 관장(아래)을 만났다. ‘베트남이 보는 베트남전’은 대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북한에게도 참고가 될 만하다.


ⓒ시사IN 이명익
이 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1975년 ‘미국과 괴뢰정부의 범죄 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웠다. 1990년 ‘침략전쟁 범죄 전시관’이라고 개명했고, 1995년 ‘전쟁박물관’이 되었다. 박물관 목적은 침략전쟁의 증거를 수집, 연구, 전시하는 것이다. 떨어지는 포탄 위를 나는 평화의 새가 박물관 로고다. 전쟁의 포화를 넘어 평화로 나아가자는 의미다. 방문객은 연 100만명 정도이고 그중 70%가량은 외국인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해서 이긴 유일한 국가다.

전쟁에서 승리한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크게 둘로 추릴 수 있다.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이다. 베트남에서 베트남 전쟁은 ‘인민전쟁’이라고 불린다. 군인과 인민은 물과 물고기처럼 신뢰가 있었다. 미군은 우수한 무기를 지녔지만 베트남군은 인민이 도왔다. 음식, 정보 등 모든 것을 인민에게서 얻었다. 대외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의 지지 덕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군인과 무기를 지원했다. 유럽 등지에서는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반면 미군은 자국민들에게조차 지지받지 못했다.

대미 관계를 개선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1000년간 (중국·프랑스·미국과) 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현재 평화만을 갈망한다. 베트남 정부가 인민을 위해 문을 열어 미국의 투자를 많이 받았고 그들의 도움을 얻게 됐다. 고엽제 후유증 치료나 지뢰 제거 작업은 유엔이 와서 도왔다. 전쟁 피해를 입은 양국 시민들 간에 대화 창구도 열었다. 미군 유가족들이 베트남군 유가족과 만나 사과를 하고 서로 위로했다. 참전했던 미군이나 한국군도 베트남 군인과 대화를 나눴다. 물론 전쟁 직후에는 대미 감정이 험악했지만 지금 베트남은 미국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다. 불만을 가진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여론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시사IN 이명익호찌민 ‘전쟁박물관’에는 베트남 전쟁과 프랑스 식민지 때 사용한 전쟁 관련 물품이 전시돼 있다.
한국 등 당시 참전한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우리가 전쟁을 치른 상대는 미국이다. 주된 적개심 역시 미국을 향했다. 한국이나 필리핀, 뉴질랜드는 미국 영향으로 참전했기에 애초부터 별다른 감정이 없다. 지금은 미국이나 다른 참전국들이나 모두 베트남과 좋은 관계다. 중국과도 몇천 년 전쟁을 치렀고,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중국을 싫어한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친선이다. 대미 관계나 대중 관계나 일단 중요한 것은 경제 발전이기에 협력하고 있다.

미국과 관계 개선은 호찌민 주석의 유훈이었나?

호찌민 주석이 미국과 베트남의 향후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아직 연구가 필요하다. 호찌민 주석이 죽기 직전 미국과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당시 호찌민 주석의 주된 관심사는 남북 통일과 평화였다. 그는 남북이 나뉜 상태로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북이 함께 미국에 맞선다면 무조건 이긴다고 여겼다. 인민들은 호찌민 주석 말씀을 모두 믿었고,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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