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술, 담배, 고기 중에 하나만 끊어야 한다면 뭘 끊을 거야?”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답했다. “목숨.” 나는 나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건강을 이유로 술이며 담배를 끊는 사람들이 내심 못마땅했다. 〈드링킹〉의 저자 캐롤라인 냅처럼 말이다. “별 웃기는 유행 다 보겠네. 이게 도대체 무슨 재미야?(34쪽)” 어차피 한번은 죽으니까, 좋아하는 술·담배라도 마음껏 하자고 다짐했다. 따지고 보면 인생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다. 그마저도 간섭받기 일쑤이지만.
〈드링킹〉을 읽어나가는 동안 ‘내 일기장이 유출된 건 아닐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며 자주 중얼거렸다. ‘하필 저자가 여성 기자에 알코올의존증 환자일 건 뭐람.’ 그도 나처럼 모르는 사람과 통화하는 걸 어려워했다. 기자인데도! 그래서 취재원과 술을 마셨다. 아무렴, 역시 술이 최고지! 나는 감탄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숙취에 대한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아직 읽지 못했다. “누군가 내 뇌를 밖으로 꺼내서 자근자근 짓밟고서 도로 넣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195쪽).”
정말이지 술 마실 이유는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하루를 온전히 버틴 나에게 주는 상으로 술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나는 ‘정당하게’ 어제도 그제도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충분하다니? 알코올의존증 환자에게 그것은 생경한 미지의 언어다. 충분히 마시는 일이란 없다(76쪽).”
저자는 술에 취해 친구의 두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뻔한 일을 계기로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받고 알코올의존증 환자 자조 모임에 나간다. 〈드링킹〉은 그 과정을 담은 아름답고 빼어난 에세이다. 그러나 ‘아직’ 누군가를 술 때문에 위험에 빠뜨려본 적 없는 나는 이 책의 첫 문장을 곱씹으며 퇴근을 기다린다.
“I DR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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