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붕에 올라가셨다. ‘아버지, 이제는 내려오셔야 해요. 하늘은 그만 색칠하시고 내려오세요.’ 아버지는 내 말을 들었을까? 넓고 깊은 하늘에 파란색 물감으로 색칠하시는 아버지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묵묵히 파란색 물감을 하늘에 흩뿌리시며 하늘을 더욱더 파랗게 색칠하셨다. 내가 보기에 하늘은 파란색을 덧입혔어도 아름답거나 찬란하지는 않았다.

재닛 웨어 지음, 유자화 옮김, 인물과사상사 펴냄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내가 만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차디찬 몸이었다. 영안실에 안치된 아버지는 숨도 쉬지 않은 채 딱딱하게 굳은 몸뚱어리로 지붕에 올라갔을 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이며 머리며 다리를 들어봤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게 슬픔의 무게였을까. 그 순간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물밀듯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렇게도 지붕에서 내려오라고 했는데, 이제 지상에서 단단한 주검으로 나와 마주했다. 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고, 평온해 보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게 늘 죄스러웠다. 아버지는 이 지상에서 고달픈 몸을 이끌며 하늘뿐 아니라 온 지구를 색칠하겠다며 고집을 피우셨다. 나는 그게 몹시 못마땅했다. ‘왜 하늘은 파래야 하나요? 왜 세상의 짐은 아버지가 모두 짊어져야 하나요?’ 그 이유를 나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후에 어렴풋이 깨달았다.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하는 마지막 말들〉을 편집하면서 간간이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가족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떠나는 가족을 잘 보내드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작은 용기를 내어 뒤늦은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수고하셨어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기자명 박상문 (인물과사상사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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