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이 북한을 다룰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형용사는 비자르 (bizarre)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기괴한’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뜻의 이 수식어를 ‘북한’이나 ‘김정은’이라는 대명사 앞에 붙이기를 좋아한다. 주관의 냄새를 피우기 싫어하는 언론의 관례에 비추어보자면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외신을 탓할 수만은 없다. 북한을 표현할 때 비자르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기는 힘들다. 이 나라는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독재자가 판치는, 이 지구상에서도 드물게 3대째 권력을 대물림한 상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라기보다는 왕조에 가깝다. 사회 분위기는 원시 기독교 사회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실제로 1992년 북한을 방문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 일행은 북한이 꾸며놓은 김일성 출생지를 보고는 교회가 설정한 예수 탄생의 무대와 너무나 비슷해 그곳을 베들레헴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이곳 사람들은 아버지 김일성과 그 아들들이 천년 낙원을 건설해주리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인민의 삶은 빈곤과 기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이다. 불만을 표출하는 이단은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혹독한 통제와 궁핍 속에서도 지도자를 향해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며 눈물 흘리는 북한의 인민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나 사이비 종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교주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과도한 흥분 상태에 빠진 듯한 모습은 온갖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북한을 오래 상대해온 전문가 가운데는 그런 감성적인 반응이 세계와 북한의 관계를 악화해온 주된 요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 따르면 이 체제는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며 좀 더 위협적이고 호전적으로 스스로를 닦달해왔다. 오랫동안 미국과 한국의 강경파들은 북한 지도자를 미치광이 취급해왔지만 적어도 김일성 주석과 그 아들인 김정일 위원장은 합리적이며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는 증언이 너무나 흔하다. 그 두 사람은 막강한 무력과 재력을 가진 미국과 그 동맹에 맞서 국민을 사지로 내몰 만큼 비이성적이지는 않았던 걸로 보인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핵전쟁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관심과 인정이었을 수 있다.

ⓒ한성원 그림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석해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북한에 대한 외부의 시선,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개막식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김일성 직계 가운데 처음 남한을 방문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본래 펜스 부통령은 한국의 중재로 김여정 제1부부장과 비밀 회동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북한의 취소로 무산되고 말았다.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 방문과 오토 웜비어 유족 관련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러든 말든 북한 대표단은 화제를 모은 방남 일정을 마치면서 문재인 정부에 무거운 과제를 안겼다. 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대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여러분을 평양에서 다시 뵙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3월 패럴림픽이 끝날 때까지 시간은 있다. 4월에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예정돼 있다. 우리 정부의 옵션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1994년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진지하게 고려하던 때 못지않게 예민해진 상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상대로 한 외교가 시간 낭비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북한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했고, 그중 한 번은 수소폭탄 실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거리 미사일 기술 개발 속도 역시 눈부시게 빨라지고 있어서 미국은 이제 정말 뉴욕이나 워싱턴에 북한의 핵미사일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내일 수백만의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 수십만명을 대가로 지불하는 위험도 무릅써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인사들이 늘어났다. 1994년 북한 핵 시설 폭격의 설계자였던,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애슈턴 카터는 당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면 북한 핵 시설은 이미 자갈 무더기가 되었을 거라고 최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장군들 입에서도 험악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장성으로 알려진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은 한반도에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 지인을 향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은 덴버나 콜로라도 땅에 핵무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허버트 맥매스터 중장은 ‘야만적인 체제에는 고상한 이론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핏대를 올린 지 오래되었다. 이들보다는 훨씬 지적이고 이성적인 해군 장성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마저 최근에는 슬쩍 거들고 나섰다. 그는 지난해 9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군사 옵션이 있다”라고 흘렸다. 그러면서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 사정권 안에 있는 인구 1000만명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선택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참모들이 군사 전문가들에게 서울에 해를 끼치지 않고 북한을 공격할 방법이 없냐고 묻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미국 국방부 2015년 보고에 따르면,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1분에 서울을 향해 1만 발을 쏠 수 있는 장사정포, 생물화학무기, 드론, 소형 잠수정, 땅굴을 통한 특수부대 공격이 결합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구경하기 힘든 가장 나쁜 유형의 전투가 벌어질 전망”이다.

서울 시민이 북한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 외에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망설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였다. 한반도와 관련해 중국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북한 핵 위협이 아니다. 북한이 미국이나 그 동맹의 구상에 따라 한국에 흡수 통일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 시나리오이다. 중국은 한국에 미국의 사드 미사일 포대 정도만 들어와도 경기를 일으킨다. 북한과의 국경에 중국을 더욱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미군의 강력한 레이더와 특수부대가 배치되는 것을 참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장 높은 해’

미국은 현재 공공연하게 이러한 중국의 염려를 든든하게 붙들어 매주려 노력하는 중이다. 미국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중국에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던졌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 변화나 재통일에 관심이 없으며, 비무장지대 북쪽에 미군을 배치할 욕심이 없다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최근 CNN은 미국이 북핵 문제에 주도권을 갖는 대신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미국은 차근차근 군사적 행동을 향한 정지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이런 아메리카 퍼스트의 결정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이며 군사동맹의 일원인 한국 정부에는 의견을 묻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가 북한과 직접 협상한 경험이 있는 미국의 전·현직 관료와, 정보요원들의 말을 종합한 바에 따르면 ‘올해가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장 높은 해’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당연히 코리아 퍼스트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겐 한국인의 피가 강물처럼 흐를 게 뻔한 전쟁을 막는 것이 최선이다. 나아가 한반도에서 영원히 긴장을 종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좋은 선례와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북을 계기로 전쟁 위기를 넘긴 클린턴 행정부는 힘든 협상을 거쳐 북한과 기본 합의라 불리는 세 쪽짜리 문서에 서명했다. 이 합의에 따라 북한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했던 원자로를 동결하고 다른 두 개 원자로 건설도 중단했다. 북한이 국제 핵사찰을 받는 대신 미국·한국·일본은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고 매년 50만t의 중유를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내 강경파로부터 내내 퍼주기를 한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보수 신문과 공중파 방송에는 유화니, 굴복이니 하는 단어가 횡행했다. 공화당에 포위된 행정부는 중유 선적을 위해 필요한 작은 예산을 따내는 데도 악전고투해야 했다.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자금 공급이 끊기고 중유 선적이 지연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워싱턴도 평양도 간신히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전망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북·미 관계가 악의에 찬 상호 비방으로 파탄을 맞으려 할 즈음인 1997년 겨울 한국에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했다. 50년 동안 북한에 적대 정책을 펴온 여당의 패배였다. 그때부터 남북관계는 데탕트의 급물살을 탔다. 1998년 말 현대그룹은 금강산에 관광지를 개발하고, 비무장지대 안에 경제특구를 조성하기로 북한과 합의했다.

2000년 6월15일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평양을 향해 날아갔다. 양측 밀사가 분주히 남북을 오가며 몇 달 동안 치열하게 협상한 결과였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한국 정부가 북한과 협상 중이라는 사실을 미국에는 철저히 함구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문재인 정부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죽은 뒤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 사회에 데뷔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인 언론인 문명자씨와 한 인터뷰에서 “이제 조선 사람들은 내가 머리에 뿔 달린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꽉 막혔던 북·미 관계도 결정적인 돌파구를 맞게 되었다. 이번 국면에서 코리아 퍼스트 전략은 일단 미국 눈치 볼 것 없이 정상회담을 향해 곧장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선례다(제548호에 계속).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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