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야당인 민주당의 협조로 이뤄진 경사였다. 2010년 6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박근혜·나경원 의원 등 여야 의원 284명이 공동 발의한 ‘2018 평창올림픽 유치 지지 결의안’에도 그 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결의안에는 ‘동계올림픽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평창에서 개최될 경우 동북아 평화와 인류 공동 번영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IOC가 지향하는 세계 평화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 구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와 남북 단일팀 추진은 자유한국당(당시 한나라당) 집권기인 이명박 정부 때 법률로 뒷받침된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추진하고 기획한 자유한국당이 야당이 되었다고 태도를 바꿔 ‘평창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 됐다’라고 비판하면 제 얼굴에 침 뱉기가 아닐까?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공세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때가 있는 법이다. 자신들의 집권 9년 동안 남북관계가 파탄났고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북핵 위기로 전쟁 위기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2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바람 앞의 촛불을 지키는 심정으로 (남북)대화를 지키고 키우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할 만큼 상황은 절박하다. 남북이 올림픽을 화두로 접점을 모색하는 이 시점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먹구름’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미국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2월9~25일 약 2주간의 평창올림픽 기간에 한반도의 명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위기감이 과장됐다고 느낄 수도 있다. 미국의 역대 정부도 북한 정권의 교체(레짐 체인지)나 핵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을 거론했지만 모두 말로 그쳤다. 북한이 서울이나 도쿄에 대량 보복할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공격은 사실상 전면전을 의미했다.
이런 논란을 비켜갈 방법이 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 그 자체로 북한 공격에 대한 법률적 뒷받침이 가능해진다. 9·11 테러 직후 의회가 승인한 대통령의 대(對)테러 무력사용권(AUMF)에 따라서다. AUMF에 따르면 대통령은 테러를 계획·승인·감행한 이들과 조력자들을 대상으로 무력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 공습이 AUMF에 따라 이뤄졌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 의회 승인 없이 공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격하겠다는 것인가. 지난해 9월18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이 존재한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즉흥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 직후 북핵 문제 해법의 일환으로 군사옵션을 검토하면서 줄곧 견지해온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의 북핵 문제 해법 모색은 지난해 2월 하순 캐슬린 맥팔런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 주도로 이뤄졌다. 그녀는 레이건 행정부 등 역대 3개의 공화당 정부에서 안보 전문가로 근무했고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에서 안보 분야 애널리스트로 활약하다 발탁되었다. 강경파로 알려진 맥팔런드는 오바마 정부의 접근 방식에 비판적이었다. 당시 그녀는 군사 안보 부서의 대표들을 백악관에 소집해 외교적 접근에서 군사적 대응까지 망라한 북핵 대응책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초부터 매슈 포틴저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각 부서에서 올라온 제안을 검토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억지’라는 개념의 대북 군사옵션의 방향이 정해졌다. 특정 타깃에 제한 공격을 가함으로써 북한의 반격을 억지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6일 미·중 정상회담 당일 감행한 시리아 화학무기 공장에 대한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이 바로 그 본보기이다. 미국이 화학무기 공장을 파괴했어도 시리아는 반격을 하지 못했다. 반격하면 미국으로부터 더욱 큰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북한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한국이나 일본에 대해 보복하면 제한 공격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 종식을 겨냥한 전면 공격으로 전환한다는 군사옵션이다. 제한 공격의 제1차 타깃은 북한 북서부의 미사일 기지다. 유인 내지 무인 항공기로 폭격한다. 핵시설은 북한 전역의 산악 지역에 은폐돼 있어서 공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사일 기지만 파괴해도 ICBM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능력을 현저히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주일 미군기지 이용 않는 옵션 집중 훈련
북한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제한 공격을 일관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해 12월20일자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보도에서도 확인됐다. 이 신문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 내 현 상황에 정통한 3명의 전·현직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이 북한에 대해 시리아식 공습 계획을 추진 중”이며 그 군사옵션 가운데 “북한 측이 이용할 새로운 미사일 시험발사 장소와 비축된 무기들을 사전에 파괴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라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워싱턴을 방문한 국내 안보 전문가는 워싱턴에서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라는 군사옵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1월19일자 미국 언론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를 ‘코피 전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들 싸움에서 먼저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뜨리면 상대방이 전의를 잃는다는 점에 착안한 제한적 선제타격 전략이다. 현재 미국이 구상하는 대북 군사옵션은 미사일 기지 폭격뿐 아니라 오바마 정부에서 시도했던 사이버 공격을 통한 미사일 발사 방해,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용 3000t급 잠수함이 건조되면 드론을 이용해 폭격하는 방법 등 20여 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은 주일 미군기지를 이용하지 않고 본토에서 직접 병력이 이동해 공격하는 방법을 집중 훈련하고 있기도 하다. 1월14일자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미국 네바다 주 상공에서 제82공수사단 소속 병사 119명이 C-17 수송기에서 낙하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8월 워싱턴 주의 훈련센터에서 이미 C-130 19대와 C-17 13대 등 30여 대의 수송기로 주일 미군기지를 거치지 않고 본토에서 직접 이동하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해군도 구축함이나 순양함 수리용 도크를 가진 T-AOE-6라는 특수보급선을 활용하면 사세보나 요코스카 등 주일 미 해군기지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주일 미군기지가 북한의 ‘인질’이 되는 상황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제한 공격에 북한이 반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민간 출신의 강경파들과 달리 미국 군부는 이 점에서 매우 신중하다. 북한의 반격 우려 때문에 실제로 미국이 군사 공격을 못할 수도 있다. 북한은 건국 70주년이 되는 오는 9·9절까지 평화 기조를 유지하다가 또다시 대규모 도발을 통해 사실상 미국이 공격할 수 없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위력을 과시할 수 있다. 미국도 이 같은 경우가 오면 대응책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3일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은 미국과 동맹국뿐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전 세계에 직접적인 위협이다. 한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핵으로 무장할 잠재적 위협은 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이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말은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로 치부됐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 월터 러셀 미드 미국 바드 대학 교수가 지난해 9월4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 그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백악관 고위 참모 등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 일본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현 상태 유지가 미국 이익에 부합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그 지지자들은 북핵을 빌미로 미군을 아시아에서 빼고 대신 한국·일본·타이완을 핵무장시켜 북한·중국을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라 믿고 있다.’ 결국 북한이 기존 핵보유국 노선을 계속 밀고 나갈 경우 부딪힐 현실은 둘 중 하나다. 미국의 코피 터뜨리기에 따라 말 그대로 코피가 터지거나, 아니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화로 그동안 쌓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지금은 북한과의 대화에 몰두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전쟁 위기의 한복판에서 ‘기적처럼 만들어진 대화의 기회’를 살려 북한에게 물어야 한다. “코피가 터지거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길 말고 모두가 살 수 있는 제3의 길을 택할 의향이 없느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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