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을 못 읽고 밀려난 ‘가신’
  • 남문희 기자
  • 호수 544
  • 승인 2018.03.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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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67)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분 내용이 드러났다. 2월5일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그가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된 뒤 고급당학교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총정치국 제1부위원장 김원홍은 해임 뒤 출당 조처됐고 다수의 총정치국 간부들이 해임 및 처형됐다는 내용도 보고되었다.

황병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 고영희 시절부터 김정은 권력 승계의 일등공신이었다. 그에 대한 갑작스러운 처벌 소식에 각종 의혹과 억측이 분분했다. 군 총정치국이 외화벌이 기관에서 뇌물을 받는 등 부패한 사실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가 발각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그럴싸하게 유포됐다.

최근 북한 내에서 전혀 다른 얘기도 흘러나온다. 지난해 9월1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완전 파괴’ 연설을 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틀 뒤 개인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튿날부터 북한 내부에 전쟁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각급 단위의 결의대회가 잇달았고, 학생 근로자의 군 입대 및 재입대 결의가 봇물을 이뤘다.

북한 주민들, 특히 군 초급 장교들은 북한이 미국과 전쟁하면 반드시 승리한다고 배워왔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수령’이 개인 성명을 통해 대미 결전을 얘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자칫 일촉즉발 전쟁 분위기를 과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말의 전쟁’에 몰두하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 부분을 놓쳤다.

그런데 당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휘하의 지휘관들을 모아놓고 ‘김정은 성명’을 받들어 전쟁을 하자는 결의대회를 주도했다고 한다. 총정치국의 전쟁 결의는 실제 상황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 ‘말의 전쟁’으로 그치기를 바랐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본심’을 잘못 파악한 오판이었다. 즉, 불을 꺼야 할 시점에 기름을 끼얹어버린 셈이다.

결국 당의 비상회의는 황병서와 총정치국 간부들에 대한 비리 혐의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20년 만에 진행된 검열 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드러난 이들은 숙청을 당했고,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해임 후 사상교육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는 것이다. 미국의 ‘코피 전략(bloody nose)’뿐 아니라 총·폭탄보다 무섭다는 북한의 일심단결 역시 한반도 전쟁의 화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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