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조서에 담긴 이재용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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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수 487
  • 승인 2017.01.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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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 초기에 무조건 부정했던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협박설’을 흘리며 피해자 전략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검찰과 국회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특별취재팀(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2015년 7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전화를 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면담을 원한다고 전하면서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준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날 때 이 번호로 전화를 달라’고 한다. 면담 당일인 2015년 7월25일 토요일 오전 10시쯤 이재용 부회장 차량이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을 지난다. 이 부회장은 청와대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청와대 행정관의 안내에 따라 안가로 보이는 면담 장소에 도착한다. 이 부회장은 안종범 당시 수석의 안내를 받아 박 대통령을 30분 동안 만난다. 이 부회장이 2016년 11월13일 검찰 소환조사에서 밝힌 것으로 확인된 ‘7·25 독대’ 상황이다.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면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의 건강, 갤럭시 S6 판매 현황을 물었다고 이 부회장이 검찰에서 진술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삼성의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에 감사를 표한 뒤, 삼성물산이 투자한 카자흐스탄 발하쉬 화력발전소 건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본인이 국빈으로 방문했을 당시 카자흐스탄 국영 송전망 공사가 이 발전소 전력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이 부회장은 “대통령이 이 사업 진행 과정을 매우 소상히 언급해 깜짝 놀랐다”라며, 자신은 아는 바가 없어 “다소 어정쩡한 상태로 듣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시사IN 이명익지난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왼쪽)은 “최순실씨를 언제 알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IT와 제조업에 문화산업을 융합하고 한류 문화 확산과 스포츠 분야를 지원하는 일에도 삼성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취지로 독대 자리에서 말했다. 국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협조도 당부했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이 문화·스포츠와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특별히 대통령께 말씀드린 것은 없다.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만 했다”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기억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뭔가 자료를 보면서 말을 했다고 한다.

검찰과 특검,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 조사 때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과 그가 쓴 업무수첩을 활용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삼성’이라는 이름 뒤에 ‘1. 제일기획 스포츠 담당 김재열 사장→빙상협회 후원 메달리스트 지원 2. 승마협회 이영욱(이영국의 오기) 부회장, 권오택 총무이사. 김재열 직계 전무로 교체?’라는 내용이 면담 당일인 2015년 7월25일자로 적혀 있다. 수첩에 적힌 대로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은 삼성전자를 통해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했고, 승마협회 임원 2명은 교체됐다. 검찰이 해당 부분을 제시하며 질문하자, 이 부회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과 면담을 할 때 승마협회 관련 이야기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김재열은 제 여동생 이서현의 남편이고, 이영욱이나 권오택은 제가 모르는 사람입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 이 부회장은 “김재열 사장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연합뉴스지난해 12월29일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장시호씨 실소유 법인 지원에 대한 특검 조사를 받았다.
모르쇠로 일관한 이재용 답변이 자승자박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2015년 7월25일자에는 VIP(대통령), 삼성이라는 문구와 함께 ‘재단 문화/체육’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검찰은 이 메모와 함께 안 전 수석이 “대통령과 제가 논의한 내용으로 삼성이 두 재단에 출연한다는 내용이다”라는 진술을 제시했다.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이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면서 지원을 요청했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이 부회장은 “문화·스포츠 관련 이야기를 한 것은 있는데 재단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구체적인 금액을 이야기한 기억은 없다. 재단? 지원? 이런 단어는 사용한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재단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으신 것 같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진술이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재단 관련 사실이나 금액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뇌물죄 처벌이 우려돼서 인정을 못하는 것 아니냐”라고 파고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검찰의 거듭된 압박에도 이 부회장은 “아무리 기억을 해도 재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지 잘 기억이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문화·스포츠에 관해 열심히 말씀을 하셨는데,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부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 전 수석이 허위 진술을 한 것이냐”라는 검찰의 물음에 이 부회장은 “안 수석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역시 같은 날 업무수첩에 ‘면세점’이라 적힌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이 없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면담이 이뤄진 당시 삼성그룹 최대 현안이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을 논의했는지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부인했다. 이 부회장은 “제 기억으로는 삼성물산의 합병 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검찰 조사 때 진술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은 처음에 휴대전화 이야기를 한 뒤에는 “주로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합병으로 인한 순환출자 고리 해소 문제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모두 해소를 한 것으로 안다. 실무자들이 처리를 한 부분이라 정확한 과정은 잘 모른다”라면서 “그냥 주식을 팔면 되는 문제여서 대통령에게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없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2015년 7월25일 오전 10시에서 10시40분까지 이어진 면담이 끝난 직후인 10시57분쯤 이 부회장은 안종범 당시 수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침에 만나뵈어서 반가웠습니다.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 주십시오.” 면담 자리에서 나올 때 안종범 수석이 이 부회장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해서 문자를 보냈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그날 문자를 주고 난 후에 통화가 한 번 되었는데, 그냥 덕담만 한 것으로 기억이 된다”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당시 “통화에서 기업의 애로 사항을 이야기한 게 아니냐”라는 검찰의 질문에 이 부회장은 “제가 뭐 애로 사항을 이야기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 후에도 밥을 먹자거나 하는 이야기는 한두 번 있었는데, 실제 같이 식사를 하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11월8일 검찰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대외협력단 사무실과 대한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면담 뒤 사후 조치에 대해 “특별히 한 것은 없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대통령과 무슨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에게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발하쉬(카자흐스탄 화력발전소) 관련해서 알아보라고 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대통령이 문화·스포츠 분야 관련해서는 프랑스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해 고맙다고 하더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재단 설립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라고 이 부회장은 부인했다. 그는 “제가 직접적으로 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 이야기를 전달하면 실무선에서 요청이 오는 것을 보고 금액 등을 판단해 적정히 처리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검찰에 반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검찰과 특검, 사정당국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삼성 미래전략실 김 전무는 ‘청와대 안종범 수석이 재단을 만들라고 지시해서 전경련에서 물어오는데, VIP 관심 사안이라고 한다’는 보고를 상사인 이 팀장에게 보고했고, 이 팀장은 최지성 실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보고를 했는지 기억은 없는데, 그런 일은 저에게 보고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업을 챙기지 그런 부분까지 챙기지 않습니다”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검찰이 삼성의 비정상적 출자 정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당황하는 기색도 보였다고 한다. 미르재단이 사무실도 없고 사업제안서, 계획서도 전혀 없어서 삼성 내부에서 검토 자료를 자체적으로 만든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다시 돌아가자면 한 번 더 챙겨봤어야 하는데… 제가 돌아가서 다시 상황을 파악해보겠습니다”라고 거푸 말했다는 것이다. K스포츠재단에 79억원을 출연한 경위에 대해서도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 “(출연 전 사전 검토를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이 부회장은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한다. K스포츠재단 역시 설립 취지, 사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문건이 전혀 없어서 삼성 미래전략실 기획팀에서 자체적으로 ‘셀프 기안문’을 작성한 사실을 제시받자 이 부회장은 역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참 판단을 못하겠습니다.”

두 재단이 설립된 뒤인 2016년 2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또 한 번 독대한다. 2015년 7월 독대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개별 면담을 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면담에서 박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 건강, 갤럭시 S7 준비 상황, 바이오산업의 전망, 문화·스포츠 등 소프트 파워의 보강을 이야기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또 박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많은 협조와 지원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에 이 부회장은 “회장님(이건희)이 IOC 위원으로서 직접 유치하신 국가적 중요 행사인 만큼 삼성은 메인 스폰서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당시 면담에서도 재단 관련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게 “대통령 면담 뒤 배웅하는 자리에서 인터플레이그라운드(플레이그라운드)의 팸플릿이 든 봉투를 받은 사실이 있느냐”라고 물었지만 이 부회장은 “봉투나 팸플릿을 받거나 한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사실상 최순실씨가 소유한 회사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2016년 2월 독대에서 이 부회장에게 최순실씨 회사를 봐달라고 한 단서를 포착했다.

검찰 조사에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이 부회장의 생각도 일부 드러났다. 검찰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경과를 보고받고 승인했는지 묻자 이 부회장은 그렇다고 답하면서 “단계별로 보고를 받았고, 질문도 했고, 토론도 했고 그랬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합병 추진 이유에 대해 이 부회장은 독특한 답변을 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기본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장들이 결정을 했고,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제가 합병을 왜 반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이 의미를 알기 어려운 발언을 하자, 검찰이 다시 물었다고 한다. “‘합병을 반대 안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검찰이 다시 묻자, 이 부회장은 “두 회사 사장이 시너지를 열심히 설명하기에 합병을 한 것인데, 반대하는 주주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지금 지배력 강화를 위해 한 것처럼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듣기 싫은 면도 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엘리엇의 합병 반대로 국민연금 입장이 중요하지 않았느냐”라는 검찰 질문에 이 부회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그런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의견이 중요한 상황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잘 모르겠다”라면서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국민연금 기금위원회에 제 친구가 한 명 있어서 아는데, 장관보다는 그 위원회 위원들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요?” 이 부회장은 전국의 주주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도 하고 광고도 했지만, 구체적 진행 상황은 보고받은 게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고 한다. 안종범 전 수석의 관여 여부나, 보건복지부 장관을 움직이기 위해 안 전 수석 또는 대통령에게 청탁했는지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그런 사실은 없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시사IN>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검찰 조사 당시인 2016년 11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의 전략은 ‘모르쇠’였다. 재단 출연뿐 아니라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 역시 최순실씨와 무관하며 이재용 부회장은 지원 자체를 몰랐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또 검찰 조사에서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 독대 때 승마협회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던 삼성은 특검 수사가 본격화되자 대응 기조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 당시 강요와 압박을 받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지원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들도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승마 지원을 강하게 압박했고, 이에 이 부회장이 해당 사안을 직접 챙겼다’고 특검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의 첫 독대 시점도 앞당겨졌다. 최근 삼성은 2014년 9월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짧게 독대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삼성 관계자는 “2014년 9월 독대 때 대통령 요청으로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된 건 맞지만, 당시 대통령이 최순실이나 정유라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고 했다는 게 삼성의 주장이다. 2014년 9월 독대 6개월 뒤인 2015년 3월25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대한승마협회장에 취임했다.

특검 수사 좁혀오자 피해자 전략으로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구센터 행사 참석은 인정하면서도 “제 기억으로는 2014년 9월경에는 대통령을 개별 면담한 사실이 없다”라고 두 번이나 부인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님이 2014년 5월경 입원을 하고 실적도 떨어질 무렵으로 정신이 없을 때입니다. 제 기억으로 대통령을 처음으로 면담한 것은 2015년 7월25일 면담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삼성의 기조 전환은 두 가지 문제와 부딪친다. 먼저 이 부회장의 국회 청문회 위증 여부이다. 삼성의 해명대로라면, 2016년 12월6일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이재용 부회장은 위증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은 당시 최순실씨의 존재를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2016년 2월) 언저리쯤이 아닌가…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라고 일관했다. 정유라 승마 지원을 보고받은 시점에 대해서도 “문제가 되고 나서 미래전략실 실장과 팀장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보고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 계약 체결과 네 차례에 걸친 송금 당시에는 최순실씨의 존재를 “몰랐다”라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독대할 때 압박을 가해서 정유라씨 승마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삼성의 현재 설명과 어긋난다. 박 대통령이 강하게 요청한 사항을 이 부회장이 이행한 것이라면 이 부회장의 개입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삼성 살생부’가 그대로 실현된 점도 이 부회장의 개입을 뒷받침한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1월 검찰 조사에서는 박 대통령의 압박을 부인하다가 12월 청문회에서는 “나중에 물어보니까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입장 변화를 한 번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부회장을 위증죄로 고발할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위증 여부는 국회에서 판단할 일이고, 특검 수사 중이라 더 이상 이야기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그간 ‘당초 선수 6명을 지원하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정유라 한 명만 지원하게 돼 계약을 해지했다’라고 언론에 해명해왔다. 처음부터 정유라씨 한 명만 지원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의미인데, 이 역시 대통령 압박으로 정씨를 지원했다는 지금의 설명과 배치된다. 삼성의 기존 해명은 <시사IN>이 입수한 문건을 보더라도 사실이 아니다. 최순실씨 측근 박원오 전 전무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승마 해외 전지훈련’)에 따르면, 박 전 전무는 “삼성 측에서는 처음 구입하는 마장마술 마필 2두에 대해서는 100만 유로가 훨씬 넘더라도 선수 본인과 매치가 된다면 구입하겠다는 말씀을 사장이 제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최씨 측근과 긴밀히 상의하면서, 정유라씨 종목 마장마술 마필에 대해선 가격 상한을 두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고 박원오 전 전무가 문건에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삼성은 당초 전면 부인 전략을 세웠다가 특검 수사가 이재용 부회장으로 향하자 ‘일부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뇌물공여죄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삼성의 해명이 통하기에는 이미 말이 바뀐 궤적이 고스란히 쌓였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2016년 9월 삼성은 정유라에 대한 지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송금 내역이 나오자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차원에서 한 지원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로는 최순실씨 쪽 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재용 부회장은 몰랐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런 삼성이 지금은 박 대통령의 ‘협박설’을 흘리며 피해자 전략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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