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는 관저 집무실, 본관 집무실, 비서동 집무실이 있으며 이날은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던 구체적 위치를 밝혔다. 참사 2년7개월 만에 처음이다. 그간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 위치는 경호상 이유를 들어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당일 ‘관저 집무실’에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시사IN〉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의 청와대 근무 경험자, 대통령 가족 등 청와대와 관저 구조를 잘 아는 이들을 접촉했다.

일단 ‘관저 집무실’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선 개념이라는 이야기를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근무 인사 모두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관저 집무실이란 말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국민의 정부), “우리 때는 그런 표현 자체를 안 썼다”(참여정부), “관저면 관저지 관저 집무실은 모른다”(이명박 정부).
 


청와대 내 대통령 집무실은 크게 두 곳이다. 본관 2층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이 보통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다. 참모진이 머무는 비서동 내 위민1관에도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비서동에서 본관은 500m가량 떨어져 있다. 도보로는 10분이 걸린다. 이에 미국 백악관 웨스트윙처럼 참모들이 바로바로 대통령과 소통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참여정부 때 만든 게 비서동 집무실이다.

관저는 대통령 내외가 머무는 공간이다. 기역자 모양으로 내실과 외실로 구분된다. 외실에는 대통령이 손님을 초대해 오찬·만찬을 할 수 있는 대식당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다. 왼쪽에는 8~10명이 앉을 수 있는 회의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이곳에서 매일 아침 8시10~20분에 가까운 참모들을 불러 ‘관저 회의’를 했다. 이 대식당과 접견실이 관저 내에서 비교적 공적인 공간이다.

외실과 구분되는 내실 안에는 침실과 거실이 있다. 침실 옆 거실에 속한 공간에 작은 서재가 있다. 대통령이 보고서나 책을 읽으며 사무를 보는 공간이다. 참여정부 때 제1부속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한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벽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대통령 책상이 있고 컴퓨터, 프린터가 놓여 있었다. 3~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다. 서재에는 내외분과 부속실만 들어갔고, 침실은 대통령 내외만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밝힌 ‘관저 집무실’은 침실 옆 서재를 지칭할 것으로 유추하는 이들이 많았다. 관저에서 ‘집무실’이라 표현할 만한 공간은 서재 아니면 회의실 정도인데,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에 참모를 불러 모아 회의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본관이나 비서동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있었던 게 논란이 될 것을 의식한 듯, 청와대는 “대통령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모든 시간이 근무시간”이라고 해명했다. 여기서 청와대는 ‘대통령은 모든 시간 근무한다’는 것과 ‘출퇴근 개념이 없다’는 명제를 뒤섞는다. 전자는 맞는 이야기지만, 후자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모두 일정이 있는 날은 아침 8~9시에 관저에서 본관 집무실로 출근했고, 퇴근 뒤 관저로 돌아갔다. 공식 일정이 없으면 관저에서 머물기도 했지만 드문 일이었다. 세 대통령 모두 필요할 때는 관저에 참모를 불러 회의 및 대면 보고를 받았지만 출퇴근 개념은 존재했다. 주집무실은 본관 2층이며, 관저는 대통령이 출근 전이나 퇴근 뒤, 또는 공식 일정이 없을 때 머무르는 공간이란 뜻이다. 김기만 전 국민의정부 춘추관장은 “김대중 대통령은 몸이 아픈 경우 등 특수 상황이 아니면 늘 본관 집무실로 출근했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연설기획비서관으로 근무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정이 없는 날은 관저에 있을 수 있고, 급한 보고라면 관저에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이 생겼는데도 대통령이 계속 관저에 있으면서 출근을 안 했다면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공식 일정이 없던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보고를 받은 시각은 오전 10시, 사고 발생 1시간12분 뒤다. 서면 보고였다. 첫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아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오전 10시15분과 22분, 30분에 유선으로만 지시했다. 10시31분 세월호는 완전히 전복됐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에 해경과 군 중에 어디가 구조작업을 주도하며 맡을지 우왕좌왕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자원을 동원할지 정리해주는 게 청와대다. 청와대가 역할을 안 하니 현장에서 혼란이 생긴다. 비서실장, 안보실장, 위기관리 담당자들과 신속하게 회의해서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줬어야 하는데 그런 대응이 없었다는 게 제일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오전 10시30분 지시를 끝으로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 때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 머무르며 서면·유선 보고만 받았다. 대부분 서면 보고였다. 관저에 상주하는 인원은 요리·청소 등 수행 담당이다. 공적 사안을 논의할 참모들은 관저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비서동에 머무른다.

오후 1시7분 대통령에게 ‘370명 구조, 2명 사망’이라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시50분 뒤늦게 대형 참사임을 인지하고도 박 대통령은 이로부터 2시간25분이 지난 오후 5시15분에야 중대본을 방문했다. 오후 3시30분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하고 4시10분 이를 주재한 것도 박 대통령이 아닌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처음 공적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박 대통령은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했다. 상황 보고를 제대로 받았나 의심이 가는 발언이었다.

 

 

 

 

 


청와대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2시24분 이후에도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은 관저라는 공간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화 전 이명박 정부 연설기록비서관은 “남자 대통령도 관저에 있다고 하면 가기가 어렵다. 업무 공간이 아니고 쉬는 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본관 집무실에 100번 가면 관저에 한 번 갈까 말까다. 8·15 경축사 연설문 때문에 밤에 간 적이 있는데 대통령이 불러서였다. 더구나 여성 대통령이 관저에 있다고 하면 더 접근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씨는 “세월호는 사람의 생명이 걸린 긴박한 상황이다. 평소에도 대면 보고가 어려운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에 있었다면 긴밀하게 협의하고 보고하는 데 큰 제약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본인이 공적 공간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제라도 진솔한 해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중 정부 때 제1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이 24시간 집무한다는 말은 맞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한국 시각으로 자정 즈음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취침 직전 시간이었지만 당연히 바로 보고해 지침을 받았다. 그러나 관저 집무실이란 말은 써본 적 없다. 대통령이 집무하지 않은 정황이 뚜렷한데도 구차한 변명을 하는 게 문제다. 청와대가 국민을 두 번 속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제공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마지막 지시 후 7시간이 지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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