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전임의라면 전문의를 취득하고 나서 위암이나 간이식 같은 전문적인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다. 현대 의학의 첨단을 걷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의학에 문외한인 60대 아저씨라면 모를까, 첨단 현대 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30대 젊은이의 입에서 실체가 모호한 ‘담이 결렸다’는 표현을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물었다.
“흠 글쎄…. 그냥 non-specific(비특이적)하게 muscle(근육) 쪽에 뭐 이렇게 spasm(경련)된다든지, 뭐 그런 것에 의해 생기는 통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깨뼈 근육에 경련이 와서 극심한 통증이 생긴다고 믿었던 그 전임의는 주말을 지나면서 통증이 팔로 뻗쳐와 목 MRI를 찍었다. 목뼈 6번, 7번 사이 디스크의 수핵이 왼쪽으로 흘러나와 7번 경수 신경뿌리 쪽에 닿아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목 디스크 탈출증이다(아래 사진 참조).
먼저 근육 뭉침과 목 디스크가 무슨 상관인지 짚고 넘어가자. 195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파인스타인 교수는 그의 수업을 받는 의대생 75명과 실험실 조교 3명을 대상으로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인체 실험을 한다. 척추 주변 근육에 주사기를 찔러 6%의 고농도 식염수를 주사한 뒤 통증을 느끼는 부위를 인체 해부도에 그리게 했다. 교수가 멀쩡한 학생과 조교의 등 근육에 바늘을 찔러 고통을 주는 실험을 한 것이다.
이처럼 자극받은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부위에서 느끼는 통증을 연관통(referred pain)이라고 한다. 우리 몸의 감각이 척수를 통해 뇌로 올라갈 때 여러 부위의 감각들을 모아서 하나의 통로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정보 전달 기술인 것이다. 예를 들면 3번 목뼈 옆의 근육에서 나오는 감각과 승모근에서 나오는 감각이 같은 통로를 지난다. 실제로 주사는 3번 목뼈 옆 근육에 찔렀는데 뇌는 승모근에도 통증 자극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북한강에 악취 나는 폐수를 방류했을 때 서울 여의도에 사는 사람은 폐수가 북한강에서 오는 것인지 남한강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외과 전임의 예로 보면, 목 디스크가 찢어지고 수핵이 흘러나와 신경뿌리에 닿는 문제가 생겼는데, 뇌는 어깨뼈 주변이 아프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능형근 통증도 없어질까요?”
의술이 발전하면서 목 디스크에 문제가 있을 때 어떤 연관통이 생기는지에 대한 연구도 가능해졌다.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인 슬립먼 박사는 아파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 과정에서 느껴지는 통증의 양상을 자세히 기술하도록 하고, 목 신경뿌리와 목 디스크 자체를 건드리면 어떤 연관통이 생기는지 발표했다. 목 신경뿌리의 연관통(엄밀하게는 방사통·radiating pain)은 목에서 시작하여 어깻죽지를 타고 팔로 번졌다. 목 디스크가 손상될 때 생기는 연관통도 목·어깻죽지·팔로 가는 것은 비슷했지만 특이하게도 등 가운데·뒤통수·옆머리·쇄골·앞가슴·이마·귓구멍·관자놀이·턱관절·인후부 등 매우 다양한 부위에서 연관통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목 디스크는 참으로 잘 디자인된 충격 흡수장치다. 어느 날 갑자기 손상되기보다는 수개월, 수년에 걸쳐 손상과 회복을 반복하다가 서서히 상처가 깊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디스크 내부만 손상되어 디스크 연관통을 보이다가도, 많이 찢어져 수핵이 탈출되면 신경뿌리에 염증이 오면서 신경뿌리 연관통이 생기는 것이다. 5~6번, 6~7번 디스크 손상이 가장 흔하지만 3~4번, 4~5번 디스크 손상도 생긴다. 드물게 2~3번 혹은 7~8번(경추 7~흉추 1번) 디스크 손상도 올 수 있고 신경 분포의 개인차도 있다. 그래서 시간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58쪽 그림 참조).
지난 10년간 ‘능형근’이 아파서 온갖 치료를 해봤다는 40대 남자 환자가 찾아왔다. 능형근이란 견갑골과 흉추 사이에 있는 능형(菱形·rhomboid:마름모 모양)의 근육인데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근육이다. ‘능형근’ 같은 전문용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다. 자신의 증상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공부를 했거나, 아니면 비과학적인 고가의 치료를 받으면서 줄기차게 잘못된 개념을 세뇌받았거나. 능형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목 디스크 손상에 따른 연관통임을 MRI를 보면서 설명했다. 좀 알아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워낙 오랫동안 통증이 심해 결국 목 신경뿌리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주사 직후 환자가 미심쩍게 묻는다. “이렇게 하면 능형근 통증도 없어질까요?” 이런, 열공설보다 세뇌설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어느 날 어깻죽지 근육이 뭉치면서 심하게 아플 때 이것이 목 디스크 손상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시사IN〉 독자들이라면 목 디스크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허리부터 꼿꼿이 세우고(〈시사IN〉 제470·471호 ‘백년 허리 비결이 백년 목 비결이라네’ 기사 참조), 가능하면 컴퓨터 모니터를 올리고,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 고개도 세우는 노력(〈시사IN〉 제472호 ‘목 디스크 손상의 세 가지 범인’ 기사 참조)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근육이 뭉쳐서 생긴 것이라고 믿는 대다수 사람들은 목 디스크를 망가뜨리는 전형적인 스트레칭을 할 것이다(맨 위의 사진).
담 결림·근육 뭉침은 잊어버려라
척추는 우리 몸에서 가장 불안정해지기 쉬운 관절이다. 아래위 척추뼈가 맷돌처럼 쌓여 있고, 맷돌과 맷돌 사이에 물방석 같은 물렁뼈가 하나 들어 있는 구조라서 그렇다. 두 척추뼈 사이를 연결하는 인대는 앞뒤로 아주 얇게 달려 있다. 이토록 불안정해지기 쉬운 구조물인데 주변 근육을 스트레칭한답시고 이리저리 꺾어대면 뼈 사이에 들어 있는 디스크는 더 찢어질 수밖에 없다. 능형근의 문제라고 생각해 10년간 스트레칭 등 여러 치료를 받았던 환자의 MRI를 촬영해봤다. 아직 40대 중반인데 지난 10년간 디스크 탈출증이 더 심해졌다.
담 결림과 근육 뭉침은 빨리 잊어버려라. 잊기 어려우면 그 자체가 병이 아니라 단지 목 디스크 손상의 한 표현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 현장에서 환자를 보다 보면 목과 어깻죽지 일대의 근육 뭉침은 목 디스크 손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근육이 아니라 목 디스크를 치료해야 한다. 이 사실만 알면 나쁜 스트레칭으로 목 디스크를 더 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담 결림, 근육 뭉침이 있을 때 목 디스크 손상을 최소화하는 좋은 자세만 유지해도 통증은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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