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에는 허리, 목, 어깨 통증 등의 근골격계 문제가 심리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였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의 바세리엔 교수는 육체노동자와 사무직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나서 “목과 어깨에 통증을 겪는 것은 육체노동이나 사무직 등 신체활동 강도와는 상관이 없고 단지 심리적 긴장감이 높기 때문이다”라고 발표했다. 스웨덴 직업건강센터의 린톤과 캄벤도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비서 420명을 조사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목과 어깨 통증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보고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애꿎은 목 디스크 손상 때문에 목과 어깨가 아픈 환자들을 “일하기 싫어서 목과 어깨가 아픈 거야!” 혹은 “업무에 불만이 있어서 그런 거야!”라고 매도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목·어깨 통증의 원인을 목 디스크 손상의 증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반응이라고 오인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인한 통증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만성 통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리면 보름 정도 기침하다가 저절로 좋아진다. 떡가래를 썰다가 칼에 베인 손가락에 반창고를 잘 붙여두면 2~3주 후에 아물게 된다. 이것이 자연 경과이다. 목 디스크 손상의 자연 경과는 감기나 손가락 상처보다 훨씬 길다. 왜냐하면 디스크 같은 물렁뼈를 구성하는 연골세포는 신경세포와 더불어 우리 몸에서 제일 신진대사가 느리기 때문이다.
디스크 손상이 치유되는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동물실험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정형외과 의사 오스티는 양 21마리의 허리를 수술하여 디스크에 5㎜ 길이의 칼자국을 낸 다음 자연 상태로 방목했다. 수술 후 한 달부터 18개월에 걸쳐 양을 한 마리씩 잡아 확인했더니 칼자국 부위가 18개월이 지나면서 아물더라는 것이다. 양의 디스크가 찢어졌다가 다시 붙는 데 1년6개월 걸렸으니 양보다 평균수명이 긴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고 본다.
목 디스크 손상은 한 번 생기면 6개월 정도는 간다. 회복되는 와중에 까딱 잘못하면 쉽게 추가 손상을 받는다. 통증이 차츰 좋아지다가 몇 시간 고개 숙여 보고서 쓰고 나면 갑자기 더 아파지는 식이다.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인한 목·어깨 통증이 3~4년 가는 것은 다반사다. 6개월이 경과한 통증은 만성 통증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오래가는 목 디스크 관련 통증을 만성 통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목 디스크 손상의 자연 경과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통증이 오래가면 만성 통증으로 진단하는 게 당연하지 뭐가 문제냐고? 큰 문제가 있다. 만성 통증은 단지 ‘오래된 통증’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급성 통증을 일으키는 신체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추신경계 속 신경회로의 변화 때문에 지속적으로 느끼는 통증’을 뜻하기 때문이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 우울 등 감정적 요소가 많이 관여된다는 것이다. 목 디스크 손상은 6개월 만에 낫지 않는 경우가 많다.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목·어깨 통증을 만성 통증으로 분류하여 심리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치부하면 저변에 깔린 디스크 손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목 디스크 손상 증상을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오인한 둘째 이유는 이에 대한 영상의학적 진단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디스크를 정확히 보여주는 진단법은 자기공명영상, 흔히 말하는 MRI이다. 뼛속 깊이 들어 있는 작은 물렁뼈를 여러 방향으로 잘라 속속들이 보여주는 MRI 영상을 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다. 인간이 이룩한 과학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러나 이 대단한 MRI가 척추 디스크 문제를 진단하는 데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MRI는 아주 작은 디스크 손상은 보여주지 못한다. 또 큰 손상은 잘 보이지만 그것이 ‘상처인지 흉터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디스크에 손상이 보이기는 하는데 방금 생긴, 눈물 나게 아픈 상처인지 아니면 오래전에 생겼다가 지금은 무덤덤해진 흉터인지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MRI로는 멀쩡해도 통증 심한 경우 많아
행복이 성적순이 아닌 것처럼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인한 통증도 MRI에 나타난 손상 정도 순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큰 디스크 탈출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흉터라서 스스로는 아픈지 모르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MRI에 보이지 않는 작은 손상도 무척 괴롭고 오래가는 통증으로 작용한다. 위의 사진을 보자. 제일 왼쪽 사진은 평생 목과 어깨가 아프지 않은 24세 남자의 목 MRI이고, 오른쪽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어깨가 끊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는 23세 여자 환자의 목 MRI이다. 두 사람의 통증은 하늘과 땅이지만 MRI상으로는 별 차이 없지 않은가? 그다음의 MRI는 한때 목 디스크 손상의 증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프지 않은 48세 남성이고, 제일 오른쪽은 처음에 언급한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이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극심한 통증을 느낄 당시에 찍은 MRI이다. 별로 안 아픈 사람의 목 디스크가 훨씬 더 험악함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학자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다. 린톤과 캄벤도는 목·어깨 통증이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보고한 지 2년 만에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사무기기를 하루 5시간 이상 사용하는 경우 통증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심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육체적 스트레스도 같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1999년 스톡홀름 대학 심리학과의 룬드베리 교수는 더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하는 72명에 대해 심리적 스트레스와 더불어 승모근(목덜미와 어깨를 연결하는 큰 근육)의 수축 정도를 측정했다. 목·어깨 통증이 심한 사람들이 일하는 동안 정신적인 긴장감이 높고 승모근이 강하게 수축한다는 것이다. 일하기 싫고 업무에 불만이 있어서 목·어깨 통증이 생기는 게 아니라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 탓에 목덜미와 어깻죽지 근육이 강하게 수축되고 그 근육의 힘에 눌려서 목 디스크가 서서히 손상되어 목·어깨 통증이 생긴다는 뜻이다. 스마트폰 때문에 생기는 목 디스크 손상도 고개를 숙인 머리의 무게와 그 무게를 붙들고 있는 목덜미 근육의 힘에 의해서다(〈시사IN〉 제472호 ‘목 디스크 손상의 세 가지 범인’ 기사 참조). 어째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목 디스크는 목덜미, 어깻죽지 근육을 쓸데없이 과하게 사용해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건 스마트폰이건 목 디스크가 한 번 손상되면 그 통증이 오래간다. 목 디스크 탈출증을 예로 들면 처음에는 극심한 통증으로 시작되어 4~6개월이 지나면서 상당히 호전된다. 그렇지만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2년에서 3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프면 당연히 그 자체만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탈리아 인수브리아 대학 예방의학과에서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가 있다. 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305명을 대상으로 1년 간격으로 두 번 설문조사를 한 것이다. 그 결과 첫 설문 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높게 나왔던 사람이 1년 뒤에 목·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는 일부였다. 이에 비해 첫 설문 때 통증이 심했던 사람이 1년 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는 훨씬 더 많았다. 스트레스로 목 디스크 손상이 생기는 것보다 목 디스크 손상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게 더 흔하다는 연구 결과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목 디스크 손상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해 또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연결해주는 키플레이어는 바로 목덜미와 어깻죽지 근육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진료실을 찾았던 어떤 CEO한테 물었다. “아니 어쩌다 이토록 심한 목 디스크 손상이 생겼나요?” “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회사가 어려워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회의를 하고 사장실 소파에서 쪽잠을 잡니다. 그래서 생긴 것 아닐까요?”
흠… 엄청나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십 년 걸려서 알아낸 ‘스트레스와 목 디스크의 공생관계’ 그리고 ‘목 자세와 목 디스크 손상의 관계’를 한 번에 꿰뚫는 통찰력이다. 그런데 그 통찰력에 따르면 목 디스크 손상 해결을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다 방법이 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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