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 주자 신뢰도 조사는 반기문·문재인 양강 구도였다. 〈시사IN〉과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8월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 동안 실시한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차기 대선 주자로 두 사람이 오차범위 내에서 1, 2위를 다투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4%,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9.3%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주자로 이름을 올린 여야 주자 14명을 뽑아 ‘다음 차기 대선 주자 중에 가장 신뢰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이들의 이름을 무작위로 불러 응답을 받았다. 반기문·문재인을 제외한 나머지 주자들의 신뢰도는 모두 10% 아래였다. 안철수(8.6%), 박원순(6.4%), 오세훈(4.8%), 이재명(4.7%), 김무성(4.3%), 안희정(3.2%), 유승민(3%), 손학규(2.7%), 남경필(1.3%), 김부겸(1.2%), 심상정(0.9%), 원희룡(0.5%) 순서였다(아래 참조). 〈시사IN〉이 2007년 창간호부터 매년 실시한 신뢰도 조사 이래, 뚜렷한 양강 구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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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각각 치러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각 당은 친박(새누리당)·친문(더불어민주당) 체제로 재편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친박 그룹이 밀고 있는 대선 후보로 꼽힌다. 문재인 전 대표는 당내에서 대세론이 형성된 유력 대선 주자다. 이 같은 양강 구도는 지지율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미디어리서치 문희정 팀장은 “지지도와 신뢰도는 궤를 같이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전 대표의 약진이 눈에 띈다. 그는 지난해 〈시사IN〉이 실시한 똑같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신뢰도 8.2%를 기록했다(제419·420호 커버스토리 참조). 한 해 동안 신뢰도가 두 배 넘게 상승했다. 지난해 조사 결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독주였다. 반 총장은 지난해 신뢰도 27.6%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새누리당 김무성(13.7%) 당시 대표, 박원순(13.3%) 서울시장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반 총장은 지역별로 골고루 신뢰도를 확보했다. 강원과 제주를 빼고 모든 지역에서 신뢰도 1위였다. 특히 야권세가 강한 광주·전남·전북에서는 다른 야권 정치인을 제치고 가장 높은 신뢰도(33%)를 기록했다.

1년 사이 상황이 뒤집어졌다. 반 총장은 문 전 대표에게 올해 지역별 차기 주자 신뢰도에서 오차범위 내이기는 하지만 서울(문재인 22.4%, 반기문 18.2%)과 호남(문재인 23%, 반기문 17.2%) 지역에서 1위 자리를 내줬다. 특히 호남에서 문 전 대표의 신뢰도 지표는 눈에 띈다. 이번 조사에서 문 전 대표가 호남에서 얻은 신뢰도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17.8%)보다 높았다. 이번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 실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문 전 대표는 부산·경남(PK)에서도 반기문 총장과 오차범위 내 1위 다툼(반기문 23.4%, 문재인 21.2%)을 벌였다. 문 전 대표를 신뢰한다고 밝힌 이들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여기는(40%) 30대(27.4%)와 40대(25.2%) 대학 재학 이상(22.4%)의 화이트칼라(25.9%) 층이 많았다. 야당의 전통 지지자 그룹으로 꼽히는 이들의 신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말 안철수 전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리더십 위기를 맞았다. 당 대표로서 당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랐다. 총선 패배를 점치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카드를 제시하며 수습했다. 총선 결과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후 당도 친문 체제가 강화되었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해와 똑같이 신뢰도 1위를 유지했지만, 연령별·지역별·지지 정당별·직업별로 두루 넓게 분포하던 신뢰도 폭이 지난해에 비해서 다소 좁아졌다. 이 가운데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그의 신뢰도를 교차 분석해보니 새누리당 지지자의 신뢰도가 더 올라갔다. 지난해 31.1%에서 43.6%로 상승했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반기문 새누리당 후보’를 점점 더 신뢰한다는 의미다.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반 총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만나고 경북 안동을 찾는 등 정치 행보를 보였다. 애초 방한 일정을 발표할 때 없었던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반 총장은 당시 답변을 회피하는 ‘기름 장어’ 화법도 깼다. 그는 기자들에게 “(퇴임 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것은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 국가가 너무 분열돼 있다. 정치 지도자가 국가 통합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 총장 임기는 오는 12월에 끝난다.

지난 총선에서 오세훈·김문수 등 여권의 잠룡이 낙선하자, 당권을 접수한 새누리당 친박 그룹은 반 총장을 영입할 뜻을 공공연히 내비쳤다. 친박 그룹뿐 아니다. 이정현 지도부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은 나경원 의원도 영입 1순위로 반 총장을 꼽았다.

문재인 전 대표, 수도권·호남·PK에서 강세

반 총장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정치권 경험이 없는 그가 당내 경선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후보 추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선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다. 그를 신뢰하는 층을 보아도 ‘결속력이 약하다’와 ‘확장성이 있다’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 성향을 묻는 질문에 ‘모름’ 혹은 ‘무응답’에 답한 이들 사이에서도 반 총장의 신뢰도는 1위(32.4%)였다.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밝힌 이들 사이에서도 반 총장은 신뢰도 1위(25.3%)를 차지했다. 또 국민의당 지지자 중에서도 안철수 전 대표(28.2%) 다음으로 신뢰하는 주자로 반 총장(18.4%)을 꼽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에게 문 전 대표(46.2%) 다음으로 신뢰를 얻은 주자는 반 총장(14%)이었다. 이는 확장성이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문재인 후보에 비해 결집력이 약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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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2004년 1월 문재인 민정수석과 반기문 외교보좌관(오른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차기 대선 주자 신뢰도에서 가장 큰 하락 폭을 겪은 후보는 여권에서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야권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신뢰도 13.7%에서 4.3%로 주저앉았다. 지난 4월 치러진 총선 결과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은 당내 친박·비박 갈등의 최절정에서 ‘옥새 파동’이 터졌다. 총선 성적표 또한 초라했다. 19대 총선 직후에 비해 30석 줄어 122석으로 원내 2당이 되었다.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김무성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박원순 시장도 대권 주자로서 신뢰도가 지난해 13.3%에서 올해 6.4%로 내려갔다. 서울시장을 하면서 ‘제대로 보여준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구의역 사고 이후 메피아 계약해지 논란, 옥바라지 골목 정책 번복 등은 신뢰도를 깎아먹었다는 비판이 지지자 사이에서도 나온다. 두 사람 모두 2년 연속 신뢰도가 하락세라는 점은 더 위험신호다. 박 시장은 2014년 25.8%, 2015년 13.3%, 2016년 6.4%로 하락폭이 다른 어떤 주자보다도 큰 편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신뢰도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 전 대표 또한 지난해 5.7%에서 8.6%로 소폭 상승했다. 신뢰도는 10% 아래지만, 그는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의원 38명을 배출하며 제3지대를 구축했다. 안 전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 완주할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3자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신뢰도가 낮게 조사된 군소 후보들이 3지대에서 합종연횡할 가능성도 있다. 언제든 반기문·문재인 양강 구도는 출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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