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그웨이 타는 당신 면허는 챙겼나요?


세그웨이 규정, 나라마다 달라요

 

 

김소영씨(26·가명)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인근에 산다. 두 달 전 아침 출근 시간, 김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세그웨이’에 부딪힐 뻔했다. 바퀴 하나짜리 세그웨이를 탄 사람이 김씨의 뒤쪽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사각지대에서 오는데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아 진행 방향이 겹쳤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김씨는 “IT 업체가 많은 동네라서 그런지, 출퇴근 시간에 최신형 세그웨이를 흔히 볼 수 있다.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지만 무서웠다”라고 말했다. 왕해진씨(28·가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인도를 걷다가 전동 스쿠터를 탄 사람과 맞닥뜨렸다. 왕씨는 “비켜서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핸들 방향을 보고 진행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자전거와 달리 (전동 스쿠터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지 예측이 안 돼서 당황했다.”

세그웨이 등 퍼스널 모빌리티(개인형 교통수단)가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란 짧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전기 구동 방식의 1~2인용 이동 수단을 말한다. 세그웨이, 전기 자전거, 전기 스쿠터, 전기 스케이트보드, 초소형 전기 자동차, 전기 휠체어 등이 있다.

ⓒ시사IN 조남진3월1일 서울 한강공원에서 세그웨이를 타고 있는 사람들
ⓒ시사IN 신한슬위는 한 시민이 ‘나인봇원’을 타는 모습. 현재 인도·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세그웨이를 타는 것은 불법이다.

이 중에서도 퍼스널 모빌리티 대중화의 선두에 선 것이 세그웨이다. 세그웨이는 전기로 구동하는 1인용 이동 수단으로, 탑승자의 몸 기울기와 무게중심에 따라 속도가 조절된다. 무게중심을 앞쪽에 두고 몸을 기울이면 앞으로 나아간다. 몸을 많이 기울일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탑승자가 똑바로 서서 무게중심을 가운데 두면 멈춘다. 회전하는 물체의 역학운동을 이용해 기울기를 측정하는 ‘자이로센서’ 기술 덕분이다. 방향은 핸들로 조정한다. ‘킥보드’를 닮은 두 바퀴짜리 형태다. 핸들의 모니터 화면에는 현재 속도가 자동 표시된다. 모델에 따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주행 거리, 배터리 관련 정보 등을 파악할 수도 있다. 전기모터, 리튬 배터리, 사물인터넷, 자이로센서, 인체공학 디자인 등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다. 배기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세그웨이 i2 SE/6000달러/최고 속도 시속 20㎞

세그웨이는 무서운 속도로 진화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왕발통’이라고 불릴 정도로 커다란 산악용 바퀴와 무거운 차체, 1000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보편적인 이동수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모터, 배터리 경량화 기술이 발달하면서 무게와 크기가 자전거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원휠(바퀴 1개), 투휠 보드(바퀴 2개로 가는 전기 스케이트보드. ‘스마트 밸런스’라고도 함) 등도 등장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파격적으로 낮아졌다. 2015년 10월, 중국 가전제품 제조회사 샤오미는 315달러짜리 세그웨이 ‘나인봇 미니’ 모델을 출시했다. 한국 돈으로 약 35만원 수준이다. ‘보급형 세그웨이’가 등장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일상에 퍼스널 모빌리티가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이처럼 기술과 시장은 무르익었는데, 문제는 법과 제도다.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것에 비해 제도는 한참 뒤처져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법 규정 자체가 아직 불명확하다. 도로교통법상 전기로 구동되는 탈것은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된다. 따라서 인도와 자전거 전용도로를 사용할 수 없다. 반드시 차도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세그웨이의 속력은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시간에 최대 17㎞ 수준이다. 인도로 가기에는 빠르고, 자동차나 자전거와 함께 달리기에는 느리다. 안전벨트처럼 탑승자를 기계에 고정하는 장치도 전혀 없어서 자칫하면 주행 중 튕겨나갈 위험이 있다. 차도에서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에서는 보행자가, 차도에서는 탑승자가 위험해지는 딜레마다.

샤오미 나인봇원 E+/950달러/최고 속도 시속 22㎞

오토바이와 마찬가지로 퍼스널 모빌리티도 ‘원동기 면허’가 있어야 한다. 면허 없이 운전할 경우 3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만 16세 이하는 원동기 면허를 딸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는 퍼스널 모빌리티를 사용할 수 없다. 안전모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퍼스널 모빌리티도 이런 안전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 여의도, 망원동, 신사동 등지의 한강 시민공원 인근에는 세그웨이를 대여해주는 업체들이 있다. 1시간에 1만~2만원을 내면 누구나 세그웨이를 빌릴 수 있다. 이 가운데 한 대여업체를 직접 찾았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도 연인·가족·친구 단위로 대여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특별한 면허 없이도 세그웨이를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업체 관계자는 “(세그웨이는) 새로 나온 것이라 법 규정이 모호하다. 면허는 없어도 된다”라고 답했다. 안전모가 필수냐는 질문에도 “필수는 아니고 선택이다. 쓰고 싶은 분들께 빌려드린다”라고 말했다. 원동기 면허를 딸 수 없는 연령인 14세, 15세 아이들도 세그웨이와 전기 킥보드(최대 속력 25㎞/h)를 대여해 타고 갔다. 안전모는 쓰지 않았다.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보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한강변의 한 퍼스널 모빌리티 대여 업체는 대여 직전 ‘동의서’를 쓰게 한다. 사고로 인해 대여자가 상해를 입을 시 대여업체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빌린 세그웨이를 망가뜨리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업체 관계자는 “워낙 최근에 보급된 것이라 관련 보험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샤오미 나인봇 미니/315달러/최고 속도 시속 16㎞

실제로 아직 국내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 약관엔 퍼스널 모빌리티 관련 규정이 없다. 사고가 났을 경우 과실 분배나 보험 지급에 관한 판례도 없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보험회사 관계자는 “도로교통법을 전용해 오토바이와 같은 조항을 적용할 수도 있지만, 약관이 모호한 경우 보험사가 (보험료 지급에) 방어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한번 지급하면 선례가 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입법부 역시 퍼스널 모빌리티라는 ‘새로운 문물’의 존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굳이 관련 움직임을 찾는다면,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들 수 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해당 법률에 규정된 자전거의 정의에 ‘전기 자전거’를 포함시키자는 것이다(2010년 민주당 강창일 의원, 2012년 한나라당 홍문종 의원 대표 발의). 퍼스널 모빌리티의 법적 정체성을 ‘원동기’에서 자전거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 대신 일반 자전거보다 빠르고 무거운 전기 자전거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속력과 중량을 규제한다. 이 개정안은 2013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국회 안전행정

스웨그웨이 X1/400달러/최고 속도 시속 16㎞

위원회의 법안 소위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국민 생활과 밀접한 문제이므로 현장 심사를 하자”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논의의 중심은 자전거와 형태가 유사한 전기 자전거들로 세그웨이, 원휠, 투휠 보드 등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5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에서 “세그웨이 등 외발·이륜형 전동기는 구체적인 논의 자체가 드문 상황이다. 새롭게 출시되는 여러 개인형 교통수단이 현재 국내 교통 시스템 내에 적절하게 편입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주문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