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그 방송사들은 ‘한 놈’만 팬다

살아남은 종편의 비빌 언덕은 선거

 

 

종편 전성시대다. 출범 초기 ‘애국가보다 낮은 시청률’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시청률이 계속 늘어 이제 지상파 방송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 매출액도 부쩍 늘어 흑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향력도 증가했다. 특히 정치적 영향력에서는 독보적이다. 이번 〈시사IN〉 설맞이 여론조사에서도 증명되었다. 정치·사회 정보를 입수하는 매체를 묻는 질문에 포털사이트(24.9%)에 이어 종편이 2위(22.2%)를 기록했다(표 참조).

종편은 한국 사회의 보수화에도 일정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종편 출범 이후 4년 동안 리얼미터 주간 여론조사 결과 변화를 보면, 이념 성향을 보수로 응답한 응답자 비율이 2011년 19%에서 2015년에는 30%로 늘었다. 반면 진보 성향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6%에서 19%로 줄었다.

종편의 상승세는 지상파의 하락세와 맞닿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 조사위원회가 2013~2015년 방송 이용 점유율 추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상파는 하락(KBS의 경우 39.5%에서 29.9%)한 반면 종편(TV조선의 경우 5.9%에서 10.6%)은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시사IN 이명익종편의 시청률과 매출액이 부쩍 늘었다. <시사IN> 여론조사에서 정치·사회 정보를 입수하는 매체를 묻는 질문에 종편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은 채널A 사옥 앞.

 

TV조선을 보고 있는 시청자

종편의 정치적 영향력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종편 시사·보도 프로그램 패널 출신 6인이 새누리당에 1차 인재 영입 대상이 되어 한꺼번에 입당하는 것으로도 증명되었다. JTBC 〈썰전〉 출연자 이철희·이준석 등 스타 출연자들이 여야에서 두루 활약하고 있다. 종편이 예비 정치인들의 숙주 구실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종편이 저널리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한다. 이른바 ‘공생 저널리즘’이다. 고전적 저널리즘 이론에서 언론은 권력을 견제하며 ‘불가근불가원(가까워서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 된다)’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종편에서는 권력과 언론이 자웅동체처럼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출연자들은 중립적인 시각이 아니라 한쪽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며 스스로 정치를 한다. 그러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권으로 간다. 비유하자면 전반전에 심판으로 뛰었던 사람들이 후반전엔 한쪽 팀 유니폼을 입고 나와 선수로 뛰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새누리당에 입당한 6인의 종편 패널은 종편에 출연하기 전에는 주목할 만한 사회적 이력이 별로 없었다. 6인 중 한 명인 배승희 변호사의 경우 ‘흙수저희망센터’ 소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곳의 홈페이지는 지난해 12월에 오픈되었다. ‘금수저취업갑질고발센터’에는 윤후덕·신기남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의 취업 청탁 논란 기사가 링크되어 있을 뿐이다

정치와 언론 사이, 사라져버린 ‘벽’

이런 ‘공생 저널리즘’을 통해 독특한 정치 여론 생태계가 구축되었다. 이윤성·이동관·유정현·김은혜·장성민처럼 전직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비서관 등이 종편의 뉴스 진행자나 시사 프로그램 사회자로 출연 중이다. 종편에서는 정치와 언론의 벽이 사라졌다. 정치를 하다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방송을 하다 정치를 하는 것도 당연시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권의 지상파 방송 장악’이 화두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정치 관련 보도에서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종편은 정치 관련 프로그램에서 총력전을 벌인다. 특히 오후 시간대는 시사·보도 프로그램 일색이다.

방송 뉴스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등이 구성한 ‘총선보도감시연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4~20일(1월12일 제외) KBS· MBC·SBS 등 지상파의 메인 뉴스들이 내놓은 총선 관련 뉴스는 각각 20건 내외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TV조선과 채널A는 무려 90여 건 보도를 쏟아냈다.

눈에 띄는 점은 예전 지상파 방송사의 정치 뉴스와는 편향성 논란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여권 관련 뉴스는 많은데 상대적으로 야권 관련 뉴스가 적어서 문제였다. 하지만 요즘 종편은 야권 관련 뉴스가 더 많다. 그러나 야권이 환영할 일은 아니다. 주로 야권 내부의 갈등을 부각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즉 ‘네거티브 정치 뉴스’인 셈이다.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는 패널 구성이 문제가 된다. 여권 성향 패널과 야권 성향 패널이 몇 명씩 나오느냐에 따라 이슈에 대한 접근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총선보도감시연대를 주도하고 있는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패널 성향은 대략 ‘여권 7 대 야권 3’ 정도다. 그런데 이 숫자에 함정이 있다.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사람도 야권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화갑·조순형 전 의원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그리고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여권 성향으로 바뀌어 있는 경우도 많다”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 사람이 여러 프로그램에 중복으로 출연하는 경우 채널 성향에 따라 발언 수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채널 성향에 따라서 맞춤형으로 방송을 하는 것이다. 한 종편 출연자는 “종편에서 가장 선호하는 출연자는 채널 성향에 맞춰서 방송을 하는 사람이다. ‘센추리클럽(한 달에 100회 이상 출연하는 사람)’에 가입한 사람들이 5~6명 되는데 이번 영입 인물 중 김태현 변호사와 박상헌 평론가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사람들은 여러 채널에 중복으로 출연하는데 차 빼고 주차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셔틀 차량을 두고 함께 이동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편향성 문제에서도 종편은 지상파와 차원이 다르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종편 뉴스와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편향성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도 공정성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 사회자가 편파적이고, 왜곡된 자막을 내보내며, 자료 화면 역시 일방적으로 편집된다. 공정한 토론을 위한 조건 자체가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사회자의 편향성이란, 여권 출연자에게는 호의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야권 출연자에게는 공격적으로 묻거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출연자가 답을 하면 사회자가 정색하고 말을 끊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종편 방송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막을 크게 내보내는데, 화면 속의 발언자와 관련 없는 자막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시중에서 ‘카더라’ 수준의 소문으로 떠도는 이야기까지 그대로 방송해버린다.

ⓒ연합뉴스새누리당에 입당한 김태현·최진녕·배승희·변환봉(왼쪽부터) 변호사는 대표적인 종편 패널이었다.

종편이 정치를 희화화해서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다음은 1월14일 TV조선 〈이슈해결사 박대장〉에서 진행자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일부다.

“박선숙 전 의원이 3년 만에 안철수 의원의 품으로 돌아왔다. 안철수·박선숙 커플의 재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안철수 의원의 여자가 두 명 더 있다” “문재인 의원의 여자도 한번 보겠나?” “지금 문의 여인과 안의 여인을 저희가 보여드렸습니다만 어떻게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나?” “박영선 의원은 어느 분의 여인이 될 거라고 보느냐?”

종편에서는 이런 식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정치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종편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런 선정성은 시청률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이라는 것이 출연자들의 지적이다. 한 종편 출연자는 “작가가 ‘순간 시청률’ 자료를 보여준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시청률이 낮은 패널이 잘리는 것을 보면서 패널들은 좀 더 자극적으로 발언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종편 보도를 모니터하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종편의 영향력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10개를 동시에 방송하는 정도의 강도’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종편은 어떻게 영향력을 키웠을까? 바로 프레임 전략이다. 정치적 사안을 이해하는 프레임을 시청자에게 끝없이 학습시킨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북 프레임’이다. ‘우리 사회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은 종북 세력이다’ ‘지금 사회 이슈의 배후에 종북 세력이 있다’는 프레임으로 모든 이슈를 단죄한다. 통진당 해체부터 세월호 참사 그리고 가까이는 지난 연말의 민중총궐기 대회까지 이런 종북 프레임을 덧씌워 비난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요즘 종편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친노 프레임’이다. ‘종북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우리 정치를 가장 위협하는 세력은 친노 운동권이다’ ‘지금 정치 이슈의 배후에는 친노 세력이 있다’며 공격한다. 이런 ‘친노 프레임’의 전도사 중 한 명이 바로 이번에 새누리당에 입당한 김태현씨다. 그는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혁신안 발표하면서 비노 밀어낼 때 친위부대 양성해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따위 ‘물의 발언’으로 방심위에서 권고 조치를 받았다. 김씨를 비롯해 이번에 새누리당에 입당한 6인의 종편 패널 가운데 변호사 4인방은 아예 입당 후 자신들의 역할을 ‘친노 저격수’로 선언했다.

ⓒ연합뉴스2014년 3월17일 채널A 사옥 앞에서 종편국민감시단이 종편 재승인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적대감 조장해 공동체를 파괴하는 역할”

이런 ‘친노 프레임’은 야권이 분열하자 적극적인 안철수 신당 띄워주기로 변주되었다. 1월8일 TV조선 ‘여론조사로 본 정치권’에서 주용중 정치부국장은 “안철수 신당이 호남에서는 (여론조사 지지도가) 더블스코어로 앞서고 있다. 안철수 신당은 중도 신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새누리당에 이어 아마 안철수 신당이 제2당이 될 것이다”라고 치켜세웠다. 같은 날 채널A 뉴스에서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이희호 여사 방문 상황을 비교하며 “현직 대표(문재인)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8분간 만났고 전직 대표(안철수)에겐 20분 독대를 포함해 무려 25분을 할애했다”라고 안철수 의원을 띄워주었다.

이런 ‘친노 프레임’ 덧씌우기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퇴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김종인 선대위원장과 친노 세력이 갈등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채널A는 1월15일 선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을 하는 김종인 전 의원에 대한 보도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출근 첫날부터 불협화음”이라고 보도한 것을 시작으로 “김종인 위원장이 실질적으로 당권을 행사할 수는 없을 것”(1월16일), “문 대표와 김 위원장 사이에 갈등설이 나옵니다”(1월17일)라며 계속 갈등을 부각했다. 한편 채널A 〈쾌도난마〉의 경우 1월14일부터 23일까지 9회차 방송에서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국보위 활동을 비난했다.

총선보도감시연대에서는 친노 혐오를 부추기는 이런 종편의 보도가 호남 혐오를 부추겨 지역감정을 일으킨 것과 비슷하다고 경고한다. 김 사무처장은 “종편은 시청자의 이기심을 자극하며 혐오를 이끌어낸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공론장 역할이 아니라 적대감만 불러일으켜 공동체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친노 혐오 프레임을 복지 혐오 프레임으로 사용하고 있다”라며 비판했다.

야권에 친노와 비노 세력의 갈등이 있다면 여권에는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있다. 신구 권력의 갈등은 언제나 주목받는 것이지만 종편은 이와 관련한 보도는 별로 하지 않았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는 친박과 비박의 공천 갈등이 격렬한데 이에 대해서는 갈등 이외의 영역에 각도를 맞춘다. 친박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특히 가까운 ‘진박(박근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 정치인’들의 근황을 보도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진박 대 비박의 대결’ 프레임을 구사하는데, 이렇게 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진박’ 정치인이 홍보효과를 보게 된다.

‘진박’ 정치인을 부각하는 보도는 특히 채널A에서 두드러진다. 채널A 뉴스는 1월14일 “현역 의원들과 진실한 사람들과의 진검승부는 총선을 90일 앞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타도 유승민계” 진박 6인 ‘대구 결의’〉라는 제목으로 ‘오늘 오전 대구의 한 식당에서 행동 통일을 결의한 이른바 진실한 사람들 6명의 사진’이라며 진박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도했다. 1월27일 뉴스에서는 “새누리당 경선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 지역의 진실한 친박, 이른바 ‘진박’들이 잇달아 밀리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라고 보도하면서 유승민 의원과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격투기를 하는 듯한 사진을 내보내며 이 전 구청장 옆에는 큰 글씨로 ‘진박’이라고 표시하기도 했다.

이런 종편과 정치의 공생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돈이다. 정치 관련 뉴스가 많아지고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느는 것과 궤를 같이해서 종편에 정부 광고가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정부는 공무원연금 관련 광고 60%를 종편에 몰아줘서 특혜 시비를 낳기도 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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