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많이 읽혔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중국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余華)는 〈뉴욕 타임스〉(2014년 3월16일)에 기고한 칼럼에서 현대 중국 사회의 모순을 극명히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을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5성급 호텔 주방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이야기다. 그녀는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집으로 가져가려다 적발되었다. 아들에게 한턱 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호텔 재산을 훔쳤다는 명목으로 즉각 해고당했다. 그녀는 슬펐다. 해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그냥 버린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좋은 음식인데 그걸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한다니요? 천벌받을 겁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09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석한 작가 위화(위). 그가 쓴 소설 〈제7일〉(위 오른쪽)은 중국에서 70만 권 정도 팔렸다.
ⓒ연합뉴스 2009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석한 작가 위화(위). 그가 쓴 소설 〈제7일〉(위 오른쪽)은 중국에서 70만 권 정도 팔렸다.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흥 자본가다. 그는 손님 3명과 함께 호텔에서 단 한 끼에 20만 위안(약 3500만원)을 썼다. 호텔 측에서는 그 자본가를 수상하게 여겨 신용카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지불해달라고 요청했다. 승강이 끝에 자본가는 부하 직원을 시켜 1위안짜리 지폐 20만 장을 트럭에 실어오라고 했다. 호텔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돈을 세는 동안 자본가는 소파에 앉아 잡지를 뒤적거리며 ‘갑질’을 한다. “자식들~ 내가 돈 내기는 쉽지만 너희가 세기는 쉽지 않을 거다.”

위화는 중국 문학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압박에서 헤어나오기 시작하던 1980~90년대에 형성된 ‘전위 작가’ 그룹 중 대표적 인물이다. 아직도 문화 검열이 존재하는 중국에서 비참한 현실을 익살맞게 묘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가 국민당·공산당 내전, 대약진운동, 문화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몰락한 농민의 삶으로 그려낸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 궁리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9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져 있다.

위화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소설 〈제7일〉은 몽환적 형식을 통해 현대 중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고 처절하게 비판한 수작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양페이는 헤어진 전 부인의 자살 기사를 단골 식당에서 읽으며 망연해하다 난데없는 화재 사고에 휘말려 즉사한다. 그러나 그는 저승에 갈 수 없다. 공원묘지의 땅값이 “7년 동안 10배나 뛰어” 양페이가 남긴 돈으로는 1㎡ 넓이의 묏자리 하나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혼한 뒤 함께 살던 양아버지의 치료비 때문에 집을 팔아버리고 소매점을 운영했으나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아들을 걱정하던 양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결국 양페이는 가족도, 직장도, 집도, 가게도 잃어버린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에 비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국 속설에 따르면 매장되지 못한 자는 이승을 떠돈다. 〈제7일〉은 중음신이 된 양페이가 도시를 떠돌며 ‘매장되지 못한’ 서러운 영혼들을 하나둘씩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뿌리 뽑힌 삶을 산 끝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떠돌게 된 민중의 사연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첨병이 된 중국의 모순을 통렬히 고발하고 있다.

소설 [제7일]
양페이가 중음신이 된 뒤 가장 먼저 만난 영혼은 그의 전 부인 리칭이다.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던 리칭은 결혼 생활을 하던 중 유학생 출신 사업가의 유혹에 넘어가 집을 나간다. 그 도시의 비즈니스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녀는 결국 공무원과 결탁해 벌인 비리 때문에 욕조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리칭은 개혁·개방 이후의 부자 되기 열풍과 창업 신드롬, 정경 유착 등 중국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미용실 직원 슈메이는 신형 아이폰을 비롯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첨단 상품들을 동경해서 ‘밤업소’에 나가려다 남자친구 우차오와 다투는 등 소비 성향이 강한 젊은 여성이다. 가난한 남자친구는 그녀의 생일선물로 ‘짝퉁 아이폰 4S’를 준다. 이에 상심한 슈메이는 우차오가 잠시 귀향한 사이, 중국 굴지의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메시징 프로그램 QQ에 자살을 예고하고 그 도시의 랜드마크인 58층짜리 펑페이 빌딩에 올라간다. 그리고 엉겁결에 뛰어내리고 만다. 슈메이와 우차오 커플은 전형적인 2세대 농민공(도시로 쇄도한 농촌 출신 주민들. 그러나 중국에서 법률적으로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도시의 농민공들은 복지·교육 등 기초 공공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다)으로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를 전전하는 뿌리 뽑힌 ‘아르바이트족’이다. 커플의 거주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만들어졌다가 폐기된 지하 방공호다. 여기 사는 젊은이 2만여 명은 쥐처럼 지하에서 살다가 아침이면 빠져나와 하루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 다시 지하로 돌아간다. 그래서 ‘쥐족’으로 불린다.

슈메이의 죽음을 알게 된 남자친구 우차오는 “살아 있을 때 슈메이가 원하는 것을 하나도 들어주지 못했다”라는 자책감 때문에 자신의 신장을 3만5000위안에 팔아 여자친구의 묘지와 묘비, 유골함을 마련한다. 덕분에 저승으로 가게 된 슈메이의 몸(?)을 매장되지 못한 자들이 꽃과 강물로 씻어주고 ‘안식의 땅’으로 배웅하는 광경은 황폐하고 억압적인 현실과 대비되는, 〈제7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회주의의 덕목인 평등과 우애는 죽은 자들 사이에서나 실행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이 밖에도 중국 사회의 단면을 나타내는 이야기들이 많다. 시 정부는 쇼핑몰 화재로 인한 사상자 수를 축소한다. 시장과 당 간부들의 ‘앞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에 사망자 명단이 떠돌고, 유족들은 협박과 회유를 당한다. 도시의 강에는 산아제한으로 강제 유산된 영아들의 시신이 ‘의료 쓰레기’로 처리되어 부유한다. 관련 기사는 권력층의 압력 때문에 사장된다. 시 정부는 개발 계획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자고 있는 주택을 무너뜨려버린다. 하교한 초등학생 딸은 빨간색 오리털 점퍼를 입고 부모가 덮인 폐허 위에 앉아 부모를 기다린다. 딸을 애통해하는 부모의 울음소리가 ‘매장되지 못한 자들의 땅’을 몰아친다.

〈제7일〉은 발간 이후 중국에서 70만 권 정도 팔렸다. 소설에 나오는 각종 에피소드들은 위화의 창작이 아니다. 위화는 〈제7일〉 발간 이후 혹독한 비판을 당했다. 그 이유는, “이미 나온 뉴스들을 아둔한 언어로 양꼬치 꿰듯이 늘어놓았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한국 영화 <허삼관>(위)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1월에 개봉한다.

이처럼 현재의 중국은 세계에서 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국가다. 개혁·개방 이후 나라 전체의 부는 크게 늘어났다. 이에 비례해서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중국의 지니계수(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는가를 나타내는 통계수치. 이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하다)는 연구기관에 따라 구체적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산업화된 국가 중 단연 1위다. 지난해 4월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가 미시간 대학 연구 자료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계수는 2010년 현재 0.55로 미국(0.45)을 성큼 따돌렸다. 보통 지니계수가 0.4 이상이면 빈부 격차에 따른 사회적 혼란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영국의 〈가디언〉(2014년 7월28일)은 “전체 중국인 가운데 1%가 국부의 3분의 1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하위 25%의 몫은 국부의 1%에 그친다(베이징 대학 ‘사회과학조사 연구소’ 자료 인용)”라고 보도했다. 부자가 늘어나는 속도 역시 글로벌 1위다. 미국의 컨설팅 그룹 캡제미니가 매년 발표하는 ‘2014년 세계의 백만장자(HNWI:운용 가능한 여유 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인 계층)’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현재 중국의 HNWI는 전해보다 17.8% 늘어난 75만8000여 명이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은 ‘평등하게 빈곤한 나라’였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극단적인 자급자족 시스템을 추구하면서 글로벌 경제와의 연결을 완강하게 차단했다. 때로는 공산당의 황당한 정책 하나 때문에 농업과 공업 부문의 연간 생산이 초토화되기도 했다. 한꺼번에 수십만~수백만 인구가 아사하는 등 ‘절대 빈곤’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이랬던 중국이 마오쩌둥 전 주석 사후, 개혁·개방으로 돌아서 글로벌 자본주의를 적극 받아들였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정보통신 혁명이 일어나면서 ‘산업의 전체 공정’ 가운데 일부를 뚝 잘라 세계 곳곳에 분리 배치할 수 있게 되었는데, 중국은 이런 변화의 최고 수혜자였다. 외국 자본이 중국으로 밀려 들어와 공장을 세웠고, 토종 기업의 기술 수준도 개혁·개방 이전에 비하면 일취월장했다(글로벌 차원에서는 대체로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심지어 중국은 개발도상국인데도 스마트폰 같은 글로벌 첨단산업 내의 일부 공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의 권위주의 정부는 이 같은 자본의 흐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경 유착 및 이와 관련된 개인들의 ‘관시(관계) 사슬’을 따라 이뤄진 부의 축적도 만만치 않다.

〈제7일〉에 나타난 모순은 어떻게 탄생했나

이런 과정에서 절대 빈곤이 사라졌다. 그러나 ‘외국 자본 주도의 경제성장’에 필연적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외국 자본에 절실한 것은 투자 대상국의 균형 있는 국민경제 발전이 아니다. 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선적도 쉬운 동부 해안지역 중심으로 외국 자본이 들어왔다. 서부 내륙은 소외되었다. 더욱이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면 복지 및 노동 시스템도 개혁해야 했다. 이번에는 민중이 소외된다.

ⓒEPA2010년 4월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식사하는 중국 노동자들. 중국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개혁·개방 초기까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정부는 인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최종 책임자였다.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그랬다. 도시에서는 국유기업들이 소속 노동자 및 가족의 취업(종신 고용)과 생활·의료·노후를 책임졌다. 농촌에서는 마을 단위의 집체 조직(예컨대 인민공사)이 집단적으로 생산하고 분배하며, 남는 농산물은 국가에 팔아 공산품과 교환하는 방법으로 농민들의 기본 생활을 보장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이 같은 ‘삶의 형식(법률 체계)’을 해체했다. 농촌에서는 개별 농가가 각자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자신의 책임(과 수익)으로 경작하고, 남는 농산물을 시장에 팔 수 있게 되었다. 마을 단위에서 구성원들의 생계와 복지를 책임지는 체계가 깨졌다는 이야기다. 도시의 국유기업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변했다. 당연히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필요 없는 노동력은 회사 밖으로 내쳐야 한다. 국유기업을 통해 종신 일자리는 물론 각종 복지 혜택까지 보장받던 노동자들 처지에서 해고란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한다. 뿌리 뽑힌 노동자들이 거리를 헤매는 가운데 농민 역시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쏟아져 들어왔다. 노동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내리는 법. 국유기업과 외국 기업들은 이런 노동자들을 값싸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임시공으로 채용했다. 결국 기존 사회주의적 복지는 사라지고 새로운 사회보장 제도는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인민들의 삶은 허공으로 떠버렸던 것이다. 〈제7일〉에서 묘사된 각종 사회적 모순들의 배경이다.

위화는 〈뉴욕 타임스〉 칼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엄청난 빈부 격차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난 부정부패는 공공 부문과 인민 대중 간의 갈등을 격화시켰다. 오늘날의 중국 사회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마오쩌둥 시대의 구호인) ‘계급투쟁을 잊지 말자’는 ‘조화사회’와 ‘안정제일’로 대체되었다. 과거(마오쩌둥 시대)에는 계급이 소멸된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들은 ‘인민들이 절대 계급투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계급들이 부활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은 ‘계급투쟁을 잊어버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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