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위보(周玉波) 중국 인민망(〈인민일보〉 인터넷판)의 한국 지국장은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로 다시 불붙은 중국 내 한류를 ‘한류 3.0’이라고 지칭했다. 한류의 기반을 다진 초창기와 한류가 꽃피었던 전성기를 지나 긴 침체기를 거친 후 한류가 이제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일본 대중문화와 타이완 대중문화에 이어 붐을 일으킨 한류가 뉴미디어와 적절하게 결합해 효과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류 3.0’ 시대의 경제 효과는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히트해 일본 내 한류가 본격화하던 10년 전과 비슷한 규모로 추산된다. 〈별에서 온 그대〉의 배우 김수현이 지난해 상반기 중국에서 벌어들인 광고 모델료와 행사 수입만 2억 위안(약 360억원)으로 알려졌다. 하반기까지 합칠 경우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상속자들〉에 출연한 이민호도 김수현이 받는 모델료의 80%가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희 제공김영희 PD(가운데)가 ‘플라잉 PD’로 제작에 참여한 중국판 <나는 가수다> 스태프 및 출연자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류 바람은 중국 문화산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SBS 〈별에서 온 그대〉를 방영한 아이치이는 인기 동영상 사이트로 급부상했고, MBC 〈아빠! 어디 가?〉를 수입해 방영한 ‘광셴미디어’는 민간 영상기업 가운데 매출액 최다 기업이 되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을 적극 수입한 후난TV와 저장TV는 중국 유력 방송사로 입지를 굳혔다.

‘한류 3.0’ 시대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유통 채널의 변화다. 이전까지 주로 TV를 통해 전파되던 한류가 인터넷과 모바일로 무대를 옮겼다. 둘째, 중국 정부의 규제 때문에 프로그램 완성본이 아니라 개별 인력이 중국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형식이 바뀌었다. 셋째, 프로그램은 포맷 수출이 늘었다. 넷째, 한류 콘텐츠 덕을 보기 위해 중국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 방식을 찾고 있다.

지난해 12월15일 가수 박혜경씨는 서울 홍대 공연장에서 중국 진출 계획을 발표하고 중국 록 음악의 대부 친융(秦勇)과 함께 부른 듀엣곡 ‘웨이아이즈더마’를 공개했다. 박씨는 중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맥스스타그룹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는데, 그룹 대표가 이날 공연장에 와서 직접 제작한 휘호를 전달했다.

 

 

 

박혜경 제공가수 박혜경씨(왼쪽)에게 탕웨밍 중국 맥스스타그룹 회장(오른쪽)이 직접 제작한 휘호를 전달하고 있다.

 


박혜경씨가 중국에 진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중국 인터넷 음원시장 활성화 덕분이다. 박씨는 “중국 여행 중에 나를 알아보는 중국 팬을 만났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음원 사이트에서 음악을 다운로드해 듣고 뮤직비디오를 찾아서 봤다는 것이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 음악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많이 다운로드되어 있었다. 이를 활용하자는 생각에 중국 진출을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인터넷은 불법 콘텐츠 유통 공간으로 우려했던 곳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규제 정책 덕분에 시장이 빠르게 정립되면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보물창고로 바뀌었다.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 등 ‘한류 3.0’ 시대의 콘텐츠는 대부분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유통된 것이다.

중국 정부가 문화산업을 적극 키우려 하지만, 해외 드라마나 영화가 직접 들어오는 건 여전히 경계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의 규제 장벽을 넘기 위해 연기자나 PD, 작가가 개별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선 연기자들의 직접 진출이 두드러진다. 2012년 이전 한류 침체기에는 장나라나 장서희 등 극히 소수의 연기자가 중국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2013년부터는 천정명·주진모·권상우·최지우 등 한국 정상급 연기자  20여 명이 중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흐름이 바뀌었다. 지난해에도 배우 김태희가 〈서성 왕희지〉에 출연했고, 송혜교·소녀시대의 윤아·송승헌·지진희·주원·이준기·박하선 등이 한·중 합작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작가료가 고정된 한국에 비해 ‘기회의 땅’”

 

 

 

 

영화 <일대종사>에 출연한 배우 송혜교씨(왼쪽). 연기자, PD, 작가가 개별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인기 드라마 PD와 작가들의 중국행도 줄을 잇는다.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PD가 중국에서 영화 제작에 나섰고, 〈풀하우스〉의 표민수 PD, 〈꽃보다 남자〉의 전기상 PD, 〈파리의 연인〉 〈신사의 품격〉을 연출한 신우철 PD도 중국에 진출했다. 〈주군의 태양〉을 쓴 홍 자매(홍정은·홍미란)와 정하연·우수진 작가 등이 중국에 진출했고,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을 쓴 김은숙 작가에 대한 러브콜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장TV에서 〈인생제일차〉 〈중국판 런닝맨〉 제작에 참여한 박휘선 작가는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15년째 작가료가 고정된 한국에 비해 중국에서는 3~4배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한국 제작진은 현장 돌파력이 뛰어나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국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제작진이 한국 제작진에게 만능 해결사가 되어주기를 원하는 경향도 있어서 눈높이를 맞춰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라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중견 영화감독들도 중국에서 메가폰을 다시 들고 있다. ‘〈필선〉 시리즈’를 연출한 안병기 감독을 비롯해 박유환·곽재용·장윤현 감독 등이 중국에서 영화를 제작 중이다. 허진호 감독과 오기환 감독의 영화는 이미 중국에서 개봉했다. 특히 오기환 감독의 〈이별여행〉은 2억 위안(약 360억원)의 흥행 성적을 기록해 한·중 합작 영화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국 프로그램의 포맷 수출도 중국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후베이TV는 CJ E&M의 〈슈퍼스타K〉 형식을 딴 〈슈퍼스타 차이나〉를 방영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후난위성TV는 MBC의 〈아빠! 어디 가?〉 포맷을 수입해 〈빠빠취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영했고, 〈나는 가수다〉는 〈워스거서우(我是歌手)〉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두 프로그램의 제작에는 MBC 김영희 PD가 플라잉 PD(지도·자문 PD)로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중국에서는 전국 시청률 1%를 넘기면 인기 프로그램으로 꼽히는데 두 프로그램은 2%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포맷 수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오리지널 한국 프로그램의 다운로드도 함께 늘어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박혜경 제공가수 박혜경씨(왼쪽)에게 탕웨밍 중국 맥스스타그룹 회장(오른쪽)이 직접 제작한 휘호를 전달하고 있다.

 


중국 방송사들이 한국 PD들을 초청하는 이유에 대해 김영희 PD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욕심도 있지만 그들은 방송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한다. 일단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면 제한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프로그램을 성공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든 걸 가르쳐주게 된다. 따라서 중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중 간 격차는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부분은 중국 기업의 적극적 한류 활용 방식이다. 프로그램 간접광고(PPL)나 제작 지원 형식으로 한류 콘텐츠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에는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가 PPL을 시행했다. 중국 화장품 업체 ‘뉴라이프’는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제작비를 지원했고, SBS 드라마 〈닥터 이방인〉에는 ‘타오바오’와 중국 맥주회사 ‘리오’, ‘GM차이나’ 등이 참여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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