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14년이 〈명량〉의 해였다면 중국의 2014년은 〈트랜스포머 4〉의 해였다. 개봉 11일 만에 중국의 역대 최고 흥행 영화가 되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트랜스포머 4〉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중국 영화이기도 하다. 중국 자본으로 제작되고, 중국 제품이 간접광고(PPL)로 들어가고, 리빙빙 등 중국 배우가 출연하고, 중국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4〉의 중국 흥행 수입은 약 3억1500만 달러(약 3266억원)였다. 이는 미국 본토 흥행 수입인 2억3000만 달러를 능가하는 액수다. 역대 트랜스포머 시리즈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도 이 영화가 수익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중국을 위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4〉에는 중국의 영화 채널 CCTV6가 5000만 달러(약 550억원)를 투자하고 직접 마케팅과 홍보를 맡았다.
 

ⓒXinhua2014년 12월19일 마카오에서는 ‘마카오 반환 15주년’ 행사가 열렸다. 대규모 문화 행사가 선보였고, 공연을 보던 시진핑 중국 주석(앞줄 두 여자 어린이 사이)도 폐막 즈음 무대에 올랐다.


차이나머니의 ‘전방위’ 할리우드 상륙작전

할리우드와 차이나머니의 결합은 이전에도 있었다. 〈익스펜더블 2〉 〈어벤져스 2〉 〈아이언맨 3〉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비슷한 시도가 한국 영화계에도 있었다. 〈중천〉 〈묵공〉 〈집결호〉 등이 중국과 합작 형태로 제작됐지만 역시 성과가 미미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4〉의 성공으로 이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차이나머니의 결합은 하나의 공식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전방위로 나타나는 차이나머니의 할리우드 상륙작전이다. 1년 매출이 1800억 위안(약 32조원)인 완다그룹의 자회사 완다문화그룹에서 미국 영화배급사 AMC엔터테인먼트를 26억 달러(약 2조8600억원)에 인수했다. 중국의 민영 투자회사 포싱그룹은 워너브러더스픽처스의 제작자 제프 라비노프가 설립한 신생 영화사 스튜디오8에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투자했다. 바이두의 CEO 리옌훙은 미국의 영화제작사 아쿠아멘 엔터테인먼트(Aquamen Entertainment)에 4000만 달러(약 440억원)를 투자했고, 알리바바는 미국 라이온스 게이트 필름(Lions Gate Films)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중국의 힘은 돈이다. 움직이는 돈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영화산업은 특히 성장이 빠른 분야다.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중국 극장 흥행 수입은 10억 위안(약 1800억원) 미만이었고 스크린 수도 2000개가 안 되었다. 그러나 2013년 통계를 보면 극장 수입은 217억7000만 위안(약 3조6972억원)으로, 스크린 수도 1만3000여 개로 늘었다.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영화시장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영화 시장조사 회사 렌트랙은 2015년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 예상했다. 중국 시장이 받쳐준다면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할리우드가 중국 자본과 짝짓기를 하는 이유다.

영화뿐 아니라 중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중국은 GDP 대비 문화 콘텐츠 매출액이 아직 낮은 나라다. 2015년 중국의 문화산업 규모를 1조 위안(약 180조원)으로 전망하는데 GDP 비중의 5%인 5000억 달러(약 550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주목할 곳은 인터넷과 모바일이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중국 인터넷 이용 인구는 6억1800만명으로 미국 인구의 2배에 이른다. 이 중 동영상 사이트 가입자 규모가 4억2800만명(사용률 69.3%)이다. 모바일 동영상 콘텐츠의 시청자 규모는 2억4700만명(사용률 49.3%)으로 전년 대비 1억명 이상 늘었다.

 

 

 

<트랜스포머 4>(위)는 중국 자본으로 제작하고 중국에서 촬영한 할리우드 영화다.

 


중국의 온라인 음악 사용자는 2013년 기준으로 4억5300만명 수준이고, 이 가운데 3억명 정도가 모바일 단말기 음악을 듣는다. 700여 업체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규모는 약 43억 위안(약 7740억원), 실황 플레이 서비스 시장은 약 37억 위안(약 6660억원) 규모다. 모바일 인터넷 시장은 약 30억 위안(약 5400억원) 수준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하향세인 전통 미디어 기업도 중국에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광전총국이 발표한 2013년 중국의 라디오·텔레비전 산업 총수익은 약 3734억 위안(약 61조원)으로 전년 대비 15.7%가량 증가했다. 신문·출판 산업 영업수익은 1조8246억 위안(약 291조원)으로 전년 대비 9.7% 성장했다.

중국의 공연시장 규모는 2013년 기준으로 463억 위안(약 8조3000억원) 정도다. 중국에서는 1400여 개의 국가 소유 문화예술 공연단체와 1만1000개의 민영 문화예술 공연단체가 활동 중이다. 2013년 한 해 신축 공연장만 50곳이고 투자액은 60억 위안(약 1조800억원) 정도인데, 연평균 50회 이상 공연을 올리는 공연장이 35%에 불과해 중국 공연시장은 블루오션으로 여겨진다.

한편, 중국은 동만산업(애니메이션)을 21세기 신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고 있다. 2013년 210만 권이 팔려 어린이도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슝추모(熊出沒·곰이 나타났다)〉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2억5000만 위안(약 450억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시장 중에서는 특히 휴대전화 단말기로 구동되는 시장이 매년 30% 이상 커지고 있는데, 2014년 휴대전화 단말기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가 30억 위안(약 5400억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의 문화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데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핵심적 구실을 했다. 국가 정책이 시장의 판도를 하루아침에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문화산업과 관련한 중국의 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부의 침략을 막고 내부의 역량을 강화한 뒤 밖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이다. 이 가운데 외부의 침략을 막는 것과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는 영향력을 확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2013년 6월 한국과 중국 정부는 영화 공동 제작에 관한 협정에 가서명했다(위). 최근 중국 기업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특히 한류에 대한 견제가 극심했다.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프라임 시간대에 외국 프로그램 방영을 금지하는가 하면, 그 대안으로 중국 제작사들이 한국 프로그램의 포맷을 수입하자 이번에는 프로그램 포맷에 대한 쿼터제까지 시행했다. 영화산업의 경우 연간 외화 상영을 64편으로 제한했고, 공연 티켓 가격이 올라가자 공연 규모를 축소하고 티켓 가격을 조정하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중국 공연시장이 10% 가까이 줄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TV로 한류가 전파되자 기존 방송사들의 광고 수익 하락을 막는다며 ‘다시보기’ 기능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규제 정책은 주효했다. 적재적소에서 한류 흐름을 제어했다. 우리로서는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중국 정부로서는 효율적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문화산업은 2013년을 기점으로 외부로의 영향력 확대에 나선다. 2013년 제19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중앙) 제3차 전체회의에서 문화 정책에 관한 주요한 결정을 통과시켰다. 그 내용을 보면 ‘문화관리 시스템의 개선과 건강한 현대 문화시장 체제를 구축하고 공공문화 서비스를 확대하며 문화 개방 수준을 높인다’고 되어 있다. 이때부터 문화산업 관련 정책이 유연하게 바뀌었다.

중국의 문화산업을 성장시킨 또 다른 요소는 중국 대기업의 문화산업 진출이다. 중국 대기업들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가장 주목할 그룹은 IT 공룡 3인방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다. 현재 이들이 구축한 진용은 이렇다. 바이두는 콘텐츠 제작·배급사 화처잉스와 온라인 플랫폼 아이치이를 보유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콘텐츠 제작·배급사 알리잉예, 온라인 플랫폼 여우쿠투더우, 인터넷 TV 화쑤미디어를 가지고 있다. 텐센트는 콘텐츠 제작배급사 화이브라더스, 온라인 플랫폼 텅쉰스핀을 운영하고 있다. 바이두와 알리바바는 각각 ‘바이두지갑’과 ‘워러바오’라는 온라인 펀딩 플랫폼도 운영한다.

막강 플랫폼을 갖춘 중국 IT 기업들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과 제휴를 통해 한류의 인기를 자기 이익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한다. 지난해 5월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한국의 SM엔터테인먼트와 MOU를 체결했다. 계열사인 아이치이를 통해 SM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중국 내 온라인망에 유통시키고 신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두루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바이두는 JYP와도 음원 계약을 맺고 소속 뮤지션들의 영상을 독점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텐센트는 지난해 12월 초 YG엔터테인먼트와 전략적 협약을 맺었다. 소속 가수들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텐센트의 디지털 음악 서비스 플랫폼인 텐센트 QQ뮤직을 통해 선보이고 방송용 콘텐츠도 함께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탕다오성 텐센트 그룹 부총재는 “양사의 협력은 음악과 스타로 대표되는 YG의 콘텐츠에 텐센트의 플랫폼이 결합한 본격적인 오락 ‘항공모함’의 출현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그룹이 운영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T몰은 YG엔터테인먼트와 협약을 맺고 ‘YG 이숍’이라는 온라인 스토어를 개설했다. 알리바바가 SM엔터테인먼트에 1000억원 규모로 투자해 2대 주주로 올라선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SM 측은 이를 부인했다.

 

 

 

 

ⓒ연합뉴스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위). 하지만 한류 인기가 커지자 중국 정부도 규제 정책을 통해 견제에 나섰다.

 


이렇게 중국의 문화산업 규모가 커지고 문화 관련 정책이 바뀌는 동안 우리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당장 〈트랜스포머 4〉만 해도 그렇다. 여기에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인 슈퍼주니어 출신의 한경이 출연했다. 중국 소수민족 출신인 한경은 SM을 이탈해 중국에서 단독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SM은 적절히 대처할 수 없었다. 이후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그룹 엑소에서 중국계인 크리스와 루한이 연이어 팀을 이탈했다. 중국 안에서는 이탈 멤버를 옹호하고 SM을 공격하는 루머가 끊임없이 나돌았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인수에 나서

SM·YG·JYP 3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SM은 중국 시장에 초기부터 공을 들여왔던 곳이다. JYP는 영미권에 공을 들였고 YG는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이 3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시장에 집중한 SM 이수만 회장의 소신은 ‘중국이 미국 된다’였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 시장 자체가 커져서 세계 시장에 진출한 것과 맞먹는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는데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우려도 들어맞았다는 점이다.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 멤버를 키우지만 이들이 이탈할 때 붙들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중국의 문화산업 자본은 우리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인수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최대 드라마 제작사인 화처미디어는 국내 영화 배급사 뉴(NEW)의 지분을 535억원에 사들여 2대 주주가 되었다.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 온라인 서비스 업체 소후닷컴은 배우 김수현이 소속되어 있는 키이스트에 150억원을 투자해 지분 6.4%를 확보함으로써 대주주인 배우 배용준에 이어 2대 주주가 되었다. 중국의 투자사 오리엔트스타캐피털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국내 3위 영화 체인인 메가박스를 57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2대 주주 반발로 미확정). 최근 70억원에 김종학프로덕션의 지분 100%를 인수한 포인트아이(한국 자본)의 한 관계자는 “막판 경쟁자는 오리엔트스타캐피털이었다. 그들은 메가박스 외에도 두루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애국심에 호소해 힘겹게 인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는 속담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 모두 긴장해야 할 때다. 〈나는 가수다〉와 〈아빠! 어디 가?〉의 중국판 제작에 참여했던 MBC 김영희 PD는 “함께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중국은 자본과 시장이 있고 우리에게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있다.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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