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7월14일, 서울 시내 25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교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를 포함해 자사고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교장들은 “‘폐지’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법적 요건에 어긋나면 ‘지정 취소’를 하면 될 일이다”라고 회의 초반부터 각을 세웠다.

충돌은 조희연 교육감이 ‘일반고 전성시대’라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될 때부터 예고돼 있었다. 조 교육감은 취임 첫날인 7월1일 ‘자사고 관련 공약 이행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꾸리며 의지를 드러냈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MB) 시절 고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설립·운영 중인 자사고는 전국에 49곳(민족사관고등학교처럼 2002년부터 시범 운영돼온 자립형 사립고도 여기 흡수됐다. 이들 자립형 사립고는 ‘전국 단위 자사고’라 불리고, MB 시절 생긴 자율형 사립고는 지역 단위에서만 학생을 모집할 수 있어서 ‘광역 단위 자사고’라 불린다). 이들 자사고는 해당 지역 교육감이 5년마다 운영 평가를 거쳐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다.
 

ⓒ연합뉴스조희연 서울교육감(오른쪽 맨 앞)이 7월14일 서울시내 25개 자율형 사립고 교장들과 만났다.


가장 많은 자사고(25곳)가 몰려 있는 서울은 2010년 운영을 시작한 학교가 14곳, 2011년 운영을 시작한 학교가 11곳이다. 다시 말해 올해 심사할 학교가 14곳인 셈인데, 내년도 신입생 전형절차 등을 감안하면 이들 자사고의 재지정 여부는 늦어도 8월13일까지는 판가름이 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육감에게 주어진 시간이 처음부터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행 자사고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현장 교사들은 자사고를 일러 '교육계의 4대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4대강 사업마냥 국책사업하듯 자사고 정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 교육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의미에서다. 지난 대선 당시 여야 후보 또한 ‘일반고의 위기’를 거론하면서 자사고 정책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그 해법이 ‘폐지’(문재인)냐 ‘개선’(박근혜)이냐로 갈렸을 뿐이다.

공교육 강화론자들은 자사고가 고교 교육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일반고 슬럼화’를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외고·과학고 등 특목고가 도입됐을 때만 해도 ‘상위 1~2% 극소수만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어서 일반 학교에 미치는 영향이 덜했는데, 일반고 7곳당 1곳꼴로 자사고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에게도 자사고는 비판 대상이다. 이들이 자사고가 제 기능을 못한 증거로 내세우는 대표적 지표는 입학 경쟁률이다. 지난해 서울 24개 자사고(전국 단위 자사고인 하나고는 제외)의 일반 전형 경쟁률은 1.58대1. 자사고 도입 첫해인 2010년에만 2.88대1을 기록했고, 그 뒤로는 1.46대1(2011년), 1.39대1(2012년), 1.48대1(2013년)로 저조한 실적을 면치 못했다. 정원 미달 학교도 매년 4분의 1 이상 속출한다. 자사고가 수요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질 높은 교육’을 둘러싼 동상이몽

이들의 비판은 ‘일반고보다 등록금을 3배 가까이 받는 자사고가 과연 그에 합당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느냐’로 모아진다. 등록금을 3배 더 냈으니 학교 시설이나 교육 서비스도 3배 더 좋아야 한다고 학부모들은 기대하지만 자사고 운영 원리상 이는 불가능하다고 이형빈 서울교육감 인수위 전문위원은 말한다. 왜 그럴까. 자사고는 본래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설립을 허가받은 학교다. 정부로부터 교직원 인건비 등으로 연간 20억~25억원을 지원받는 일반 사립고와 달리 자사고는 이 모든 재정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학교재단이 돈을 많이 풀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럴 역량과 의지를 갖춘 재단은 많지 않다. 더욱이 고교 다양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이명박 정부는 본래 등록금 수입의 25%로 돼 있던 자사고 법정 전입금 기준을 5%로 대폭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그 결과 많은 자사고가 ‘정부가 지원했어야 할 돈을 학부모가 대신 내 운영하는 학교’로 변질되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질 높은 교육’을 둘러싼 동상이몽이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자사고가 입시 위주 교육만 한다고 몰아붙이면 억울하다. 우리 학교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을 장려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이러니는 정작 학부모들이 이런 식의 전인교육을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데서 발생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입시 성적이다. 정확히는 서울대에 몇 명을 보냈느냐로 학교 평가가 판가름나더라”고 그는 말했다.

그 결과는 자사고 내 쏠림 현상으로 이어진다. 최근 교육부는 서울대 신입생 중 일반고 출신 비율이 사상 최초로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자사고의 약진’이라 떠들어댔지만, 재미를 본 것은 이른바 강남 3구와 양천구 등 교육특구에 자리한 몇몇 자사고일 뿐이었다고 자사고 교사 A씨는 말했다. 자사고 내부에서도 인기 학교와 기피 학교가 갈리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한만중 전 전교조 정책실장(개포중 교사)은 말했다. “특목고·자사고 등 선발형 고교에서 배출되는 수험생이 매년 7만명가량이다. 그런데 이른바 ‘인(in)서울 대학’ 정원은 4만명 수준이다. 특목고에 비해 후발 주자인 자사고가 상위권 대학 진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는 것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처럼 ‘공교육의 원리를 왜곡시키면서 시장주의 원칙조차 실현하지 못했다’(이형빈 전문위원)는 비판을 받는 자사고를 두고 조희연 교육감은 조만간 ‘중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조 교육감은 이들 자사고가 일반고 전환을 희망할 경우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전망이다. “학생이 줄고 재정 압박이 심해지면서 솔직히 일반고 전환을 원하는 자사고도 많다”라고 자사고 교사 B씨는 말했다. 한 예로 서울시내 한 자사고는 최근 재단이 나서서 일반고 전환을 추진한 바 있다. 몇 년간 정원 미달 사태를 겪은 여파였다. 그런데 소식을 접한 학부모들이 비상총회를 소집하고 실력 행사를 벌인 결과 일반고 전환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이 학교 교사 C씨는 “일반고로 전환되면 대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우려하는 학부모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학교들은 차라리 교육감이 나서서 폐지를 밀어붙여주기를 원한다.

 

 

 

 

 

문제는 부분 폐지냐, 전면 폐지냐다. 교육부는 자사고 지정 취소 요건을 다섯 가지로 정했다. △정부로부터 교직원 인건비 등을 지급받은 경우 △법정 전입금 및 교육과정 운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회계 부정 △선발 부정 △기타 학교 지정 목적의 달성이 어렵다고 교육감이 인정한 경우 등이다. 조 교육감은 “학생이 미달되거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사고가 평가 대상 중 절반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기피 학교로 찍혀 있는 이들 몇몇 학교를 폐지할 경우 나머지 인기 자사고로의 쏠림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자사고 교사 D씨는 “자칫하면 느슨한 현행 자사고 체제가 특목고에 준하는 귀족 자사고 체제로 재편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무상급식·학생인권조례에 이어 또 격랑 일까

그렇다고 전면 폐지도 쉬운 카드는 아니다. 교육감 인수위 측은 자사고 평가에 ‘공교육 영향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자사고가 주변 학교의 교육 여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특목고 재지정 심사 때도 입학 전형에 사교육 유발 요소가 있지는 않은지 ‘사교육 영향평가’라는 것을 한다. 자사고 또한 공교육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한 만큼 이를 평가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희연 교육감이 취임한 직후 서울교육청은 올해 심사 대상인 14개 자사고 주변 학교를 상대로 공교육 영향평가 설문조사 등을 벌였다. 그러나 서울시내 25개 자사고 교장단은 교육부가 제시한 5대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기준으로 자사고를 지정 취소할 경우 공동 대응을 하겠다며 맞섰다. 공교육 영향평가 등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사고 학부모 또한 서울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일촉즉발로 치닫던 갈등은 7월25일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1년 미루기로 하면서 일차 봉합된 상태다. 좀 더 개선된 종합적 평가지표를 개발해 오는 10월말까지 평가 절차를 마치되, 그 적용은 내년부터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조희연 교육감이 넘어야 할 산은 첩첩이다. 조 교육감은 지정 취소 결정을 유보하는 대신 내년부터는 모든 자사고 입시 전형에서 면접을 없애고 전원 성적 제한 없이 추첨에 의해 선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자사고들은 '자사고 무력화 시도'라며 다시금 들썩이고 있다. 자사고 학부모 집회에 참가한 E씨는 "아무래도 우리가 조희연 교육감에게 당한 것 같다. 겉으로는 평가를 유보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계속해서 흔들어대면 누가 자사고에 오려 하겠나"라면서 당장 코앞에 닥친 2015학년도 전형을 걱정했다. 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오는 10월 말, 예정대로 개선된 지표에 따라 재평가를 마치고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고자 할 경우 교육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도 조희연 교육감 앞에 놓인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지난 2010년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자사고인 남성고(익산)와 중앙고(군산)의 재지정을 취소하자 교육부는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은 재량권 남용'이라며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때처럼 교육부가 제동을 걸 경우 한국 사회는 또 한번 교육발 대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김상곤의 무상급식, 곽노현의 학생인권조례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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