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홍진호씨는 자칭 타칭 ‘출장 전문 교사’다. 이 학교 저 학교로 출장 다니는 게 일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경기도 광명시 운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였다. 그랬던 그가 어쩌다 광명시내 46개 초·중·고교를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광명이 혁신교육지구라는 데 있다. 2011년 광명이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된 이래 광명교육지원청에는 매년 혁신학교 교사 1~2명이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혁신학교 교육과정을 일반학교에 전파하고, 혁신학교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끔 지원하기 위해서다. 홍씨는 이를 위해 파견된 교사 중 한 사람이다. 혁신학교 출신인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혁신교육 컨설턴트 구실을 하는 셈이다.

혁신교육지구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2010년 경기 지자체를 상대로 먼저 제안한 사업이다. 2009년 시작된 혁신학교가 경기 전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자 한 걸음 더 나아가 혁신학교의 일반화를 꾀하고자 구상한 모델이다. 핵심은 교육 개혁에 지자체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각각 예산을 분담하고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더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것이다(누이 좋고 매부도 좋고 기사 참조).
 

ⓒ시사IN 조남진광명 혁신교육지구에는 협력교사를 둔 학교들이 많다. 광명시의 예산 지원 덕분이다. 협력교사는 수업 진행을 도우며 뒤처진 아이들을 돌본다.


광명은 처음부터 교육청의 제안에 적극 응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양기대 광명시장은 취임 직후 시청 산하에 교육지원과를 새로 만들고, 그 사무실을 시장실 바로 곁에 배치하며 교육 문제에 의지를 보여왔다. 광명 학부모 또한 5만4000여 명이 혁신교육지구 청원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 결과 혁신교육지구 6곳(광명·구리·시흥·안양·오산·의정부) 중 하나로 광명이 최종 선정된 것이다. 그 뒤 광명시는 매년 30억원 안팎에 이르는 예산을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투입해왔다. 경기교육청 지원 예산을 합하면 매년 40억원 가까운 예산이 교육 분야에 집중 투입된 셈이다.

그로부터 4년. 광명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일단 눈에 보이는 뚜렷한 변화는 인구가 늘었다는 것이다. 2009년 말 기준으로 32만명을 밑돌던 광명시 인구는 2011년 최초로 35만명을 넘어섰다. 물론 인구 증가를 교육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KTX 광명역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 개발과 서울-세종 간 통근인구 증가 등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보다 직접적 요인은 ‘혁신학교 효과’로 보인다고 광명시는 분석했다.

혁신학교 밀집 지역 인구증가율 24%

혁신학교가 밀집한 소하동 일대를 보면 상관관계는 더 뚜렷하다. 2014년 광명시 혁신학교는 전체 학교(46개교)의 24%인 11개교에 이른다. 그런데 소하동에 7개가 몰려 있다. 그뿐 아니다. 그간 혁신학교 학부모들의 가장 큰 불안 중 하나가 ‘상급학교 진학 시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였는데, 이를 감안해 이 동네에는 초·중·고교로 이어지는 이른바 혁신학교 벨트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혁신교육지구 지정 직후 한 해 동안 소하동 인구증가율은 24%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광명시 전체 인구증가율 3.26%를 크게 앞지른 수치다.

 

 

 

인구 35만명이 사는 광명시에는 46개 초·중·고교가 있다. 그중 24%인 11곳이 혁신학교다. 추가로 6개 학교가 혁신학교 전환을 준비 중이다.

 


소하동 인구는 지난해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 또한 교육 열풍이 식어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폭등한 주거비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고 하태화 광명시 교육지원과 교육협력팀장은 말했다. 혁신학교를 찾아 이사하는 가구가 늘면서 전세금 부담이 크게 늘고,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네를 떠나는 이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광명 혁신학교 1호’로 꼽히는 구름산초등학교에 아이 둘을 보내는 소하동 주민 김지은씨(가명)는 “올 초 전셋집을 재계약했는데, 집주인이 109㎡(33평) 아파트 전셋값을 2년 만에 1억원이나 올려달라고 해서 당혹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구름산초 학군으로 불리는 이 아파트 단지의 경우 5월 말 기준으로 109㎡형 전셋값이 3억3000만~3억4000만원에 이른다. 웬만한 서울 지역보다 높은 시세다. 그러다 보니 주소만 소하동에 둔 채 멀리 안양이나 서울 구로·금천 등지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지난해에는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위장전입 감시단을 꾸렸을 정도다.

또 한 가지 가시적인 변화는 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경기교육청 의뢰를 받아 혁신교육지구 6곳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벌인 한국외국어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김용련 교수)은 교원 79.5%, 학부모 71.5%, 학생 63.3%가 혁신교육지구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각자 만족한다고 밝힌 부분이 조금씩 달랐다는 점이다. 일단 학부모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한 것은 협력교사 제도와 도서관 사업 등이었다. 협력교사란 수업을 도와주는 보조교사를 일컫는다. 6월13일 기자가 찾아간 충현중학교 수학 교실에는 교사가 둘이었다. 한 사람은 정규교사, 한 사람은 협력교사였다.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은 모둠별로 ‘학부모가 원하는 직업’과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을 미리 설문 조사해온 뒤 이를 통계로 내는 법을 실습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진행될수록 모둠 간에 실력 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둠별로 지급된 태블릿 PC 프로그램을 잘 다루지 못해 헤매는 그룹도 있었다. 이때 협력교사가 진가를 발휘했다. 정규교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를 협력교사가 메워주는 것이었다. “수업시간뿐 아니라 수업을 준비할 때도 협력교사가 큰 도움이 된다. 예전 같으면 창의적이긴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하지 않았을 수업도 과감히 해보게 된다”라고 수학 교사 이은정씨는 말했다. 주미화 광명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는 “초등학교의 경우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을 돌보는 데 협력교사가 큰 도움이 되는 듯하다. 올해 협력교사 관련 예산이 줄면서 학부모들이 아쉬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충현중에서는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지 않고 수업 시간에 이를 스스로 활용하게끔 한다.

 


교사들은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통해 상담교사·사서 등 전문 인력을 지원받고,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시도하게 된 것을 특히 만족스러워했다. 충현중 교사 최은상씨는 “혁신학교의 경우 행정실무사가 추가 투입되면서 교사들이 행정 잡무에 시간을 뺏기는 대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적정 인력이 투입될 때 교육의 질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인건비 부담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이 혁신학교에 대한 과도한 예산 지원 문제였다. 그러나 혁신교육지구인 광명의 경우 지자체가 예산을 분담하면서 일반학교에까지 이런 지원이 가능해졌다.

토목사업 대신 프로그램 위주로 예산을 지원하는 것 또한 만족도를 높인 요소다. “그 전에도 지자체가 학교에 예산을 지원하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강당이나 체육관을 건립하는 등에 쓰였다. 혁신교육지구가 된 뒤로는 이런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하태화 팀장은 말했다. 일단 우선 지원되는 것은 수업을 혁신하거나 학생들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보내지 않고, 학교 단위에서 직접 기안해 올려 공모 절차를 밟게 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일반학교들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사업 초기에는 공모에 응한 학교가 대부분 혁신학교였다. 그러나 갈수록 일반학교 참여가 늘더니 올해는 46개 학교 거의 전부가 공모에 참여했다. 그 바람에 혁신학교들이 후순위로 밀렸다”라고 공모 사업 심사에 학부모 대표로 참여한 윤지영씨는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충현중 교사들이 수업 연구 모임을 하고 있는 장면.

 


이 같은 변화를 추동한 힘의 한 축은 학부모였다. 혁신학교나 인근 학교 소문에 자극받은 학부모들은 “왜 우리 학교는 저런 걸 안 하느냐”라며 학교를 압박하고 나섰다. 한 일반학교 교장은 “솔직히 부모님들이 자꾸 다른 학교와 우리 학교를 비교하니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좀 더 핵심적인 변화는 교사들에게서 비롯됐다. 구름산초 김보채 교사는 “혁신학교에 와서 달라진 점은 학교와 관련된 모든 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반학교 교무회의는 업무를 지시받고 ‘예,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자리였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모두의 학교’라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 한 교사는 “혁신학교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긴장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이대로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걸 늘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일반학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새로 생긴 광휘고 교사들은 혁신학교처럼 수업 연구회를 운영하는가 하면, 전체 교사가 모이는 토론회를 상설화하고 있다. 말이 토론이지 처음에는 언성을 높이며 서로 부딪치는 일도 많았다. 특히 교문 지도, 복장 검사 등을 금지하는 문제를 놓고 교사 간에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서로의 교육관·가치관까지 다 드러낸 논쟁 끝에 내린 결론은 학생들의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이 학교에서는 교문 지도나 복장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휴대전화 소지도 금지하지 않는다. 벌칙은 텃밭 가꾸기 등으로 대신한다. 담배 피우다 걸리면 담쟁이넝쿨을 심게 하는 식이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소통을 윽박지르는 학교가 많다. 그러나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변한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이 학교 김영조 혁신부장은 말했다. ‘혁신학교보다 더 혁신학교 같은’ 일반학교의 출현이다.

 

 

 

 

ⓒ시사IN 조남진광휘고에서는 전교생이 자기 텃밭을 가꾼다. 독창적 수업 방식 덕분에 ‘혁신학교보다 더 혁신학교 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연희 충현중 혁신부장은 “단위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더 성장하게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참여하는 일반학교와 혁신학교 교사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다 보면 서로 자극받고 배울 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학교와 주민이 만나는 근사한 교육 현장

그뿐 아니다. 지자체가 결합한 사업 특성상 혁신교육지구 예산을 지원받는 이들 학교 대부분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충현중의 경우 지난해 광명 바로알기를 주제로 협력수업을 벌였다. 이를테면 역사 시간에는 광명의 선사시대를 알아보고, 미술 시간에는 이를 토대로 옛 생활상을 복원하는 작품을 만들며, 사회 시간에는 주민 인터뷰를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의 첫 반응은 냉랭했다. “이 동네에 아파트 말고 뭐가 있어요?”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동네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광명에 가학광산이라는 유서 깊은 탄광이 있었고, 기형도 시인이 살았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갔다. 동네에서 떡볶이 팔던 아줌마가 알고 보니 가야금의 달인이었다는 식으로, ‘이웃의 재발견’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섭외된 주민이 수업 중 교단에 서기도 했다. “한마디로 ‘케미(화학적 상승작용)’가 폭발했다고나 할까. 주민과 학교가 만나면 굉장히 근사한 일들을 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이연희 부장은 말했다.

6·4 선거에서 이른바 진보 교육감 13명이 대거 당선되면서 새삼 주목받는 것이 혁신학교다. 이들 교육감은 혁신학교 확대를 일제히 공약으로 내걸었다. 혁신학교를 맨 먼저 도입한 경기도의 경우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원하는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예비 지정하겠다”(이재정 당선자)라며 혁신학교 일반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처럼 특정 학교에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혁신학교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력이나 예산 모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광명 모델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현행 혁신교육지구 모델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광명에서 만난 교사와 학부모들은 “혁신교육지구 사업은 당연히 계속돼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지자체와 교육청이 예산을 분담해서 교육 투자를 늘린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다. 지난해 경기교육청 의뢰를 받아 이 사업을 점검한 한국외국어대 산학협력단은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과거 지역사회의 명문학교 만들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라고 평가했다(〈경기도 혁신교육지구 사업 발전방안 연구〉). 성적을 중심으로 학교 간 경쟁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혁신교육지구에서는 일반학교와 혁신학교가 ‘학교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체 학교를 변화시켜 나가고, 이것이 다시 지역사회 전반을 교육 공동체로 세워내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만족감이 지역사회에 대한 자긍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광명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이연희 교사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만 해도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친구들이 좋은 학군을 찾아 서울로 이사를 가곤 했다. 전학 간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한 학년에 두 반이 없어진 일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광명이 오히려 교육 때문에 찾아오는 도시가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구름산초 학부모 김지은씨는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는 밤 10시까지 뛰어노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본래 그런 부모들이 이곳에 온 건지, 아니면 이곳에서 학교를 보내다 보니 그리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달달 볶는 엄마가 거의 없다. 이웃끼리 잘 알고 지내기에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봐준다”라고 말했다. 혁신학교에서 시작된 교육 혁신이 겨우 4년여 만에 한 도시를 ‘떠나고 싶은 베드타운’에서 ‘머물고 싶은 교육 공동체’로 바꿔놓은 셈이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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