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7000원이 두드린 어깨
  • 장일호 기자
  • 호수 337
  • 승인 2014.02.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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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로부터 시작된 캠페인에 가수 이효리씨가 답장을 보내왔다. 편지 공개 후 이씨의 두드림에 수많은 사람이 폭발적으로 응답했다. 모금 시작 11일 만에 3억6000만원이 모였다.
2월15일, 아름다운재단으로 제주발 편지가 한 통 왔다. 발신인은 가수 이효리씨. 이씨가 직접 꾹꾹 눌러쓴 편지 안에는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 소송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긴급생계비를 지원하는 ‘노란봉투’ 모금에 참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모금은 지난 연말 <시사IN> 편집국으로 배달된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두 아이(곧 세 아이가 된다) 엄마 배춘환씨는 쌍용자동차와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노조에게 47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후, 계산기를 가져다놓고 47억원을 찍어봤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이효리씨가 보낸 편지는 배씨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기도 했다. 이씨는 배씨의 4만7000원이 그러했듯, 자신이 보낸 4만7000원이 또 다른 누군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2월18일 편지가 공개된 후, 이효리씨의 두드림에 수많은 사람이 폭발적으로 응답했다.

가수 이효리씨(오른쪽)가 보내 온 편지와 4만7000원.

4700원부터 47만원까지

모금 11일째인 2월20일 현재, 9400명이 3억6000만원을 모아냈다. 생일선물로, 결혼기념일 선물로, 축의금 대신 신랑·신부 이름으로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커피 값을, 술값을 아껴 돈을 보낸다는 이들도 많았다. 활동가 다수가 대학생인 웹진 <고함20>의 기자 10명은 4700원씩, 4만7000원을 모아 이 모금에 참여했다. “수많은 20대에게 4만7000원은 이번 달 생활 수준을 좌우할 만큼 큰돈이다. 그렇다면 ‘4700원은 어떨까’ 생각했다. 혼자는 4700원을 내더라도, 친구 10명에게 이런 캠페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기부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면 4만7000원의 효과를 거두지 않을까.”

정치권도 움직였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정당한 쟁의 절차를 진행한 파업에 대해서는 노무 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손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결 이전에는 잠정적으로 합법으로 보고 가처분·가압류 인용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라고 알려왔다. 장 의원실 보좌진 역시 십시일반 모은 47만원을 보내왔다(기부금법상 정치인은 모금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

“이효리씨가 1억을 기부한 것보다 4만7000원 기부한 것이 훨씬 마음에 와 닿았다. 피해자들에게 47억원이나 내라는 판결에 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조금씩 연대해서 보란 듯이 해결했으면 좋겠다.” (임경선 작가, @slowgoodbye)

“아침에 마눌님에게 받은 밸런타인데이 선물^^ <시사IN>에서 쌍용차 파업에 대한 47억 손배소송에 대해 4만7000원씩 모금하는 운동을 하는데 세연 아빠 이름으로 동참해주었다^^ 초콜릿보다 달달한 선물 너무 감사♥” (@joayagoo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4만7000원. 저에겐 있어도 없어도 사는 데 크게 지장 없는 돈… 그렇지만 10만명이 모은 각자의 4만7000원은 누군가의 생명과 가정을 지키는 값진 돈이 되어 있겠죠?” (응원합니다님)

“아들이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6개월 계약직이어서 구조조정 말 나올 때마다 힘들어합니다. 다행히 계약이 연장되어 다니고 있지만 엄마로서 늘 안쓰럽고 안타까워요. 뉴스 볼 때마다 분노하고 여러분은 얼마나 힘드실지 가슴 한쪽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4만7000원 적은 돈이지만 누군가 아들의 학자금 한 달치 이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냅니다.” (윤경자님)

“아직 만 6세도 안 된 딸에게 이런 돈을 보낼 건데 ‘누구 이름으로 보낼까?’ 묻는 제게, ‘와~ 엄마 이렇게 좋은 일 하는 사람이야?’ 부끄러움에 순간 정적.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6살짜리도 아는 좋은 일. 기적을 믿습니다!” (기와쭈님)

“<시사IN> 읽고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왜 굳이 이런 것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느 날 내가 억울하게 회사에서 잘렸을 때, 저들처럼 회사를 향해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없었다면 ‘잘리면 잘리나 보다’ 체념해야 하는 사회가 되지 않게 해준 것에 대한 작은 감사의 성의라고 말하겠습니다.” (Bookstory1님)

“오늘까지 출근하면 셋째를 낳기 위해 출산휴가에 들어갑니다. 출근 마지막 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태교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이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도 동참합니다.” (지구인님)

“<시사IN>의 창간 정기구독자 중의 한 사람이자,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등을 실무 일선에서 직업으로 삼고 있는 변호사입니다. 사무실에서 늦은 점심을 혼자 먹으면서 <시사IN>의 글을 통해 그분의 편지를 접했을 때 눈가가 뜨거워지며, 변호사인 게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여기 저와 아내, 그리고 좀 더 인간적인 얼굴을 한, 그래서 더 나은 세상에서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우리 아이들 두 명의 바람을 담아 마음을 보탭니다.” (더 나은 세상님)

“작년 4월에 예쁜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에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태봅니다. 훗날 우리 아이가 제법 행복한 노동자가 되어 있다면, 아이에게 얘기해줄까 합니다. 오늘 너의 행복이 있기까지 숱한 노동자들이 길고 긴 법정 다툼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쉬이 가늠할 수 없는 아픔과 고됨을 견뎌내야 했노라고.”(김은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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