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치가 뭔가 했더니, 태극이었다. 후일 ‘태극권’의 일대 종사가 되는 양로선의 이야기를 그린 〈타이치 제로〉는 2편인 〈타이치 히어로〉까지 이어지는 무술영화다.

생각해보면 홍콩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무술영화였다. 호금전(후진취안)과 장철(장처), 초원 감독 등이 만든 무협영화에 이어 이소룡(리샤오룽), 성룡(청룽), 이연걸(리롄제)의 무술영화들. 1960년대의 무협·액션 영화는 오히려 한국 영화계의 수준이 높아 〈죽음의 다섯손가락〉의 정창화 감독 등이 홍콩에 진출했지만 1970년대 이후로는 완전히 역전됐다. 리샤오룽과 청룽이 등장하면서 홍콩의 무술영화는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다른 나라의 감독이나 배우가 꿈꿀 수 없는 차원으로.
 


리샤오룽은 실전 무술을 영화에 끌어들였다. 판타지에 가까운 무협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실에 기초한 액션은 서구인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리샤오룽의 액션영화는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다. 청룽은 리샤오룽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액션을 만들어냈다. 〈프로젝트 A〉 〈폴리스 스토리〉 〈용형호제〉 등에서 보여준 청룽의 액션은 아크로바틱한 서커스이자 슬랩스틱 코미디였다. 무술 고수가 아닌 청룽은 어린 시절부터 경극단에서 배웠던 모든 것을 자신의 영화에 쏟아 부었다. 리샤오룽이 그랬듯이, 청룽의 영화는 오직 그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였다.

리샤오룽과 청룽이 오로지 자신의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어낸 것에 비해 리롄제는 뛰어난 감독의 조력이 필요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을 프로듀싱하며 홍콩 영화의 트렌드를 바꿔놓은 서극(쉬커)의 목표는 중국인만이 만들 수 있는 무협영화였다.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무협영화에 도전한 쉬커는 후진취안 감독에게 〈소오강호〉를 맡겼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 도중하차하고 허안화(쉬안화) 감독에게 넘겼다. 제대로 된 무협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술 실력이 뛰어난 배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쉬커는 속편인 〈동방불패〉를 제작할 때 리롄제를 끌어온다. 그리고 리롄제와 함께 〈황비홍〉을 만든다. 〈황비홍〉은 리롄제의 탁월한 무술 실력이 없었다면, 그의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영화였다. 4편부터 리롄제가 빠지면서 조문탁(자오원줘)이 황비홍 역을 했지만, 무술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술영화에서, 배우의 카리스마와 무술은 반드시 필요한 재능이었다. 지금은 견자단이 홍콩 최고의 무술 배우지만, 그에게는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부족하다. 액션 마니아는 열광적으로 좋아하지만 그 이상 확장되지 않는다.

우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주연

그래서 늘 기대했다. 홍콩·중국 영화에서 다시 한번 위대한 무술 배우가 등장하기를. 배우 출신인 풍덕륜(펑더룬) 감독이 연출한 〈타이치 제로〉의 주연은 지난 베이징 올림픽 우슈 금메달리스트인 원효초(위안샤오차오)다. 〈타이치 제로〉에는 위안샤오차오만이 아니라 다양한 무술 경력을 가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애니메이션, 게임 영상, 익살스러운 자막, 현란한 특수효과 등 온갖 장난을 치며 만든 〈타이치 제로〉이지만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만은 칭찬할 수 있다. 오로지 진씨 일족에게만 전수해주는 ‘진가권’을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선과 서구 열강이 아시아를 침략하며 ‘과학기술’로 만들어낸 무력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보편적이지만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이치 제로〉는 액션이 볼만하다. 아직 ‘시작점’이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2편까지 보면 꽤 호쾌하고 즐겁다. 위안샤오차오가 과연 제2의 리롄제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기자명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