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미운털 박힌 문화산업의 왕
  • 차형석·임지영 기자
  • 호수 303
  • 승인 2013.07.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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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는 명실상부 문화산업계의 파워 집단이다. 영화·방송은 물론 공연·게임 분야에까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속적 투자로 시장의 규모를 키운 반면 문화 생태계에는 해악을 끼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15년 전인 1998년, 서울 CGV강변 극장을 처음 둘러본 이춘연 한국 영화단체연대회의 이사장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였다. 내 영화관이 생긴 듯 애정이 갔다. 첫날의 감동은 길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이 멋진  영화관이 영화인의 것이라기보다 ‘CJ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월20일 CJ CGV 100호점인 신촌아트레온 개관식에 참석한 그가 말했다. “(영화판에서는) CJ를 업고 다녀도 시원찮은데 욕을 한다. 결정적으로 잘못한 게 뭔가 하면, 없다. 영화에 돈 투자하지, 극장 만들어주지. 잘못한 건 없는데 이상하게 욕을 하고 싶다. 이거 문제 있다.” 극장의 주인은 건물주가 아니라 관객과 영화인이라 믿는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업계 영향력 1위인 CJ를 바라보는 문화계 내부의 모순된 심경을 대변한다. 이날은 영화계의 오랜 숙원이던 한국 영화의 부율(극장 대 배급사의 수익 배분) 조정안이 발표된 날이었다. CJ CGV는 서울에 한해 한국 영화의 상영 부율을 ‘50대50’에서 ‘45대55’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의 CJ 소유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극장 몫을 5% 낮추겠다는 의미다. 영화단체 모두가 환영했다.

이렇듯 ‘문화산업계의 파워 집단이 맞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는 보이는데, 그게 딱히 CJ만의 문제일까?’ 하는 복잡한 심사. 취재 중에 만난 문화 분야의 많은 전문가가 비슷한 평을 내놓았다. CJ그룹에 대한 광범위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시기 탓도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모두 이견이 없었다. ‘CJ가 문화산업계 파워 집단이라는 것.’

E&M·CGV·헬로비전 매출 합계 3조원 넘어

현재 CJ그룹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의 세 축은 CJ E&M(2012년 매출액 1조3945억원), CJ CGV(7793억원), CJ헬로비전(8909억)이다. 지난해 매출액을 더하면 3조원이 넘는다. 한국 대기업 가운데 이 정도 규모로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을 전개하는 곳은 없다.

CJ가 문화산업에 뛰어든 것은 제일제당 시절인 1994~1995년께. 할리우드에 영화사 드림웍스를 공동 설립한 게 시작이었다. 제일제당이 독립 경영을 선언한 이후였다. 삼성이 삼성영상사업단을 통해 드림웍스와 협상을 하다가 최종 결렬되었고, 이후에 이재현 회장과 그의 누나 이미경 당시 멀티사업부 이사(현 CJ E&M 부회장)가 미국으로 건너가 계약을 성사시켰다(나중에 이 멀티사업부가 CJ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꾸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제프리 카젠버그 등이 주요 투자자였던 드림웍스의 자본금 30%에 해당하는 3억 달러를 제일제당이 투자했고, 드림웍스 영화의 아시아 배급권을 얻은 것이 이후 콘텐츠 사업의 밑바탕이 되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재현 회장이 이미경 부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멀티플렉스도 만들고, 영화제작사, 배급사, 케이블 TV도 만들 거야.”

그 말대로 됐다. 1996년 삼성에서 완전히 계열이 분리된 CJ는 이후 방송·영화·극장 분야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1997년에 미디어 사업에 진출했고, 1998년에 CGV강변을 오픈해 처음으로 멀티플렉스 극장 시대를 열었다. CGV의 뒤를 이어 롯데시네마(1999년), 메가박스(2000년)가 극장을 열었다.

CJ는 영화·방송·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사업 다각화를 진행했다. 2011년에 CJ E&M을 설립했다. 그룹 내 엔터테인먼트·미디어 기업인 CJ미디어, 온미디어, CJ엔터테인먼트, 엠넷미디어, CJ인터넷 등 5개사를 한 회사로 합병한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일종의 ‘도박 산업’이다. 수익성 리스크를 줄이는 한편 통합 브랜드를 만들어 인지도와 경쟁력을 상승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얻고, 콘텐츠 역시 ‘원소스 멀티유스(OSMU)’로 활용해 사업 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통합된 CJ E&M은 방송, 영화, 음악·공연, 게임 등 4개 부문으로 재편되었다. 4개 분야 가운데 방송 분야 매출이 가장 크다(7641억원). 현재 CJ E&M의 방송 부문은 tvN 등 18개 채널을 가졌고, CJ헬로비전은 국내 1위 ‘복수 종합유선방송 사업자(MSO)’로 성장했다. 나머지 3개 분야가 2000억원 안팎으로 비슷하다.

영화 분야에서 CJ의 파워는 막강하다. 한 영화 기자의 말처럼 “한국 영화는 CJ에서 시작해 CJ로 끝난다”. 2012년 한국 영화 흥행 톱 10 가운데 4편이 CJ E&M이 투자·배급한 작품이다(<광해, 왕이 된 남자> <늑대소년> <연가시> <댄싱퀸>).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CJ E&M이 투자·배급한 영화는 총 27편. 투자·배급사 가운데 가장 많은 한국 영화를 극장에 걸었다. 동원 관객 4214만명. 3063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한국 영화 전체 매출에서 36.7%를 차지한다. 투자·배급이 영화의 시작이라면, 영화의 끝은 극장이다. 전국 스크린 2081개 가운데 CGV와 CJ 계열인 프리머스가 858개 스크린을 차지했다. 투자·제작·배급에서 극장까지 수직 계열화한 것이다.

최근 몇 년째 한국 영화 배급 1위였던 CJ E&M의 올 상반기 실적은 다소 주춤한다. 영화 <7번방의 비밀>을 배급한 NEW가 1위를 달린다. 최근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위대하게 은밀하게>의 배급사는 오리온 계열의 쇼박스다. 하지만 최종 스코어는 아직 단정하기에 이르다는 게 영화계의 중론이다. 하반기에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김성수 감독의 <감기> 등 기대작이 줄줄이 CJ호에 오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관련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CJ의 문화사업은 영화에서 시작해 방송으로 확대되었고, ‘콘텐츠 중심’ 경영 전략으로 이어졌다. 영화 사업을 하면서 영화를 틀 통로(영화 채널과 CGV)을 론칭하는 식이다. 케이블 채널을 늘리는 과정에서 콘텐츠 확보에 한계를 느낀 게 출발점이었다. 지상파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에 먼저 자사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틀게 했다. CJ가 운영하는 채널은 지상파에서 제작하는 콘텐츠를 지상파 PP가 틀고 나서야 방송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이에 따라 방송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이를 기반으로 미디어 사업을 진행한다는 전략이 분명해진 것은 2006년 tvN을 개국하면서부터다. 개국 이후 2년 연속 수십억원 적자를 보면서도 프로그램 제작 투자를 지속했다. 그룹의 콘텐츠 중심 경영 전략 때문이었다.

이는 영화·방송뿐 아니라 뮤지컬과 같은 공연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CJ는 인터파크와 더불어 뮤지컬계 ‘양대 산맥’을 이룬다. 공동 제작한 작품까지 포함하면 한 해 30~40편을 CJ E&M이 생산하는데, 이는 전체 뮤지컬 시장의 35% 정도로 추정된다.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은 “CJ가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 기여했다. 중국과 일본 시장에 한국 뮤지컬을 진출시키는 일에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시장 키웠으나, 생태계 교란했다는 비판

대기업의 문화산업 독식에 비판적 시선을 가진 이들도 CJ가 그동안 지속적 투자를 해온 점은 인정한다. 과거 삼성·대우 등 대기업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 철수했다. 그 자리에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통신자본도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2000년대 중·후반 한국 영화시장의 거품이 빠질 때 다 빠져나갔다. 2007~2008년 한국 영화의 편당 투자수익률은 -40%대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었고, 한 해 120편까지 제작되던 영화 편수는 40~50편으로 급락했다. 돈만 보고 들어왔던 다른 자본들과 달리 끝까지 버텼다는 점에서 CJ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서울 상암동에 있는 CJ E&M 본사 건물.
이처럼 지속적 투자로 시장의 규모를 키운 게 CJ의 ‘명(明)’이라면, CJ의 ‘암(暗)’은 독점의 문제다. 특히 영화 분야에서 비판이 많이 나온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계를 오랫동안 취재한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는 “할리우드를 5대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는데, 나름 다양성을 고려해 5개 라인을 유지하는 거다. 그런데 한국은 많은 제작사가 결국 찾아갈 곳이 CJ뿐이고, 그러다 보니 CJ가 좋아할 만한 영화만 제작자들이 궁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문화의 획일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도 ‘천편일률적 영화’에 대해 경계했다. “CJ가 멀티플렉스 시대를 여는 등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는 기여했다. 하지만 문화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는 해악을 끼쳤다.”

‘투자·배급 1등, 극장 1등’이다 보니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CJ E&M이 원안과 시나리오부터 배급까지 관여한 ‘CJ E&M표’ 영화였다. 1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면서 인위적으로 ‘천만 영화’를 만든 것 아니냐는 뒷말이 많았다. 이런 상영관 몰아주기가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런 비판에 대해 CJ 쪽은 “CJ E&M의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CGV에서 많이 트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이미경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가수 비가 주연한 영화 <알투비>만 해도 투자와 배급을 CJ E&M이 했지만 기대보다 관객이 적자 금세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독과점의 문제가 CJ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CJ가 기획한 영화를 CGV에서 트는 게 문제가 아니라 CGV·롯데·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들이 수익성만을 고려해 스크린을 독과점하는 게 문제’라는 정윤철 영화감독(한국 영화감독조합 부대표)의 말이 대표적이다. ‘문화산업 분야의 파워 집단’ CJ의 문제와 문화산업계 전체의 구조적 문제가 함께 얽혀 있다는 의미다. “CJ가 한 일이 많은데, 이상하게 미워하게 된다”는 앞서 이춘연 한국 영화단체연대회의 이사장의 발언은 이렇듯 문화산업계의 파워 그룹 CJ가 처한, 그리고 그런 CJ를 바라보는 이중의 딜레마를 함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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