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영화가 싫거나, 정말 재미가 없는데도 뭔가 가슴을 찌르는 경우가 있다. 〈전국:천하영웅의 시대〉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불쾌한 건 아니고 그저 지루했지만,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보는 내내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그들이 택한 삶의 태도에 대해서.

모든 나라가 최고의 병법을 지녔다는 귀곡 선생의 제자 손빈(쑨훙레이)을 탐낸다. 제나라에 갔던 손빈은 정치에 뜻이 없어, 함께 공부했던 방연(우전위)을 따라 위나라로 향한다. 하지만 위나라의 욕심은 오로지 손빈이 귀곡 선생에게 배웠다는 병법뿐이었다.

위나라의 왕은 병법을 얻기 위해 손빈의 무릎을 잘라내는 형벌을 내린다. 방연 역시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해 손빈을 이용한다. 우여곡절 끝에 제나라로 돌아와 군사가 된 손빈은, 위와의 전쟁에 나선다.
 


영화 속의 손빈은 어떤 욕심도 없는, 아이 같은 사람이다. 존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은 병법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이에게 이용당하거나 학대당한다. 반면 방연은 분명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 백성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나라를 토벌해 하나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전쟁도 없어지고, 도덕정치를 펼 수 있으니까. 방연은 나름 부하에게 관대하고 공정한 인물로 나온다. 방연이 손빈을 이용하는 것은 단지 대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그려진다. 그것이 자가당착이라는 점은 영화를 보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 귀곡 선생이 실존했는지는 모호하고, 손빈과 방연의 관계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얼추 사건들의 전개는 비슷하지만, 역사서에 기록된 방연은 대단히 사악한 인간이다.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후손이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손빈을 질투하고, 온갖 계략을 썼다가 패배한 악당. 손빈의 마지막도 영화와는 달리 모든 권력을 버리고 은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느 쪽이건 손빈이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다만 방연이 어떤 인간인가에 따라서, 손빈이 무척 다르게 비친다.

영화 속의 방연은 손빈보다 현실적이었다. 방연은 그나마 인간성마저 버리지는 않았지만, 목적을 위해 그릇된 수단을 택하면서 정당성을 잃는다. 역사에서 보이듯, 이상을 위해 힘을 얻겠다고 생각한 이들은 힘에 도취되어 초심을 잃는 경우가 태반이다.

힘없이 한탄하느냐, 힘에 도취되느냐

마침 〈한겨레〉에서, 변해버린 386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하고 힘을 가져야 해. 일정한 직급에 올라가면, 그때 가서 우리 회사를 이렇게 바꿀 거야’ 하고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가 변하는 건 생각하지 못한 거죠.”(김두식의 고백, 이진순 인터뷰 중에서) 사실 변한다기보다, 젊은 시절에는 그나마 이성에 의해 통제되던 그들의 본성이 힘을 얻으면서 분출되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긴 한다. 일찌감치 힘이 필요하다 믿고 뛰어든 이들은, 아마도 그 힘 자체를 욕망했던 경우가 태반이기도 하고.

다만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을 깨닫고 한탄하는 것과 힘에 도취되어 자신의 욕망에 쉽게 굴복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그나마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전국:천하영웅의 시대〉는 힘을 원했던 방연이 자초한 몰락과 힘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손빈의 비극을 함께 보여준다. 심정적으로는 손빈의 선택에 손을 들어주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아니 보고 나서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기자명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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