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에 숭례문이 있었다
  • 신호철 기자
  • 호수 23
  • 승인 2008.02.1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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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은 순수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만 따지면 해인사나 통도사에 비해 더 귀중하다고 하기 힘들다. 하지만 대중 인지도나 인기를 놓고 보면 숭례문만 한 것이 없다. 서울 한복판 교통 요지에 자리잡은 숭례문은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나 파리의 에펠 탑처럼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숭례문은 지난 600여 년간 우리네 민중과 함께하며 역사의 질곡을 묵묵히 지켜본 목격자였다.

블로거 곽재식씨는 자기 블로그(gerecter.egloos.com)에 숭례문이 등장한 각종 역사 사진과 그림 40여 점을 수집해 한자리에 올렸다. 이 사진과 그림을 본 네티즌은 찡한 감동을 느꼈고 이 블로그는 곧 화제가 되었다.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숭례문이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이 사진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곽재식씨의 허락을 받아 그가 수집한 이미지와 <시사IN>이 추가로 모은 사진으로 숭례문의 역사를 반추한다.

   
  역사풍속화가 혜촌 김학수 화백이 고증 자료를 모아 조선시대 숭례문 밖 칠패시 모습을 재현한 그림(왼쪽·1994년 작).  
 
   
  역사풍속화가 혜촌 김학수 화백이 고증 자료를 모아 조선시대 숭례문 밖 칠패시 모습을 재현한 그림(1994년 작). 겨울 풍경.  
 
   
  1770년 실학자 위백규가 쓴 지도책 속에 등장한 숭례문.  
 
   
  1880년에 촬영한 숭례문 앞 거리.  
 
   
  1900년 프랑스 신부들이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1904년 호주 사진작가 조지 로스가 찍은 숭례문과 일대 서울 풍경.  
 
   
  1904년 조지 로스가 찍은 숭례문 앞 거리 시장.  
 
   
  1904년 조지 로스가 찍은 숭례문 성벽.  
 
   
  홍예문으로 전차선로가 개설된 숭례문(1904년).  
 
   
  영국 화보지 <그래픽> 1909년 2월20일자에 실린 그림. 제목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나타난 자동차’, 부제는 ‘코리아의 수도에 처음 출현한 자동차의 시위’.  
 
   
  대한제국 멸망과 함께 숭례문 앞에 세워진, 한일병합을 환영하는 기념문.  
 
   
  성벽이 헐린 직후 무렵 사진.  
 
   
  1945년 9월 광복 이후 서울에 진주한 연합군 퍼레이드.  
 
   
  1950년 북한군 치하, 유엔 철군을 주장하는 시위대 뒤로 숭례문이 보인다.  
 
   
  1950년 한국전쟁 중의 숭례문.  
 
   
  서울 수복 뒤의 숭례문. 포탄으로 일부가 훼손되었다.  
 
   
  1952년 숭례문 앞 거리.  
 
   
  4·19가 있기 전 이승만 선거 홍보 포스터가 숭례문에 걸려 있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3년 5월14일 중수 준공식.  
 
   
  1980년대 민주화 시위 장소였던 숭례문 거리.  
 
   
 
ⓒ연합뉴스
서울시 관광 홍보 이미지.
 
 
   
  2008년 불에 타버린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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