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청장은 베스트셀러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로 여론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2004년 9월 문화재청장에 올랐다. 그러나 취임 8개월 만에 강원도 낙산사가 산불에 전소되고 말았다. 보물 제479호인 범종이 불에 타 복원했으나 종 안쪽에 유 청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구설에 올랐다. 2006년에는 수원 화성의 서장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숭례문 화재까지 더하면 그의 3년6개월은 가히 ‘화마’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어이없는 해프닝도 많았다. 지난해 5월에는 취사가 금지된 효종왕릉에서 LPG 가스통까지 갖다 놓고 숯불갈비를 구워 먹는 바람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화재청 예산으로 자기 저서를 구입한 적도 있다. 공직자 신분으로 회당 수백 만원에 이르는 외부 강연을 다닌 일이 폭로돼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유 청장은 사의를 표명하면서도 “서울 중구청이 숭례문 1차 관리자로 된 것을 바로잡고, 지방청을 설립해 일관된 문화재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1000억원 가까이 예산이 늘어난 유 청장의 재직 시절에 이런 체계를 갖췄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알고도 안 했다’는 게 더 큰 잘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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